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치오 카텔란: WE>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본 글에는 전시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함께 몇 가지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시를 보기 전인 분들에게는 관람 전 참고하면 좋을 정보들이 되기를,
이미 전시를 본 분들에게는 작품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나눌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또 직접 관람할 계획은 없으나, 전시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적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예술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글이니, 부디 즐겁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 마우리치오 카텔란
- 작품 소개와 개인적인 감상
- 이야깃거리
- 심층적인 감상을 위한 덧붙임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1960년생의 이탈리아 출신 아티스트로, 그가 2019년 아트 바젤에서 출품한 작품이 1억 4천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대신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시체 닦는 일까지. 이처럼 카텔란은 어렸을 때부터 또래들은 알기 어려운 다양한 세상을 마주해야만 했다. 책이나 TV에서 비춰주는 세상이 아닌, 조금은 낯설고 거친 세상.
때문에 카텔란이 만드는 작품은 항상 논쟁거리가 된다. 이번에 리움에서 기획한 [WE] 전시는 그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며 이러한 논쟁거리가 왜 대두되었는지 느끼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WE>에는 총 38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 중 대표작과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작품들에 대한 기록.
<무제>(엘리베이터)
작품 설명에 따르면 전시장의 ‘작은 친구들’을 위한 엘리베이터라고 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카텔란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한 모방과 풍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작은 것들, 나아가 약자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악동이라고 불리는 카텔란이지만, 그를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에 대한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장난스럽지만, 장난삼아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이 작은 엘리베이터는 실제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 층으로 이동하는지 볼 수 있고, 벨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 실제 엘리베이터와 똑같이 구현된 내부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전시를 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 작품을 통해 카텔란이 얼마나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쓰는지 느낄 수 있고, 그렇기에 모든 작품들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무제>
리움미술관 바닥을 파내어 설치한 작품으로, 얼굴을 자세히 보면 카텔란 본인임을 알 수 있다.
이 인물은 태연하게 관객들을 응시하고 있다. 뜬금없는 장소에 머물고 있음에도 그의 표정에서 당황스러움이나 곤란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바닥을 통해 전시장에 침투한 것이다.
카텔란도 그런 아티스트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그 반응을 태연하게 응시한다.
<코미디언>
위에서 말한 키워드(침투, 응시)를 잘 보여주는 카텔란의 대표작이다. 하나의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인 후 일어났던 일,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까지도 이 작품의 정의가 되고 있다.
벽에 붙은 바나나가 아트 바젤에서 12만 달러에 낙찰된 것, 그리고 다른 예술가가 그 바나나를 먹어버린 것, 때문에 작품이 새로운 바나나로 교체된 것, 그 이후에도 바나나는 전시됐을 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새로운 바나나로 교체된다는 것. 이것들이 이 작품의 속성이다. 마치 고전 작품을 볼 때 어떤 재료로 그려졌는지, 어떤 장면을 다루는지, 어떤 상징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처럼.
그렇다면 <코미디언>의 원본은 무엇이며, 이 작품을 소유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마트의 바나나와 이 작품의 차이는 무엇인가?
<무제>(시스티나 성당), <아홉 번째 시간>
<천지창조>(정확한 명칭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으로 유명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그대로 축소한 작품이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이 주는 압도감은 엄청나지만(천장화/벽화 특성 상 관객은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고, 작품을 올려다봐야 하기 때문에) 카텔란의 성당은 하나의 ‘관광지’처럼 느껴진다.
<무제>는 정교한 복제본이지만 본질이 '복제품'이기에 원본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또 실제 시스티나 성당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세세한 부분을 볼 수 없지만, <무제>는 미니어처 버전이므로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까지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더불어 내부를 보고 밖으로 나오면 운석을 맞고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을 만나게 된다. 성당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후 마주하게 되는 이 장면은 여러가지 의미로 충격을 준다.
우리가 성당을 보면서 느꼈던 위압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신은 존재하는가?
참고로 이 작품은 2층에 전시되어 있는데 한 번에 3~4명씩만 들어갈 수 있어 줄을 서야 한다. (수요일 2시였는데 줄이 있었다…)
<밤>, <프랭크와 제이미>
어두운 미국 성조기에서 별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성조기에 박힌 총알 자국들이 ‘별’처럼 보인다.
작품 맞은편에 거꾸로 서 있는 뉴욕 경찰들(프랭크와 제이미)들은 팔짱을 낀 채 이를 방관하고 있다.
미국을 풍자하는 작품은 수도 없이 많지만(특히 현대 미술에서는), 대부분은 미국인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배치됨으로써 '미국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미국인'이라는 풍자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러 개의 작품이 배치를 통해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은, 기획자(혹은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배치하는지/또는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는지에 따라 전해지는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품의 의미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본질적으로 예술 작품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림자>
전시장에 냉장고가 설치되어 있고, 그 옆에 전시 스태프 분이 서 있다. 호기심에 살짝 열린 냉장고 문 틈으로 다가가면, 그 안에 앉아 있는 카텔란의 어머니를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사람을 어떻게 냉장고에 넣어? 소름끼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냉장고에 사람이 있네, 웃기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슬퍼진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도.
카텔란의 어머니는 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돌아가신 엄마를 가장 많이 떠올렸을 곳은 어디였을까, 생각해보면 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저마다 갖고 있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카텔란은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을 작품으로 풀어내어 관객에게 전달할 뿐 아니라, 관객이 자신의 개인적인 서사를 꺼내게끔 유도한다.
이 외에도 관객들은 작품 앞에서 평소에는 떠올릴 수 없던 많은 질문들과 마주한다.
나에게 있어 '좋은 작품'이란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드는 작품이다.
이야기 할 주제가 많다는 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명확하며, 작품이 흡인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WE>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우선 이 전시는 관객을 압도한다. 우리는 희화화된 작품을 보며 웃고 떠들며 '내가 작품을 향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생각은 처참히 깨진다. 매 10분마다.
전시가 시작되는 지하 1층에서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고막을 때리는 북 소리가 들린다. 이 작품은 가벽 난간에 걸터앉아 있는 소년이다. 북 소리가 들리면 작품을 보던 관객들은 일제히 북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이처럼 카텔란은 관객들의 집중을 끊임없이 흐트러트린다. 관객의 주체적인 관람을 방해하는 것이다.
더불어 작품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기에, ‘이 작가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일까?’보다는, ‘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떠한가?’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작품이 강렬해서 그런지, 보다 솔직한 자신의 생각과 마주할 수 있다.
다만 카텔란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작품들(e.g.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대형 카펫)의 경우, 입장 전에 관람에 주의해달라는 안내가 선행되면 좋겠다. 관객이 신중하게 보는 게 최선이지만, 아무래도 SNS로 전시를 접하고 온 몇몇 사람들은 작품이 작품인지 인지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작품이 손상될까 앞에서 지키고 있는 스탭 분들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반면 캡션을 최소화하고, QR코드를 통해 조회할 수 있게 한 점은 아주 좋았다. 작품을 충분히 바라보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기획자의 배려. 공간을 넓게 쓴 점도 좋았다.
1) 예술 작품이란 무엇이며,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예술 작품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그 작품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면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어떻게 구분하는지까지, 모든 것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요즘은 더 어려운 주제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의미는 바라보는 관객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영역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요즘은 더더욱.
이 전시는 관객이 여러가지 질문(논쟁거리)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게끔 자극하고, 나아가 자신의 개인적인 서사까지도 꺼내게 만든다. 이런 역동적인 과정에서 작품의 의미는 더욱 풍성해진다.
2) WE 전시 연계 이미지 쓰기 워크숍 <작품은 누구의 것인가>
나 역시도 더욱 풍성한 관람을 위해 전시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들을 찾다가, 리움에서 진행하는 전시 연계 워크숍을 발견했다. 날짜는 이미 끝났지만, 워크숍 소개 글에서 작성된 질문들이 인상적이다.
하나의 미술 작품이 상해가는 바나나라면 그것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비둘기에 유령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그 작품은 이전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될까요?
3) 리움 소장품전 및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기획전 관람
<WE> 전시를 예매하면, 리움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래 두 개의 전시도 관람할 수 있다.
- 리움 소장품전: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규모와 그 수가 엄청나므로, 시간과 체력이 된다면 함께 보는 것을 권장한다.
-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 소개글 참고
현대 미술이 등장하면서 관객이 선호하는 작품/전시의 개념도 바뀌었다. 요즘은 '참여형 전시'라는 말을 많이 보게 되는데,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관람해야 하는 예전의 전시가 아니라 작품을 직접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전시에 대한 니즈가 커진 것이다.
<WE>가 던지는 질문이 거칠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전시에 열광하는 이유는 피할 수 없는 질문과 직접 마주하고 답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과정에서 세상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므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품의 의미는 관객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과 의미 역시 우리로부터 비롯된다.
이 전시가 던지는 질문들이 우리의 세상을 넓히고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