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와 질문, 느낀점들.
지난 글에서 딸아이와 수학공부 하는 과정을 남겼습니다 (https://brunch.co.kr/@chekss/18).
자기주도성과 공부.
어떻게 하면 이 두가지를 같이 가져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나며 몇 가지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질문에 답하고자
고민하고 책을 찾아보고 주변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것이 곧 '아이가 하기 싫은 건 시키지 않는다'는 아닙니다.
강압도 좋지 않지만, 자유방임 역시 자율성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이가 불량식품 10개를 먹고 싶어 해서 그렇게 하라고 놔두었습니다.
몸에 해로운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 경험이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는 힘과 크게 관련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되 최소한의 경계설정과 방향제시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를 정해주는 것이죠.
여기엔 부모가 '아이에게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라는 전제가 들어가게 되는데요.
부모도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때그때 최선이라고 판단한 방향을 제시해 줄 뿐이죠.
언젠가 아이도 스스로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경계를 정할 줄 알게 되겠죠?
그때까지 차츰차츰 선택과 책임을 넘겨주는 것.
이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정보제공과 필요하면 언제든 도울 것이라는 메시지도 중요할 거 같습니다 ('The self-driven child' 참고).
-정보제공: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 '불량식품이 대체 왜 안 좋은지?' '수학공부가 어떤면에서 도움이 되는지?‘ 충분히 정보를 알려주고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기).
-일관적 메시지: 부모로서 '나는 항상 네 옆에 있을 것',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기댈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더 자발적일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거죠.
외재적 보상(대표적으로 달다구리, 돈, 칭찬)의 부작용에 대해선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 같습니다.
그나마 있던 내재적 동기도 사라지더라.
보상이 사라지면 무기력에 빠진다더라.
창의성이 저하되고, 꼼수만 늘게 된다더라 등등.
이런 얘길 듣다 보면 '아 외재적 보상은 무조건 안 좋은 거구나' 생각이 들게 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적절한 당근의 사용은 오히려 필요하다'
('이거 다하면 아이스크림 사줄게', '큰 리액션' 등).
특히 습관형성의 초기가 그렇습니다.
어떤 과제에 대해 의미나 재미를 찾으려면 어느정도 해봐야 합니다.
근데 시동조차 안걸리면 거기까지 가지도 못하게 되는거죠.
외부 보상이 시동거는데는 최곱니다.
그리고 특정 기질일 경우에도 초기 보상이 효과적일 거 같습니다.
TCI(기질성격검사)상 인내력이 낮고 자극추구가 높은 아이들처럼요.
이 아이들은 특유의 폭발력은 있지만, 즉각적 보상이 없는 일을 지속하기 어려워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은 외부 요인이어도, 차츰 내재적 동기나 자발성으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엔 큰 리액션과 폭풍칭찬을 해주었지만 차츰 "어려운 문제 풀어서 기분이 어때?"와 같이 내면의 감정에 주목하도록.
-처음엔 진도를 하나하나 정해주었지만 차츰 "오늘은 너가 어디까지 풀지 정해볼래?"와 같이 스스로 선택하는 힘을 키워가도록.
지난 글에 쓴 것처럼,
수학공부 초반 아이의 저항은 생각보다 거샜습니다 (툭하면 책상에 엎어지고, 개발새발 글씨, 연필심 분질러먹기).
아이의 반응만 보고 '이게 아닌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하며 위축되었습니다.
부모가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이모양이니 무력감 마저 느껴졌습니다.
아이의 짜증과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습니다.
'으 웬수같은 수학 너무 싫어!'
'내 평생 다시는 수학공부 하나 봐라'
덜컥 겁이 났습니다.
모든 걸 그르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수학을 재밌게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건데 거꾸로 가고 있나?
낭패감이 들었습니다.
그즈음에 챗지피티의 대답이 꽤나 위로가 되었습니다.
길게 얘기했지만
한마디로 '원래 그래요'라고 들렸습니다.
'원래 지지고 볶고 난리 치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 안에 자기주도성이 생기는 거예요'
라고 들렸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아이의 짜증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내재적 동기와 자율성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꽤 편안함을 찾은 듯했습니다.
제 불안한 예측처럼 수학을 원수 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 이제 수학 잘해"라며 뜬금없는 자신감을 비칠 때도 있습니다.
아이의 긍정적 변화는 항상 한발 늦게 쫓아오는 거 같습니다.
아이의 자율성을 위한 부모의 노력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찾아온다면 그땐 좀 더 의연하고 싶습니다.
아이의 짜증보다 아빠의 믿음과 인내가 더 큼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점 외에,
생생하게 효과를 경험한 것이 있는데요.
바로 루틴의 힘입니다.
어떤 일이든 반복될수록 자동화되고, 저항은 사라진다는 것이죠.
아이의 짜증이 많이 감소한 것은
사실 자율성이나 동기가 아닌 루틴의 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뭐가 맞든 루틴(습관)의 힘은 강력한 것 같습니다.
자발성과 동기를 키워나가는 과정 중에도 든든한 힘이 될 거 같습니다.
'비행기도 이륙할 때 가장 많은 연료를 태운다.'
반드시 수월해지는 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진도를 찔끔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꾸준히만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