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으로부터의 확장성, 낯선 세계로의 초대

리움미술관, 피에르 위그의 <리미널>

by 채정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Pierre Huyghe, Liminal @LEEUM ❘ 2025.02.27. – 2025.07.06.


피에르 위그는 다양한 매체와 주제, 소재를 통해 *경계(Liminal Space)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그가 구축한 <Liminal(리미널)>이라는 광활한 세계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잃어버리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Liminal: Occupying a position at, or on both sides of, a boundary or threshold)


리움 미술관에서 기획한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현대 미술 작가 ‘피에르 위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하고 낯선 개념들을 낯선 방식으로 다루는 작가이기에 리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전시장에 입장하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신화 속 한 장면과도 같은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주드람 4 (Zoodram 4)


<주드람 4>는 살아있는 소라게 한 마리를 보여준다.

수족관 속 소라게는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잠든 뮤즈>(1910)를 얹고 있다.

<잠든 뮤즈>는 기존의 형태를 벗어나, 소라게라는 생명체와 결합해 집이자 가면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


이어서 압도적인 크기의 스크린을 통해 영상 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리미널 (Liminal)


<리미널>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얼굴이 비어있는 존재를 보여준다.

이 존재는 걷고, 움직이고, 응시한다. 알 수 없는 공간 속을 걸어가다가 벼랑 끝에 서 있기도, 그곳에 누워 있기도 한다.

작품은 끝나지 않고 무한히 재생된다.


보는 내내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데, 영상 속 존재의 얼굴이 비어있어서 감정이나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도 작은 ‘얼굴’이, 존재를 이해하는 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된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영상은 전시장의 상황을 반영하여 ‘실시간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진다.

영상 속 존재는 비어있다. 비어있는 존재(=작품)는 관람객인 우리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고 행동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존재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 존재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 걸까.


우리를 움직이고 행동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리미널 속 얼굴이 비어있는 존재와 달리 우리는 채워져 있는 주체적인 존재일까?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작가는 한 인간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아닌 이 존재는 공간이자 경계적 환경(liminal milieu)으로 제시됩니다. 예민한 막처럼 존재하는 경계적 환경은 물리적인 환경을 감지하고,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는 정보를 받는 빈 공간입니다. 이 경계적 환경으로서 인간 형태는 미묘한 몸짓을 만들어내고, 언어가 되는 이 몸짓은 비인간 존재에게 읽히며, 이는 다시 인간 형태에서 다양한 행동을 유발하고 반응합니다. 그러나 비인간 존재는 자극을 찾고, 학습하고, 그 기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면서 전시를 넘어, 모든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여 구성되어 갑니다.


휴먼 마스크 (Human Mask)


이어서 <휴먼 마스크>에서는 반대로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으나 인간이 아닌 존재’를 다룬다.


폐허가 된 도시 속 홀로 남아 있는 생명체가 등장한다.

꽤 오랜 시간을 관찰하고 나서야 이 생명체가 원숭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데, 사람 가면과 가발을 쓰고 사람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소녀처럼 보이는 이 원숭이는 19분 동안 목적을 알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작가는 일본 전통 음식점에서 원숭이 종업원이 손님들에게 물수건을 가져다주거나 음료수를 건네기도 하는 영상을 보며 연민과 두려움을 오가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고, 동물과 인간 사이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매료되어 이들 중 한 마리를 섭외해 이 작품을 촬영했다고 한다.


즉 이 원숭이의 행동은 인간으로부터 학습되었고, 또 인간을 위해 이루어지지만 인간이 사라진 도시 속에서 그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 원숭이는 분명 그 자체로 살아있고, 존재한다.


U움벨트 – 안리 (UUmwelt – Annlee)


또 다른 영상 작업인 <U움벨트 - 안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를 인지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영상은 실재하지 않는 인물인 ‘안리’를 상상했을 때의 뇌 활동을 특정 인터페이스로 생성한 결과물인데,

함께 구성된 센서가 계속해서 외부의 변수들을 인식/학습하기에 지속적으로 수정된다고 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비인간의 인지로 재구성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이 작품은 개념 자체로 실재와 허구/인간과 비인간(인공지능)/작품 내부와 외부 환경 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16 (Cambrian Explosion 16), 이디엄 (Idiom)


전시장의 데이터를 반영하여 실시간으로 생성/변형되는 이미지부터,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스스로 움직이는 작품들까지.

피에르 위그의 작품들은 무작위성, 예측 불가능성과 같은 비정형화된 개념을 특정한 형태로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처럼 보인다.

이는 관찰자에게 낯설고 불편한 감정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로의 접근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위그는 해석(interpretation), 표상(representation), 변환 (transformation)의 문제로 수렴되는 장소를 만드는 실재와 허구의 영역을 탐구한다. 우리가 경험을 어떻게 구축하고 번역하는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그는 뮤지컬, 축제, 퍼펫쇼와 같은 이벤트와 오브제, 필름을 가지고 구체화한다.
때로는 위그의 완성된 작업이 투사된 이미지(projected image)로 나타날지라도 위그의 근원적인 관심사는 상황을 생산하는 것에 있다”
- 2006년 휘트니 비엔날레 도록


오프스프링 (Offspring)
카마타 (Camata)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 공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과 무력감이 느껴져서 힘들었다.

(특히 <리미널>)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연약함,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 같은 것들

삶의 의미는 주체성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래서인지 피에르 위그가 말하는 불확실성이 벗어날 수 없는 한계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반대로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확장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호하고 낯설다는 감정은 정해진 기준과 익숙한 세계를 벗어난 개념이다.

그 경계를 흐리는 순간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무한하게 넓어질 수도 있다.

내가 정의하는 나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 새롭게 존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작품을 보면서 어떠한 감정이 느껴졌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감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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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위그의 작업들이 작품과 관객의 관계를 비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전시된 작품이 관객에게 ‘감상’되는 일방향적인 형태가 아니라, 작품이 관객을 압도하거나 감정/행동을 유발하고, 나아가 관객의 행동을 기반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형태.


비슷한 이유로 ’인간/비인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존재를 인간의 관점에서 정의하지만, 사실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개념을 대상화하지 않고, ’비인간‘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 게 아닐까 싶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관점인만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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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의 일부로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들이 발전하고 있고, 창작의 영역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해 작품과 관객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이 대단했다.(정확한 원리는 밝히지 않았지만)

창작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형태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실험적인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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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번 전시는 유독 관람객을 압도(혹은 통제)한다는 느낌을 준다.

전시장으로 입장하기 전부터 줄을 서서 몇 가지 규칙을 안내받게 되는데

1) 내부가 매우 어두우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

2) 내부를 돌아다니는 마스크를 쓴 사람은 작품의 일부(이디엄 (Idiom))이니 절대 만지면 안된다는 것,

3) 작품 설명이 담긴 리플렛은 꼭 반납해야 하며 가급적 별도의 QR코드를 통해 확인하라는 것 등이다.

또한 짧지 않은 시간의 영상 작품을 관람해야 하는데, 의자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아서 관람해야 한다.

이러한 제약들은 관람 내내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이게 작가(혹은 기획자)가 의도한 것일지는 모르겠다.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편하게 볼 수 없는 전시…)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전시장, 작품 설명의 부재, 공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스크린, 끝을 알 수 없는 영상 작품들, 생소한 생명체들, 풍경들


낯설고 불친절하기까지 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벽을 더듬어가며 작품을 향해 나아갔고, 숨을 죽인 채 작품에 몰입했다. 그 누구도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대중에게 전시 관람은 여가나 취미 생활의 개념을 넘어선 것일까?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갖고 전시를 관람하러 오는 것일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낯선 경험이 우리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



참고 자료

<전시 소개>
리움미술관은 현대미술의 고정된 형식을 깨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해 온 세계적 작가 피에르 위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리미널》을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의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와 공동 제작한 작품을 포함하여 피에르 위그의 지난 10여 년의 예술적 탐구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전시는 신작 〈리미널〉(2024–현재), 〈카마타〉(2024–현재), 〈이디엄〉(2024–현재)과 대표작 〈휴먼 마스크〉(2014), 〈오프스프링〉(2018), 수족관 시리즈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협업으로 생성되는 〈U움벨트-안리〉(2016–2025), 〈암세포 변환기〉(2016) 등 총 12점의 작품으로 구성됩니다. 이 작품들은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그램과 생명공학을 결합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관계가 생성하는 감각적이고 시적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이번 전시 제목 ‘리미널’은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전시 《리미널》은 불가능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전시에서 새로운 주체성은 어떻게 탄생될 수 있는가,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의존성을 어떤 방법으로 인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됩니다. 이를 위해 전시는 예측 불가능성을 가시화하고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적 환경을 제안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거나 분리되면서 그 의미가 진화합니다. 여기서 관람객은 스스로를 낯설게 인식하고, 인식을 확장하며 또 다른 현실을 상상하게 됩니다.

피에르 위그에게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환경입니다. 전시 《리미널》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생명체들이 진화하는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수족관의 환경처럼 특별히 구성되어 있지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세계’입니다. 여기서 존재들은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배우고 진화하며 복합적인 환경(milieu)을 형성합니다. 전시와 동명의 작품 〈리미널〉에는 얼굴 없는 인간 형상이 등장하는데, 이 형상의 움직임과 시선은 전시 공간의 센서가 포착한 환경과 인공 신경 조직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형상은 외부 조건을 학습하고 기억을 쌓아갑니다. 전시에는 황금색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언어 〈이디엄〉이 인간의 발성과 신경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성됩니다. 〈U움벨트-안리〉 이미지는 〈암세포 변환기〉가 전송하는 세포분열 데이터와 센서가 포착하는 외부 조건과 만나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며 타자의 관점으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게 합니다. 〈카마타〉에서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인간 해골을 중심으로 기계가 신비로운 의식을 수행합니다. 이는 끝없는 장례 의식을 소환하며 기계가 인간의 유해를 탐사하는 새로운 신화의 시작을 알립니다. 영상은 전시 공간의 센서가 송출하는 이미지를 실시간 편집하여 시작과 끝이 없는 형태로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관람자는 이 의식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동안, 서로 다른 현실들 사이의 교류와 신체 없는 존재에서 생명 없는 인간의 몸으로의 전환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이야기의 형태가 선형성을 벗어날 때 흥미를 느낀다. 역사를 넘어선 서사 밖의 허구에 관한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혼돈을 지날 수 있게 해 주는 여러 가능성의 투영이다” ─ 피에르 위그
<작품 설명>
https://www.leeumhoam.org/qr/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