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계엄 관련문서를 재구성해 추미애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언급한 ‘제주 4·3’의 명칭이다. 이렇게 빈약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 난폭하고 초라한 표현을 정부에서 작성한 문건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제주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많은 도민분들이 4·3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동네마다 집집마다 같은 날 부모, 형제자매의 죽음을 겪었기에 같은 밤 고인을 위한 향을 피우고 같은 의미의 제사상을 차려 각자의 집에서 남아있는 분들이 제사를 치르며 넋을 기리며, 따로 또 같이 이런 마음과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제주에서 ‘4·3’은 아직도 쓰라리고 조심스러운 기억이다.
제주 4·3의 정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제주 4·3 사태, 제주 4·3 사건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현재 사용하는 ‘제주 4·3’은복합적인 예단을 극도로 절제하고자 고심 끝에 정해진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리라.
이런 역사적 사건을 다수가 공감하는 방식으로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함부로 단정 짓고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것은 폭력적인 의사표현이다. 이제 겨우 제주살이 8년 차에 접어든 보통의 중년인 나는, 작년에야 처음으로 4.3 평화공원에 찾아가 기도를 드렸고, ‘4·3’은 ‘비극’이었으리라 겨우 가늠할 수 있었음에 부끄러웠다.
어떤 사람들, 그리고 그들 전체가 겪은 ‘비극’을정의하는 것은 이처럼 긴 시간이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지금 섣불리 매듭짓는다 해도 지속적으로 바뀌어 갈 것이기에,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의견을 모으고 협의를 만들어가야 할 정부는 지금, 서로 사랑하는 남녀를 젠더이슈로 갈라치고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세대격차(차이)라는 이름으로 싸우게 한다.
지금 우리나라를 칭찬하고자 정말 애써 노력해 보자면,이번 계기를 통해, 아직 우리 서로에 대한 존중이 남아있을 때, 그동안 사회에서 보지 못했던낯선 방식으로 행동한다며 그 ‘유별남’으로 상징되던 ‘MZ세대’가 그들에게 닥친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지 ‘응원봉 시위’라는 그들의 의사표현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도록 내몰아준 것이리라.
제주도라는 지역민 전체가 직·간접적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비극과 슬픔'을 그저 살면서 몇 번 놀러 가는 관광지에서 일어난 사건 정도로 폄하하는 자, 더 이상 이런 대표는 안된다.
4·3을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그 어디에 사는 누구에게나 들이닥칠 수 있는 '나의 일이자 나의 슬픔'으로 가슴 아파하고 위로하며,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든 다시는 생겨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매년 되새기고, 매 순간다짐하며 실천할 수 있는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무리 멀리 있고 너무나 작아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든 달려와 살펴봐줄 수 있는자, 이제는그런대표를 찾아야 한다.
이제 4·3은 제주라는 지역만의 '참극'이 아니었음을 대한민국 전체에 이야기해야 하며, ‘4·3’이라는 두 개의 숫자만으로 우리나라 전체에 크나큰 비극이 있었음을 알려야 한다.
제주 사는 나도 우리나라 일이라며 용산에 왔고 여의도에 갈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한국사람 모두에게 '한국의 4·3’을 이야기하자.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오후 1시 49분.
이제 나는‘그’의 마지막 출근이자 영원한 퇴근을 축하하는듯한 즐거운 캐롤을 들으며 여의도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