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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Jan 13. 2023

엄마가 사 온 토정비결 책

4500원에 만나는 올해의 운세

“야들아 토정비결 책 삿다. 주변 사람들 운세 몽땅 봐준다”

엊저녁 글쓰기 모임 중에 가족 단톡방에 엄마의 카톡이 올라왔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에 공짜로 올해의 운세를 볼 수 있는 곳이 없냐고 묻더니 결국 책을 산건가. 엄마의 장난기 어린 웃음을 보면 올해 심각하게 고민되는 일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지만, 서점에 가서 직접 책까지 사다니? 운세가 궁금하긴 단단히 궁금한가 보다.


오늘 아침에 엄마는 거실에 돗자리를 폈다. 토정비결책은 내 생각보다 얇고 작았다. 엄마는 누-런 갱지를 팔랑거리면 2023년이라고 쓴 페이지를 펴고 안경을 고쳐 썼다. 그 작은 책으로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 치 운세를 볼 수 있다며 자랑을 했는데, 나로선 그것은 책의 장점이라기보단 신뢰성을 크게 떨어트리는 특징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의 3년 치 운세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건가?


운세를 보는 방법도 장난처럼 쉬웠다. 2023년 페이지의 좁은 가로세로칸 속에 빽빽하게 한자와 숫자가 들어앉아있었고, 엄마는 몇 칸을 손으로 더듬더니 내 생년월일에 맞는 세 자리 숫자를 맞춰냈다. 432! 점괘가 나왔다는 듯이 명쾌하게 숫자를 말하고 그것에 맞는 페이지를 훌훌 넘겼는데, ”오!! 같은 운세구나 “ 엄마가 놀라며 말했다. 올해 엄마의 운세와 내 운세가 같은 페이지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신뢰성이 바닥나서 ‘뭐 이리 대충 만든 책이 있나’ 할 만도 한데, 어쩐지 묘하게 설득이 되기도 한다. 한집에 사는 가족은 공동 운명체로서 어쩔 수 없다는 건가?


나는 조금 적극적으로 책을 받아 들고 정성스레 내 운세를 읽어보기로 했다. ‘교지의 월상씨가 멀리 흰 꿩을 올린다.‘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풀이를 요청하자 책주인은 대충 좋은 뜻이라고 말해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순풍에 배를 타니 날로 천리를 행한다.‘ 역시 좋은 말 같은 것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뭐야, 그냥 좋은 말만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자, ’ 재물을 논하면 재물을 구해도 얻지 못한다 ‘는 경고 문구가 때마침 나왔다. 그렇지, 욕심부리면 될 것도 안 되는 법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덕담이 잔뜩 있고 도덕적인 문장들로 마무리되는 올해의 운세였다. 엄마는 내가 책을 덮을 때까지 옆에서 계속 ’ 재미로~ 재밌잖아~‘를 수차례 말했다. 그런가? 좋은 말을 잔뜩 들으니 재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니까.


생각해 보면 어제 했던 글쓰기 합평도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합평을 해주십사 하고, 많이 배워가야 하니 부정적인 피드백도 겸허히 받겠다는 배움의 자세는 무척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글을 써온 사람들이 진짜 기대하는 것은 내 글이 꽤 읽을만한 것이라는 ‘좋은 말’이 아닐까. 우리는 꾸준히 쓰려면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위대한 글 ‘단 한 편’으로 생을 마감하려는 계획이 아니라면 말이다. 가뜩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품을 들여 쓴 글이 난도질당한다고 생각하면, 꾸준히는커녕 절필을 하게 되는 건 꽤 쉬운 일이다. 그러니까 ‘재물을 논하면 재물을 구해도 얻지 못한다’고 뒷부분에 경고하는 토정비결처럼, 발전시켜야할 부분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말’뒤에 붙이는 편이 더 좋다.


물론 엄격한 잣대로 남의 글을 비평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창작의 고통을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그러면 안 되지...!! 때때로 흐름이 유려하다가 황급히 마무리된 글을 보면, 왜 이모양이냐고 따져 묻기보다는 뒷마무리에 대한 고통이 느껴져서 고개를 끄덕이며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글쓰기 전에는 심지어 출간작가들의 글도 냉정하게 비판(혹은 돈 아깝다고 비난)하곤 했는데, 나도 한번 써보니 생면부지의 작가들에게도 입바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글을 써내는게 어디야? 심지어 책을 묶어낸게 어디야?


예전에는 리더로서 멤버들의 글이 좋다는 표현에 한계가 많았다. ‘재밌어요. 공감되네요’라고 말하기는 쉬운데, 대체 어느 부분이 왜 재미를 유발하는지, 공감이 된다면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스스로를 잘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합평 횟수가 늘어나면서 보는 눈이 늘었나? 아니면 표현력이 늘었나? 많은 문우들의 글을 몸으로 통과시켜보고 나니, 이제는 멤버들의 글에서 내가 어떤 즐거움을 느끼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혼자 느낄 때보다 당사자에게 전달될 때 몇 배가 된다는 것도.


그렇다면 결국 엄마도 그 ‘좋은 말’을 듣자고 토정비결 책을 산 게 아닐까? 실제 운이 어찌 됐든 운세가 좋다고 믿고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내 글의 부족한 점이야 어찌 됐든, 따뜻한 합평 속에서 계속 써나갈 힘을 얻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와 나는 둘 다 올해 ‘순풍에 배를 탄’ 것처럼 좋은 운세니까, 계속 잘해나갈 수 있다고 믿어본다. 우리 합평 모임도 순풍에 배탄듯이 순조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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