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입니다.
얼마 전 수학 단원평가에서 절반 가까이 틀려왔습니다.
걱정이 됐습니다.
학원은 안 다니고, 집에서 따로 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수학공부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앞날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수포자의 길로 가는 건가.'
정신 차리고,
일단 집에서 수학공부를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부모 둘이서 달라붙어 신경 쓰고 공부를 돌봐주니.
잘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는 수학공부를 하기 싫어했습니다.
정말 5초도 집중하길 어려워했습니다.
틀린 문제에 대해 알려주려 하면
아이 안에서 부정적 감정이 요동치는 거 같았습니다.
숫자를 개발새발 썼습니다.
연필을 세게 눌러써서 연필심이 부러져 나갔습니다.
틀린 답이 나오면 종이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연필로 박박 그었습니다.
이내 책상으로 엎드렸습니다.
너무 힘들다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저와 아내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뭘 얼마나 했다고??'
공부를 엄청 심하게 시킨 것도 아닌데.
고작 5분 했다고 이럴일인가?
아이의 반응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애써 침착한 척하며
공부한 것들을 적용해 봤습니다.
정석적인 노력들.
-귀찮고, 하기 싫은 감정수용
-의지와 용기 낸 것을 지지
-과제가 만만해지도록 쪼개기
-부모가 함께 동참하기
-일상의 필요와 수학개념 연결해 보기
-게임하듯 문제풀이 접근하기
생각보다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동기는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약간의 강압을 섞자니 아이의 자율성이 손상될까 염려되었습니다.
'이것만 하면 아이스크림 사줄게'처럼 보상을 주자니 외재적 동기가 강화될까 우려되었습니다.
'해보자-하기 싫다' 실랑이에 지쳐 수학에 질려버릴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가장 원하는 건 아이가 수학을 즐겼으면 하는 건데 말이죠.
여기까지가 제가 맞닥트린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학습지 풀이를 한 지 2~3개월이 지났습니다.
저희는 뭔가 답을 찾았을까요?
드라마틱한 반전의 계기가 있었을까요?
아뇨.
좌절감을 느끼며 그냥 했습니다.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의 부정적 감정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냥 해야 되는 건가 보다'하고 받아들이게 된 거 같습니다.
가끔이지만 꽤 즐거운 표정으로 하루 분량을 끝낼 때도 있습니다.
바랬던 거처럼 아이가 자발적으로, 즐거워하며 공부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합니다.
(책상에 자빠지고 연필심 분질러먹던 때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작은 도약이지만 대견했습니다.
아이도 그렇게 자신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아이의 자율성과 동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이와 실랑이하는 중에도 여러 질문이 들었습니다.
1. 하기 싫다는 아이를 데리고 수학공부를 하는 게 맞나? 아이의 자율성이 중요하다는데 너무 부모주도적인 거 아닌가?
2. 아이가 시동조차 걸리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3. 공부한 거 열심히 적용했는데 왜 반응이 없을까?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나?
4. (초반 아이의 저항을 보며) 앞으로도 학습지 1장 푸는데 이 난리를 피워야 하는 건가?
다음 글에는 위 질문에 대한 고민의 결과들을 써보려 합니다.
(오늘 오후쯤 올릴 수 있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