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시인의 사회
어렴풋이 중학생 때 봤던 기억이 있는 영화, 분명 학교에서 틀어준 영화였을 거다. 명작은 명작인지라 항상 '좋은 영화'라고 인지는 하고 있던 영화였고 분명히 그런 영화임은 틀림없었다.
운이 좋게도 이번에 극장 재개봉을 하게 되어서 몇 없는 기억을 주섬주섬 담아 다시 보러 가게 되었다.
사실상 처음 보는 영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예전에 봤던 기억은 거의 다 사라져 있었고 드문드문 장면들과 명대사만 기억났을 뿐, 작중 등장인물과 배경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장면은 당연하게도 카르페 디엠, 그리고 오 캡틴 마이 캡틴.
스크린으로 다시 보게 된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내 기억과 생각보다 훨씬 낭만적인 영화였다. 되려.. 이런 영화인 줄 몰랐다고 해야 하나. 하나하나가 새로웠고 깊은 감동을 주었다. 주인공과 친구들 무리는 하나 같이 개성 넘치고 멋있는 아이들이었고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키팅 선생님은 훨씬 더 멋있는 선생님이었다.
영화는 의외로 꽤나 하이틴 장르도 포함하고 있었으며.. 고전적인 성장물의 내용을 따라가고 있었다. 10대 청소년들의 방황과 넘치는 에너지를 재미있게 표현하여 지루하고 꽉 막힌 학교임에도 밝은 에너지의 아이들과 대비적으로 작용하여 더욱 흥미롭게 전개되었던 거 같다.
어찌 보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방황'이다. '방황'은 영화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방황은 혈기왕성하고 억압받는 것을 싫어하는 10대 청소년들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위지만.. 다들 알다시피 좋게만 보일 수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정도가 상대적이고 범위의 한도가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유독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영화들이 한국에선 크게 다가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게 우리나라에선 방황의 기준이 매우 제한적이고 좁지 않은가.
그 이유는 흔하디 한국의 압도적인 교육열과 입시제도 때문이 아닐까. 사실상 웰튼 아카데미는 한국 사회의 큰 축소판을 보는 듯하였다. 요즘은 정말 많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이 영화의 개봉 시기와 예전 우리나라의 사회를 고려한다면 정말 몇몇 사람들에겐 숨 막히는 트라우마가 올라왔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작 중 등장인물들에게 큰 공감이 갔을 터이다.
하지만 한국을 꼭 집지 않더라도 이러한 문제점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할 것이다. 가부장적인 집안의 권위, 사회의 엄격한 규율, 그리고 과도한 교육제도와 그러한 것들로 인한 꿈에 대한 거세.. 모두가 익히 알고 있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문제 일 테니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러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게 비춰주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죽은 시인의 사회인 것이다. 삶의 정수와 본질이 담겨 있는 이 작은 영화에 모여 우린 꿈을 갖고, 시를 쓰게 되는 낭만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실.. 먼 나라 꿈같은 이야기를 해주는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에서도 결국 등불 같이 빛나던 빛은 오래가지 못해 꺼졌고, 키팅선생님과 학생들은 결국 현실의 벽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거처럼. 마냥 행복하고 밝은 영화는 아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영화의 꿈같은 낭만 있는 이야기들은 전부 사라지게 되고 차가운 현실만이 남게 되는 듯 하지만, 마지막 토드를 시작으로 세상을 달리 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책상을 밟고 일어서서 외치는
'Oh Captain, My Captain'은 그럼에도 꿈을 갖고, 세상에 굴하지 말고 나아가자 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겨준다. 키팅 선생님의 온화한 미소는 덤. RIp 로빈 윌리엄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현실, 돈과 제도들은 분명 우리에게 필수적인 요소들이고 우리 삶을 영위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불변한 법칙이다. 어찌 보면 그러한 일들에서 숭고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전혀 틀린 일이 아니다.
문제는 강박과 압력이라는 것이다. 쓸모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원치 않는 톱니바퀴가 되어 챗바퀴를 돌리며 사는 삶. 나 자체가 아닌 삶을 사는 것을 강요하는 이 사회의 눈치가 문제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나 성장기인 청소년기에는, 자아존중감이 형성되고 사상과 신념을 세울 중요할 시기에.. 이런 식으로 반강제적, 아니 거의 강제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큰 타격이며,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우리는 뭘로 구성되어 있을까? 개개인은 자신만의 사상과 신념, 가지각색의 개성을 가지고 있을 테다. 나는 그러한 점들을 낭만과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뜻하는 게아닌, 그 자체 만으로 말이다. 단어에 뜻에 한정 짓지 않고 그저 그 자체로 표현이 되는 것.
중요한 것은 주체가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는 것 말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한다. 챗바퀴가 되지 말고 주체가 되는 삶을 살라고. 항상 관점을 달리하고 시와 낭만을 사랑하고.. 너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삶을 살라고 그 어떤 은유도, 비유도 없이 노골적이고 직관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희망찬 영화에서 결국 닐은 왜 죽은 걸까? 키팅 선생님이 쫓겨난 이유는..
...
사실 요즘 시대에 '낭만'이라는 단어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모든 것은 효율적이고 세상은 당연스럽게도 합리로 돌아가는 시대며, 사람들은 늘 자극적인 것을 찾는 시대이기에. 어쩌면 낭만이란 건 사서 고생에, 쓸데없고, 천하태평한 미련한 짓거리로 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시선들이 있고, 그러한 시선들이 모여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러한 사회에서 웰튼 아카데미와 닐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탄생한 것이고, 그러한 기관과 사람이 높은 권위에 있다는 것은 역시 이렇게 합리로 돌아가는 세상이 옳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사실 늘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영화는 있지 않았나.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들은 너무나 많았고..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데 충분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더욱더 죽은 시인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그런 환경에 점차 잡아먹히고 있는 건 정말 오래되기도 하였고.
어찌 보면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러한 현실에서도 너의 길을 잃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씁쓸한 현실이어도 꼭 꿈을 갖고, 시를 쓰는 낭만을 잊지 말라고.. 얘기해 주는.
모두가 마음속에 자신만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품고하루하루에 의미를 담아 현재를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선과 사회에 휩쓸리지 않고 그저 나의 시시각각 바뀌는 시선을 통해서 모든 걸 바라보는 삶을
그 삶을 통해 나 자체가 되기를
-죽은 시인의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