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mie Sep 04. 2018

미국으로 향하는 길

토종 한국인 부부가 처음으로 미국에 살러 가는 이야기

우리 부부의 미국 내 첫 직장에서 보내 준 비자 관련 서류가 페덱스로 도착하는 순간부터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 이전에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인터뷰를 했던 이야기들도 장황하지만, 이 내용들은 나중에 미국에서 또 한 번 겪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부분이 많아 추후 따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날아 온 비자 관련 서류, 큰 서류 봉투에 작은 편지 봉투 하나가 들어있다


이 서류만 있으면 미 대사관에 비자 인터뷰를 신청, 인터뷰를 본 후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고, 그러고 나면 안심하고 미국행 편도 티켓도 끊을 수 있는 것. 하루가 아깝다며 서류가 도착한 바로 다음 날,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로 비자 인터뷰를 신청하고 인터뷰를 받았다. 이때가 6월 말 즈음이었는데 미국은 새 학기가 9월에 시작하는 관계로 비자 인터뷰가 한창 바쁠 시기였다. 그래서 가능한 인터뷰 날짜가 한 달이나 뒤에 있었는데 우리 역시 서류상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짜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긴급요청을 넣어서 다행히 승인이 되었고, 바로 그다음 주 월요일 오전에 인터뷰를 받을 수 있었다.


한번 해보고 나면 별게 아닌데 처음에는 비자 인터뷰를 신청하는 과정 역시 무척 복잡했다. DS-160이니 SEVIS FEE니 하는 것들, 그리고 안 되는 영어로 긴급 요청을 넣고 승인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은 지금 생각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질 지경.


하지만 처음이야 실수하면 안 될 것 같고, 모든 실수가 인터뷰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너무 걱정이 돼서 과정 하나하나를 넘길 때마다 손이 벌벌 떨렸지만, 알고 보니 실수를 했더라도 나중에 수정할 수도 있고 전화로 취소나 정정 등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 너무 그렇게 절절 메며 애쓸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지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 다시 돌아가면 역시나 같은 정도로 앓으며 과정을 진행했겠지.


인터뷰를 신청하는 데만도 하루가 온전히 다 지나갔고, 인터뷰를 하러 가서도 멀뚱멀뚱 2시간 2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는데, 정작 인터뷰는 1분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인터뷰 한 바로 그 다음날 Extremely URGENT 하게 집으로 도착한 비자. 이쯤 되니 정말 우리가 미국엘 가기는 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사실 처음에는 내 비자 프로세스가 조금 늦어져서 남편이랑은 미국엘 따로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우리에겐 다행히도 남편 쪽 일을 도와주는 행정직원이 나름 큰 실수를 하는 바람에 남편의 업무 시작일도 15일 늦춰졌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나란히 같은 날 미국으로 들어가, 나란히 같은 날 첫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 가서 살아 낼 일도 걱정이었지만 한국의 일을 잘 정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7월 5일 출국이었으니 일하고 있던 실험실 일은 적어도 6월 중순까지는 끝내고 출근을 하지 말자 다짐했었지만 역시나, 출발하기 바로 전주 주말까지 내내 전 출근해서 일을 해야 했다.


또 하나의 큰 일은 한국에서 살던 나름 우리의 첫 신혼집을 계약했던 기간보다 훨씬 먼저 나가야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가 비자 서류가 도착할 즈음 급하게 집을 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바로 그다음 주에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이 한참을 안 나가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금방 나가서 어안이 벙벙. 그리고 그 이후 남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집주인이 무척 긍정적이고 신속하게 모든 과정을 잘 해결해 주어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가끔씩 이때의 집주인이 참 좋은 분이었던 것 같다며 회상을 하곤 한다.


미국에서 살 집은 미리 구하지 못해서 우리가 지내야 할 지역의 호텔을 3박 예약해 두었다. 3일이면 집을 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그냥 숙박을 연장하면 되니까. 


미국행 편도 티켓은 비자 인터뷰를 보고 돌아오던 날 바로 예약했다. 미리 봐 둔 티켓이 있었는데 인터뷰가 어찌 될지 모르니 그냥 봐 두기만 했다가 이때 결제를 한 것.


그리하여,


7월 5일 오전 10시, 뉴욕행 델타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편도 티켓


으로, 우리는 미국으로 향했다.


사실 비즈니스 티켓을 구입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이때 이상하게 델타항공의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이 저렴하게 나와 뉴욕행 대한항공 직행 이코노미 클래스 티켓보다 저렴하게 예약이 가능했다. 미 서부는 몇 번 가 보았어도 미 동부를 가보는 것은 처음이라 서울에서 뉴욕까지는 직항도 14시간이 걸린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는 직항이 아니라 디트로이트에서 한 번 환승을 해야 했기에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


미국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사용이 가능하도록 신청한 프리페이드 미국 휴대폰 유심은 미리 한국에서 구입하였고, 뉴욕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가 묵을 호텔까지 가기 위해 렌터카도 서둘러 예약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은 것만 같지만 이 정도 만으로도 꽤 안심이 되었고, 약 한 달 정도만에 30년 넘게 살던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한 것치곤 훌륭하지 않아? 나름 생각하기도 했었지. 물론 정작 미국에 도착해서는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여러 번 당황해야 했지만...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은 친정 집에 가서 맛있는 밥도 얻어먹고 잘 쉰 다음, 시댁으로 내려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이틀을 묵었다. 별거 없지만 한국에서 우리 부부의 첫 신혼살림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은 미리 용달차를 하나 빌려 다 시댁으로 미리 보내 두었기 때문에, 생활할 때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남겨두었던 것들만 마저 차에 싣고 그렇게 서울을 떠났더랬지.


서울을 떠나는 전날 밤까지 실험실에 가서 짐을 정리 해야 했다 (좌). 그리고 마지막으로 찍어본 깨끗하게 비워진 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 (우).


시댁에 도착해서는 남편 이발도 하고, 정리해야 할 통장은 정리하고 해외에서 사용하면 좋을 통장은 따로 만드는 등의 은행업무도 보았다. 무엇보다 미리 보내 놓았던 우리 짐들 중에서 우리가 직접 가지고 갈 것과 부모님이 우리 미국 주소가 정해지면 그쪽으로 보내주시면 좋을 것들을 박스에 따로 모두 정리했다. 이 작업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던... 출발 전부터 몸살 날 뻔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출발하는 날 새벽 4시 반 버스를 타고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같은 날 새벽 1시 가까이까지 짐을 싸야 했기에 정말 피곤하고, 시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할 때에도 비몽사몽 했던 기억.


비즈니스석으로 예매를 했기 때문에 1인 33kg까지의 짐을 각 2개까지 실을 수 있었지만 우리가 정말로 30kg 짐 4개를 들고 공항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동안엔 캐리어가 20kg만 되어도 아주 무겁다고 생각했었는데, 혼자서 30kg 혹은 그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캐리어 2개와 개인 가방, 카메라 가방에 미국 새로운 실험실 사람들에게 주려고 면세점에서 산 선물 가방까지 모두 핸들하며 장시간 비행을 하고 났더니 뭐랄까, 내가 전보다 한층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쭈욱 뻗어도 다리가 닿지 않을 만큼 넉넉했던 델타원 비즈니스석


힘들었던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기로 하자. 우리는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미국행 편도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기대보다 무척 편안했던 델타원 비즈니스 좌석. 이렇게 우리는 여전히 얼떨떨하고 비몽사몽 한 와중에 30년을 살았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