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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mie Sep 28. 2018

미국 도착, 첫 번째 집을 얻기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던 미국에서 처음 며칠


인천 공항에서 미국 디트로이트 공항까지 12시간, 공항 체류 3시간 후 다시 뉴욕의 뉴왁 공항까지 2시간여. 뉴왁 공항에서 우리가 미국에서의 처음 사흘을 묵기로 예약해둔 호텔까지는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약 2시간 소요). 처음엔 셔틀 등도 알아보았는데 현지 전화번호 같은 것이 없으니 예약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뉴왁 공항에 있는 Hertz에서 작은 차를 하나 예약해 두었던 것.


그랬는데... 여기서 우리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 현지에 도착하면 바로 개통되기로 했던 유심이 개통 되질 않았다.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아무리 휴대폰을 연결하려고 애써보아도 완전한 먹통. 그때가 이미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이라 구입처에 문의를 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구입처의 실수로 하루 늦게 개통되었던 것. 구입처에서 미안하다며 나중에 데이터를 더 넣어주긴 하였지만, 이때, 가뜩이나 긴장하고 피곤한 상태였던 우리가 무척 당황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은 화가 날 지경이다. 뉴왁 공항에서 호텔까지 휴대폰 구글맵을 이용해 길을 찾아가려고 했던 우리에게 이건 정말이지 큰 시련이었다.


이렇게 된 것, GPS를 추가로 렌트하면 되겠지, 애써 위안하며 Hertz로 갔는데 여기서 또 두 번째 시련이 닥쳤다. 우리 예약을 확인한 후 GPS만 추가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우리 차에는 GPS를 추가할 수 없고 벤츠를 빌려야 한다는 거다 (응?). 우리는 200불 정도에 코롤라를 예약했었는데, GPS를 추가할 경우 차량을 업그레이드해야 해서 400불 가까이를 내야 한다는 것. 짐이 너무 많고 이미 너무 힘들어서 그냥 할까, 하는 마음에 카드를 내밀었는데, 남편 카드는 예약할 때 썼던 거라 다른 카드를 써야 한다고 했다 (왜? 대체 왜?). 한국에서 안 쓰는 카드는 모두 해지하고 남편과 나 각 하나씩밖에 카드가 없었던 터라 남편 이름으로 된 다른 카드는 없다고 했더니, 그럼 내 카드로 결제를 하고 운전할 남편은 운전자 추가로 (또 추가금을 내고) 등록해서 운전을 하라고 하는 거다. 앞서 200불 정도가 불어난 건 그냥 참았는데, 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운전자 추가금 13.5불을 더 내라고 하니까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싶은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던 그날의 Hertz. 몰골이 말이 아닌 데다 말도 잘 못하는 외국인들이라 등쳐먹을 속셈이었던 건지. 그날 지친 우리를 앞에 세워둔 채,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하는 식의 무신경한 표정으로 새빨간 매니큐어가 반쯤 벗겨진 검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마우스를 눌러대던 뽀글 머리 흑인 여자의 얼굴을 나는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화가 나면 어쩌겠는가. 우리는 굳은 얼굴로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 말하고는 그 많은 짐을 다시 질질 끌고 바로 옆 AVIS로 갔다.


다시 한참을 줄을 서서 AVIS 직원과 얘기를 했더니 처음 우리가 Hertz에서 예약하려고 했던 등급의 소형차에 GPS만 추가하여 200불 정도에 렌트가 가능했다. 사실 24시간 동안 소형차 하나를 렌트하는 데에는 보험까지 다 해서 130불~150불 정도면 가능했는데 뉴왁 공항에서 빌려 우리가 지내야 할 동네인 뉴헤이븐에서 반납을 하려고 하니 처음엔 조금 비쌌던 것 같다.


아무튼, 이 날 Hertz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좋지 않아서 앞으로 내가 다시 Hertz를 이용하면 사람이 아니다! 생각했었더랬는데, 저렴한 가격 탓에 이미 Gold 회원까지 되어 열심히 Hertz를 이용 중인 걸 보면,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건가. 근데 다 잊었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니 아직도 너무 화가 난다.


겨우 빌린 렌터카로 뉴헤이븐을 향해 가는 길


남편과는 해외의 여러 여행지에서 렌트를 해서 다녀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운전은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긴장이 풀린 탓이었는지 피곤한 와중에 꿋꿋이 운전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나는 열심히 졸았다. 정말 아주 열심히 맹렬히 머리를 빙빙 돌려가며. 


뉴욕을 벗어나 한참을 달린 후 뉴헤이븐에 진입하였는데, 이제 뉴헤이븐이야! 하는 남편의 말에 설핏 잠이 깨어 잠깐 보고는 다시 숙면. 그때 우리가 처음 우리가 살던 동네에 들어설 때 이용했던 도로를 다시 달리게 될 때면은 요즘도 남편은 이날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너 엄청 잤잖아. 진짜 엄청 잤지, 엄청.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매번 그냥 미안하다고 한다. 남편! 그땐 정말 내가 미안했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뉴헤이븐 호텔. 이 호텔은 일단 3박을 예약해 두었고 집을 구하는 일이 늦어지면 추가로 더 예약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너무 좋은 아파트를 도착 바로 다음날 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일 할 대학에서 이미 일을 하고 계시는 한 한국인 박사님의 도움 덕택이었다.


한국인 박사님이라고는 하지만 안면도 없었고, 그냥 우리 지도교수님의 지인이라 교수님이 우리 제자 잘 부탁한다- 한마디 하셨던 게 다였다. 그런데 뉴헤이븐 도착 다음 날, 우리가 일하게 될 대학의 인터내셔널 오피스에 가서 우리의 도착을 알리고 난 후, 이제 뭘 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던 찰나, 맞다, 교수님이 뉴헤이븐에 도착하면 이 박사님께 연락해 보라고 하셨었지, 하는 생각에 연락을 드렸더니, 반갑다며 한달음에 차를 가지고 오셔서는 좋은 아파트 몇 곳을 함께 돌아봐주시고 그중 가장 좋아 보이는 곳을 추천해 주셔서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


지금은 미국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남편과 둘이서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는 일도 두 번이나 더 해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미국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면 될수록, 그때의 우리 상황에서 그 박사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처음 살 집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더 힘들어졌을지를 생각해보면, 아득함에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다. 


우리는 그때 소셜 넘버도 없었고, 은행 계좌도 없었고, 가지고 있는 건 현금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들 들어가고 싶어 하는 괜찮은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의 오피스에서 테넌트를 고르기도 하는데 그럴 때, 후보자들의 신용도나 연봉, 혹은 은행 예치금 등을 확인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나름 한국에서 알아보고 왔던 아파트 몇 곳이 모두 그렇듯 신용도를 무척 따지는 곳들이어서 처음 이 박사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고 우리끼리 알아봤던 아파트들을 먼저 돌아봤었더라면, 끊이지 않는 난관과 시련에 미국 생활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감만 잔뜩 생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싫기도 하니 가능하면 도움은 안 주고 안 받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던 우리 부부의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기던 순간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집까지 잘 구했지만 또 하나의 문제라면, 우리가 계약한 집이 계약한 날로부터 2주 후에 입주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같은 아파트의 다른 층에 있는 유닛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 말인 즉, 같은 아파트 안에서 이긴 하지만 2주 후에 한번 더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가구를 마음대로 들여놓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 집에서의 첫날밤은 난민 + 원시생활이었더랬다.



IKEA 같은 곳에서도 조금 부피감 있는 (잘 때 몸이 베기지 않을 만큼 도톰한) 이불이나 매트리스 토퍼 같은 것은 너무 비싸서 어쩌나 고민했는데, 그 반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월마트에서 캠핑용 에어베드를 구할 수 있었다. 전기로 바람이 저절로 들어간다. 이건 이후 한국에서 지인들이 방문했을 때 급조한 침대처럼 사용할 수 있어 좋았다.


큰 가구는 구입하기가 꺼려져서 IKEA에서 구입한 냄비 세트의 상자로 한동안 식탁을 대신하기도 하였지. 그리고 전혀 몰랐었는데, 미국 집엔 전등이 없다! 욕실이나 키친을 제외한 생활의 공간 (리빙룸과 베드룸 등)에는 전등이 전혀 없어서 밤이 되면 그냥 캄캄했던 것. 그래서 첫날밤, 우리 집은 한국에서 선물 받은 향초 하나만이 조용히 빛을 발했다는 아주 슬픈 이야기 (결국 램프는 다음날 서둘러 IKEA에 가서 몇 개 구입하였다)...


그래도 우리에게 2주간 머무를 호텔이 아닌 집이 생겼고, 이 곳에서의 2주도 그땐 고생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꽤 재밌는 추억으로 남았다. 그래, 우리가 저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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