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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May 16. 2022

나는 '아니오맨'이 아니오

긍정하며 대화 시작하기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과 태도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참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어려울수록 내가 오만하다는 반증이 아닌가?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일수록 남의 말에 반기를 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가 뭘 알아?'는 '그럴 수도 있지'의 정반대가 되겠다.


정확히 '너가 뭘 알아?'라고 하진 않았지만 지난주에는 두 번이나 상대방에게 반기를 들며 필요 이상을 말들을 하며 살았다. 하지 않은 말에 대해서는 만회의 기회가 언제든지 있는 반면, 해버린 말은 언제까지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하는 동안 나는 내가 잘 방어했다는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해서 초라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근거가 탄탄하고 정말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매번 상대방에게 반기를 드는 것도 꼴 보기 싫은 건 매한가지다. 수년 전 독서모임을 하며 몇 차례 마주쳤던 남자분이 있었다. 그는 지식수준이 꽤나 높아 보였는데, 놀라울 정도로 모든 대답을 '아니오'로 시작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아니시에이션'이 아니다.

*아니시에이션 : '아니 글쎄~'라는 식으로 대화의 시작을 '아니'라는 말과 함께 시작하는 한국말을 특성을 일컬음.
아니+initiation의 합성어

일본의 제국주의나 이탈리아의 전체주의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근거로 사람들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정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돈가스 맛집을 얘기할 때도 무조건 '아니오'라고 말하는 건 어쩐 일일까? 그의 '아니오'는 너무나 단호했다.


여러 번 부정을 당하고 나면 불쾌하다가 결국 대화를 시작하기 꺼려진다. 나는 그에게 다섯 번 이상 '아니오'를 듣고서는 질문하기를 피했고,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뭐든 아니라고 했다. 아니라고 한 것들도 들어보면 아닌 것도 아닌 얘기들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심해지고 독서모임이 와해되면서 더 이상 아니오맨과 대화하는 일은 없어졌다.


아니오맨을 보며 아닌 것도 아닌 얘기를 '아니오'라고 시작하는 것과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그렇군요'라고 시작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했다. 어차피 진짜는 '맞고 틀림' 선포하는  문장이 아니다. 다짜고짜 아니라고 불쾌함을 주고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오맨에 대한 불쾌감을 나는 이렇게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느 때는 꼭 부정의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아마도 머리에서 정리가 안되고 마음만 다급해져서 그렇겠지.. 사실은 잘 모르면서 잘 알고 있는 척을 하기 급급해서 상대에게 반기부터 들고 보는 것은 아닌지..


'그럴 수도 있지'의 마음을 재정비해본다. 상대방에게 긍정하고 시간을 벌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라는 것을 해봐야지. 그리고 그 순간 아는척의 확장이 아니라 내 인식의 확장을 누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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