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 프로젝트 글 모음]
- EP0. 29살, 스타트업 퇴사하고 뉴욕 갑니다 - 여행 프롤로그
- EP1. 여행이 주는 설렘의 실체 -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 EP2. 가진 것을 누리는 생활, 뉴욕 라이프
당신은 도전을 즐기는 사람인가요?
“낯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의 신념과도 같은 말입니다. 외모와 성격, mbti까지 똑같아 서로를 거울이라고 부르는 우리는, 안정감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는 여행 내내 낯설고 새로운 ‘해프닝’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해프닝을 전해볼까 합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곡(2221곡)을 녹음한 살아있는 전설, 86살의 베이시스트 ‘론 카터’의 공연에서 저희가 겪은 일을요.
뉴욕에서 생활했던 친한 언니의 강력 추천을 받아, 우리는 재즈 클럽 ‘블루 노트’에 가게 되었습니다. 재즈 클럽은 물론이거니와 그냥 클럽도 잘 모르는 제게, 그곳의 문화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첫째, 클럽 내부는 테이블로 빽빽했습니다. 사람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요. 둘째, 공연 1시간 반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부분의 자리는 가득 차 있었습니다. 셋째, 비좁은 테이블 사이를 아슬하게 지나 안내받은 4인석 테이블에는, 이미 다른 중년의 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1) 사람이 가득한 클럽 안에서
2) 약 3시간 동안 다른 손님(그것도 외국인)과 한 테이블에 앉아
3) 함께 식사를 하고 공연을 즐겨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종차별 당하는 건가?’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으나, 제 자리는 남아있는 자리 중 가장 좋은 자리였습니다. 모두가 같은 처지였죠.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겨우 햄버거와 오징어튀김을 주문한 뒤, 긴장을 풀기 위해 물을 마시려는데 갑자기 친구가 컵을 내려놨습니다. 컵에는 진흙 같은 이물질이 묻어 있더군요. 심지어 주문한 음식은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순간 이 모든 상황에 화가 났습니다. 환불을 요청하고 나갈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더군요.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제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부부가 말을 걸었습니다.
“너희 음식 안 나온 거야? 우리가 물어봐줄까? 우리 여기 서버랑 친해.”
남성 분은 ‘Jazz’가 크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블루 노트의 단골 고객인 듯했습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아니에요, 저희는 괜찮아요.’라고 답했지만 그분들은 지나가던 서버를 불러 세워 음식이 안 나왔다며 화를 내주었습니다. 서버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한 제스처를 하고는 확인하겠다며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중년 부부는 저희를 보며 ‘이런 건 괜찮은 게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그들과의 스몰 토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긴 서비스가 항상 이렇지 뭐!’하는 가벼운 불평부터, ‘너희는 재즈를 좋아하니? 도쿄에도 블루 노트가 있는데 가 봐!’, ‘오늘 공연하는 트리오는 정말 전설적이야. 론 카터는 86살인데 연주가 아직도 끝내줘.’하는 기대 어린 감탄까지. 그들의 눈은 어수선하고 복잡한 분위기를 잊게 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그들의 설렘이 저에게도 전해진 덕분이었는지, 곧이어 시작된 공연은 즐겁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아까의 당황스러움을 잊어버릴 정도로요.
공연이 끝난 뒤, 계산을 하기 위해 빌지와 씨름하던 저희에게 마지막까지 중년의 부부는 도움을 주었습니다. '팁은 이 정도로 주면 돼.' 손수 계산까지 해 주곤 클럽을 떠났습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떠나고, 거의 마지막 순서로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데 서버가 씩 웃으며 물었습니다.
“너희 옆자리에 있던 그 부부 누군지 알아?”
‘재즈를 좋아하는 아줌마와 아저씨?’ 속으로 생각하는데, 서버가 답하더군요.
“아주 유명한 살사 아티스트야. Ruben Blades라고, 집 가면서 꼭 검색해 봐.”
Ruben Blades(루벤 블라데스)
가수, 작곡가, 배우, 운동가, 정치가
전 파나마 관광부 장관
“살면서 이런 기적같은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파나마의 아티스트이자 전 장관, 그리고 브로드웨이의 여배우와 스몰 토크를 나누고, 함께 공연을 보고 즐기는 하루. 심지어 그들이 내 팁까지 계산해주고, 디저트까지 나눠먹자고 했다면? (물론 디저트는 거절했습니다.)
그게 바로 3시간 동안 제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 날 불편한 테이블을 거부하고 다른 자리에 앉길 요구했다면, 나오지 않는 음식을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가게를 나왔다면, 재즈 클럽의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옆자리 손님들과의 대화를 거부했다면, 그 모든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와 친구는 서로에게 사과를 건넸습니다. 소중한 하루를 망쳐버릴 뻔했다고,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요.
어쩌면 우리는 지난 많은 날, 익숙함과 편안함을 핑계로 소중한 순간들을 놓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새로운 순간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손을 꽉 맞잡았어요.
세상은 낯선 것 투성이입니다. 사람들은 나와 다르고, 내가 모르는 것들은 계속해서 늘어만 가죠. 하지만 그 수많은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새로움을 있는 그대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제 세상은 넓어질 겁니다. 바다 건너 어딘가에 있을 파나마를 지나, 더 멀고 먼 곳까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