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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찡 Dec 14. 2015

사진을 보다가

ㅣ 엄마의 나이, 스물일곱


나이가 든다는 것 


나이 드는 것을 잘 실감을 하고 살지 못했다. 이유는 내가 워낙 철없는 인간이라 그럴 수 있겠다. 

유명한 가수가 본인 노랫말로 표현했듯 '난 아직 아이로 남고' 싶기도 하고. 

어떤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한 '물기있는' 여자가 되고싶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들어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때만큼은 부정할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가 나이 먹고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건조함을 느낄' 때.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분이 풍성한 지성피부로 평생을 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세수를 하면 당긴다던데 나는 그런 속당김은 느낀 적이 없었고 샤워를 해도 바디로션은 바르지 않았으며 토너에 수분로션 혹은 크림 (그것도 유분기 없는 수분 100%)만 바르면 기초화장은 끝이었다. 

넉넉한 유분 덕에 주름 고민은 없었고 여드름 자욱들도 사춘기가 지나면서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건강한 피부 밸런스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던 내가 시간이 갈 수록 건조함을 느껴서 샤워하자마자 미스트를 뿌려야하고, 바디로션만으로는 부족해서 이름마저 리치한 바디버터를 듬뿍듬뿍 발라야 촉촉함을 느낀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가장 먼저 느끼는 느낌이 건조함이라니! 

슬프기마저한 것은 그 낯설고 반갑지 않은 느낌이 앞으로 더 자주 느끼게 될 것이란 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체의 수분이나 유분이 빠져서 내가 건조함을 느끼게 됐던 것일거고 그 부족함을 매우기 위해 적지않은 화장품, 건강보조식품의 도움을 받는다. 부지런하게 관리를 한다 하더라도예전과 같은 수분감을 되찾긴 아마 어렵지 않을까. 


엄마 나이가 된 나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수화기 건너편 엄마가 들뜬 목소리로 물으셨다.

 "딸, 엄마 결혼 사진을 발견했는데 보내줘볼까?"

 "응- 그래요 엄마"


카카오톡으로 온 엄마의 사진. 생긋이 웃고 있는 스물일곱살의 엄마. 1988년 11월이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나 내가 스물일곱살인 2015년도 겨우 3주 정도가 남았다.

사진 속 엄마와 내 나이가 동갑이 됐는데 동질감보단 아련한 이질감이 더 들어 신기했다. 

일단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너무 아름다워서이기도 했고, (반면 나는 반복된 야근에 장아찌처럼 쩔어(!) 있었다.) 스물일곱살인 엄마도 그저 나의 '엄마'로 보였고 어른으로 보여 그런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 내 나이 때 결혼도 하고 아파트도 사고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는데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나는 아직 '엄마'가 되어 가정을 꾸리기엔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비단 엄마가 될 준비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좀 모자란 점이 많다.-  아직도 아무데나 내 물건을 어지르고 살아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과자를 까먹고 나도 쓰레기통보다는 어딘가에 놓아둔(?)다. 써놓고보니까 좀 심각한 것 같다. 

나 시집은 갈 수 있을까?


사진 속 엄마의 나이와 내 나이가 같다는 걸 인지한 순간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만약에 지금 내 나이 그대로 88년의 엄마를 만난다면, 엄마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 때의 엄마는 내가 관심있어하는 수많은 주제들의 나열을 지금처럼 재미있어해줄까? 

엄마가 관심 있던 건 뭐였을까? 엄마도 나처럼 고민이 많았을까? 아이가 생기고, 아내가 된다는게 두려웠을까? 


1988년과 2015년의 스물일곱살의 보편적인 감성이 그래도 비슷하다면, 엄마도 분명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더이상 아이일 수 없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어른도 아닌 불완전한 모습때문에.


매일 덧발라야 하는 것


현명해진다는 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는 정도가 깊어지는 일이라 생각한다. 부족함을 알고 그것을 보완하려 노력하는 일. 자신의 부족함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을 이제서야 자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일테니 말이다. 

'건조함'을 느끼고 나서야 보습에 충실해졌듯이, 내 부족함을 자각하는 것이 현명해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자각하고 또 채워가다보면 나이만 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어른스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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