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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Jun 08. 2022

엄마 아빠 화해시키는 것도 일

가족 평화유지군

아빠의 71번째 생신을 3일 앞둔 날이었다. 아빠가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서 사과를 깎던 엄마가 '가서 아빠 사과 드시라고 해라'하고 나를 시켰다. 방문을 빼꼼 열고 '아빠 사과 드세요~'하자, 꽤 긴 시차를 두고 아빠가 방에서 나왔다. 사과를 씹으며 아빠는 엄마에게 '내일 몇 시 출발이야?'하고 물었다. 엄마는 짧게 '7시'하고 대답했다. 뭘까, 이 냉랭한 기운의 원인은...?


잠시  엄마가 운동을 한다고 집을 나섰다. 마치 자물쇠가 채워지듯, 엄마가 열고 나간 현관문이 육중하게 철컹-하고 닫혔다. 아빠는 조용히 언니와 나에게  말이 있다고 했다. 느낌이 아주  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에 관해서라면 예측이 될수록 불안하다. 고질적인 부분을 너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가  한판을   틀림없었다. 회사문제로  달째 택시일을 쉬고 있는 아빠와 집안일이 직업인 엄마가 싸울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들어보면 대부분   이해가 가면서도   에게 잘못이 있었다. 엄마는 무척 예민하고 아빠는 한없이 무심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지 않는 시절부터 쌓여왔기 때문에, 하루 하나의 사건을 해결한다고 꼬여있던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 내일은 부부동반 목포여행이 계획되어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예민함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지원군을 찾는 것이다. 피로감이 몰려와서 모른 척하고 싶지만, 이대로 놔두면 불 보듯 뻔하다. 여행에 가서도 싸울 것이고, 어쩌면 남들 앞에서 성토대회를 벌이다가, 울며불며 여행을(남의 여행도) 망쳐놓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촉박했다. 당장 오늘 저녁에 화해를 시켜놓지 않으면 상황은 심각해질 것이다. 언니를 불러서 저녁 일정을 취소했다.


엄마는 풀리지 않은 마음을 슬쩍 덮어두고 그냥 여행에 떠날 심산인 것 같았다. 구태의연하게 저녁을 차리는 엄마에게 아빠랑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한숨을 내쉬는 발성으로 '아빠가 또 폭력적인 전쟁영화를 본다'라고 불평을 했다. 전쟁영화를 보는 것 때문에 집에 전쟁이 난 건가. 나이가 들면 고집스러워지는 부분이 늘어나는 것일까. 폭력적인 것을 보면 잠자리가 뒤숭숭해지는 본인의 경험 때문에, 엄마는 아빠까지 그것을 못 보게 막아섰다. 평온하게 잠을 잘 자는 아빠에게는 어리둥절한 금지령이 아닐 수 없었다.


가족 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노력과 함께 물리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엄마를 설득시켰고(결국 엄마 없는 곳에서 아빠 혼자 전쟁영화 보는 것은 인정), 아빠방에 새 티브이를 장만해 드렸다. 여행 가서 싸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가서 먹으라고 간식도 가방에 싸주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미덥지 않았지만 다행히 큰 싸움 없이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전쟁은 평화롭고 조용하게 아빠방 티브이에서만 방영되었다. 물론 고질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한동안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는 말이다.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살아오며 부부에게는 여러 번의 고비가 오는 듯하다. 예전에 아빠가 어린것들을 두고 이혼할 수 없어서, 자식들이 결혼할 때까지 참아보자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했다. 그때는 자식들이 이렇게 늦게까지 결혼을 못 할 줄 알았겠나... (이런 방법으로 이혼을 막게 될 줄 나도 몰랐다.)


화목하기만 한 가족은 아마 드물 거야, 남들도 다 이렇게 살겠지, 하고 어림짐작하는 일은 가끔 위안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엄마 아빠가 다투는 모습에 단순한 피로감이 아니라 큰 좌절감을 느꼈을는지도 모른다. 동떨어져서 생각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가족으로 단단히 동여매어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격해질 땐 저럴 거면 이혼하지 싶다가도, 아직 나와 든든히 동여매진 가족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역시 가족 사이란 한두 가지의 감정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 복잡함은 어쩌면 함께 보내온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그러니 어쨌든 상황이 얼마나 난감하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다. 고질적인 문제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저 열심히 화해시키는 것 밖에.. 정말이지, 엄마 아빠 화해시키는 것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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