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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찡 Dec 01. 2015

꼭 쥐지 말고 힘을,   

04. 우리가 또 만난 겨울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글을 쓰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내 무심하고 적은 표현 대신 투박하더라도 진심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또 그는 정말 "좋은 남자친구"니까.  그를 칭찬하는 글은 널리 알리고 싶었던 - 기쁘게도 남자친구 자랑은 팔불출에 해당하지 않는다.- 터에 별도로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글들을 썼다.


이번 글은 지난 글들과 다르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자칫하면 내 입장에서만 쓰게 되어 그를 깎아내릴까 겁이 났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이런 글을 쓰려고 한다고 먼저 말했더니 괜찮으니 써보라고 용기를 줘서 고마웠다.

이 글 역시 이전 글들 처럼 <그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쓰는 글이다. 진심이 잘 전해지는 글이 되길 바란다. 



겨울이 왔어요 

그와 처음 만난 계절이 다가왔다. 그와 맞는 세 번째 겨울이다. 

떨어진 기온과 새어나오는 입김, 떨리는 온 몸이  겨울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그날부터 매일같이 사소한 메시지들을 주고 받으며 지냈다. 

아침엔 일어나서 출근을 했다거나 믹스 커피 한잔을 마셨다거나 하는 사소한 생활 속 일들에 의미가 생기던 순간들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새벽 두, 세시까지 깨어있는 날들이 늘어갔고 소박하게 마음을 나누다 사귀게 됐다. 나와 다르게 그는 다정한 표현을 잘 썼고 정말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일이 없을 정도로 자주 연락을 했다. 

당시 나는 매일 아침마다 수영을 했는데 운동할 때는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남자친구는 '방수팩을 사줄테니 수영장에 들고가라' 고 할 정도로 그 시간조차 아쉬워 했다. 

쉴 틈없이 연락했고 눈뜨고 있을때는 계속 카톡을 하고 살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는 편도 4시간 30분이 넘는 거리에 살고 있었는데 아무리 못봐도 2주를 넘긴 적이 없었다. 그는 기꺼이 나를 보기 위해 기차에 올랐고 그렇게 주말엔 함께 시간을 보내고 떨어진 기간에는 지문이 닳도록 연락을 해댔다. 그렇게 알콩달콩 추억이 쌓이고 내가 취업으로 인해 서울에 다시 올라오면서 길었던 장거리 연애에 종지부를 지었다. 


서로 같이 있는 시간에 너무 목이 말라서였는지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롱디'를 하면서 심각하게 싸운 적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 관계에서 장거리 연애를 했던 시기가 약이 되었고 튼튼한 뿌리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사소한 문제도 '롱디도 했는데 뭐' 이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됐다. 


흠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1년이 지나면서?

모두가 바빠지면서?


쌓였던 것은 시간과 아름다운 추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건, 초심을 잃어서 


시간이 지날 수록 그에게 서운한 점이 부쩍  많아졌다. 그가 달라졌다고, 심지어 변했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자면, 그렇게 끊임없이 연락을 하고 살았었는데 지금은 연락을 주고받는 pause가 좀 더 길어졌다던가

가끔은 연락을 스킵한다던가(!), 예전엔 내가 끊으라면 당장 끊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야구나 게임을 지금은 그 시간만큼은 꼭 지켜줘야 한다고 큰소리를 친다. 아이고 참나. 


그때마다 나는 매우 수동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그의 마음이 식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늘 한결같이 사랑받고 싶어했던 내 태도는 점점 짜증스럽게 변했고 그에겐 그게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내가 그에게 내놓은 답은 '헤어짐'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자존심이 상했던 거 같다. 

뭔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카드로 헤어짐을 이야기하면 그때마다 그는 이번엔 꼭 잘해보겠다고 붙잡아주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서로 앙금도 남았던 거 같다. 나는 그와 연애에 있어서 늘 끝을 생각했다. 그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헤어지는 생각을 했고 나의 그런 태도는 늘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처음엔 그가 변했다고 느껴져서 힘들었다. 

그렇게 잘해주던(!) 남자친구의 태도가 시큰둥해질때면 심장이 발등에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변하는 그가 원망스러웠고 세상에 한결같은 사람은 절대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시선이 생겼다. 어차피 이러다 헤어지겠지란 생각도 들었다. 나만 놓으면 끝이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대나 어쩐대나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변한 건 나인거 같다. 

아니 잠깐만, 나 왜 이렇게 집착하고 있지? 나 쿨몽둥이로 두들겨 맞아도 쿨할 만큼 되게 쿨했던 거 같은데

떨어져 있을 땐 나름 이미지 관리도 하고 자기관리도 잘 하고 내 할일도 잘 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왜 지금은 진동소리 하나에 심장이 쿵하고 눈치를 보고 그럴까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아니라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연애에서 가장 학을 떼며 싫어했던 상대의 모습을 내가 답습하며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사실 이건 내 잘못이 컸다. 어느새 내 취미와 특기, 삶 전체가 온통 남자친구로 가득 차 있었다. 

남자친구가 사랑에 빠졌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노심초사하면서 피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알맹이가 꽉 차서 자신감있고 반짝거리던 나를 사랑했을텐데 껍데기만 남아있는 나를 보면 그의 입장에선 내가 변한게 맞았다. 


이런 태도를 고수하다간 남자친구가 아니라 누구를 만나도 불행해질게 뻔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터놓고 대화하는 것을 택했고 서로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게 분명하니까. 그렇게 끝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와중에도 단 한 순간도 나와 헤어짐을 생각한 적이 없는 이 남자의 사랑을 믿어야 하는 의무가 이 연애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 수록 노력해야 한다. 

쌓이는 건 추억 뿐만 아니라 먼지도 함께 쌓이는 법이니 말이다. 바지런히 청소도 해야하고 정리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만히 놔둬 주는 것임을 느꼈다. 

억지로 궤도를 맞추려 하지말고 본래의 스타일로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다시 서로에게 감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더 좋은 것을 가지려면 지금 가진 것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또 싸우고 울고 상처받겠지만 그래도 함께 노력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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