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비맘의 임신 이야기_임신 중기 (26주-28주)
26주째에는 다섯 번째 정기검진과 임당 검사를 모두 해야 했다. 임당 검사는 26주에 해당하는 날에는 아무 때나 가서 하면 됐지만 한번 가는 김에 다 해치워버리자 싶은 마음에 오전에 있는 정기검진을 마치고 곧바로 임당 검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오전 9시 30분, 여느 때와 달리 조금 이른 시각에 방문한 OB&GYN에서의 정기검진은 역시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몸무게와 혈압을 측정한 후, 의사와 상담.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고, 배가 얼마나 커졌나 줄자로 배 사이즈를 재보는 것으로 끝.
임신 후, 아무래도 식성이 많이 바뀌어 단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아서 그런지 몸무게가 생각보다 많이 늘은 것 같아서 이렇게까지 몸무게가 늘어도 괜찮은지를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너무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와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렇지만 임신 관련 책자나 다른 블로그 후기들을 볼 때면 내 경우 체중 증가가 너무 심한 게 아닌가 내내 걱정은 된다. 게다가 단 것들을 많이 먹으면 그 당분이 그대로 태아에게 흡수되어 태아의 크기만 커지고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한다. 체중 때문에도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요즘엔 단 음식이 먹고 싶어 져도 꾹 참으려고 아주아주 애쓰고 있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의사가 임산부는 꼭 플루 샷 Flu Shot을 맞는 편이 좋다고, 가능하면 오늘 맞고 가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런데 바로 이틀 뒤에 그랜드 캐년으로 휴가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혹여라고 플루 샷 때문에 컨디션 난조가 올까 두려워 플루 샷은 다음번 정기 검진 때 맞는 걸로.
다음은 지난 정기검진 이후로 내내 걱정이었던 임당 검사를 하러 갈 차례였다. 임당 검사를 할 때 혈액을 뽑아야 하기 때문인지 이때 임당 검사와 함께 혈액성분 검사 (빈혈 여부를 알기 위해)와 이미 임신 초기 때 한 바 있는 성병 검사 2종을 함께 진행하였다.
임당 검사는 1차와 2차가 있는데, 1차를 통과하면 2차는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날 내가 받게 된 1차 임당 검사는 50g의 sugar가 들어있는 음료를 5분 만에 다 마시고 그로부터 정확하게 1시간 뒤, 혈액 속 glucose 레벨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임신성 당뇨는 가족력과는 상관없이 임신했을 때 태반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해서 가족력 같은 것은 전혀 없었지만 계속 불안했다. 특히 임신 한 이후부터 예전엔 잘 먹지 않던 단 음식들을 너무 많이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임당 검사는 1시간 대기 시간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남편은 정기검진까지만 함께 한 후 출근을 했고, 나는 혼자 검사를 위해 지하에 있는 Lab으로 이동했다.
카운터에서 접수 후 받은 음료. 이 음료를 5분 안에 다 마신 후 빈 병을 다시 카운터에 가져다주면 직원이 그 시간을 기록하고, 그로부터 1시간 후에 채혈을 한다고 했다.
이 음료는 마시고 나면 속이 메슥거린다는 사람도 많고 마신 후 얼마 안 되어 토해버렸다는 사람도 있는 등 아무튼 평이 무척 좋지 않은 음료이다. 일부러 그런 후기들은 안 보려고 애썼지만 차가운 병을 손에 쥐자 긴장감이 조금 생기는 건 별수 없었다. 처음에 5분 안에 마시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응? 이거 1분 만에도 마시겠는데? 싶었는데, 막상 마시려고 보니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다 마시고 나니 정확하게 5분이 지나있던... 시계를 보며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실 때 즈음 살짝 메슥거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오렌지맛 환타를 마시는 기분이었달까. 악명 높은 음료임을 생각하면 첫맛은 오히려 좀 맛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른 병원들에서는 1차 임당 테스트를 할 때에도 2시간 혹은 1시간 이전부터 공복을 유지하라는 등의 지시사항이 있는 곳도 있는 모양인데 나의 경우에는 아무런 지시사항이 없었다. 아침은 그냥 그대로 먹었고 임당 검사용 음료를 마시기까지는 대략 2시간 공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음료를 다 마시고 빈 음료병을 가져갔더니, 그 시간을 기록하며 그로부터 1시간 후 채혈할 때 까지는 물이나 어떤 음식도 섭취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한 시간은 대기실에 앉아 잡지도 보고 휴대폰을 가지고 놀기도 하며 대기했는데 임당 음료 탓인지 조금 나른한 기분이 들고 무척 졸렸다.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 순간 Lab의 문이 열리고 내 이름이 불렸다.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가 채혈. 채혈을 하는 그 순간에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나중에 그 메시지의 시간을 보니 정말 처음에 채혈을 해야 한다고 적어준 딱 그 시간이어서 조금 놀라웠다. 이 사람들 일 제대로 하는구나!
채혈은 이미 여러 번 해 보았는데 항상 여기 Lab의 직원들은 무뚝뚝하다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당 검사를 위한 채혈을 해 주던 직원은 무척이나 살갑고 친절했다. 아이의 성별은 아는지, 기분이 어떤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즐겁게(?) 채혈을 마칠 수 있었다.
이틀 정도 후, 결과를 보니 임당 검사 1차에서 무사통과!
걱정을 너무 했다 싶도록 수치도 꽤 낮은 편이었다. 임산부들에게는 어느 정도 두려움일 수밖에 없는 임당 검사도 다행히 이렇게 무사히 끝이 났다.
그런데 이날 받은 혈액검사에서 빈혈 관련 인자들 수치가 정상보다 조금 낮게 나와서 아니나 다를까, 철분을 섭취하라는 의견이 나왔다. 다음번 정기검진 때까지 기다릴 새도 없이 바로 철분제 처방이 나왔고, 그 지시대로 울면서 철분제를 먹기 시작했다. 철분제를 먹기 시작하면 변비가 생긴다는 얘기도 있고 해서 무척 먹기 싫었는데 먹으라니 별수 없는 일이다.
철분제 처방과 함께 철분제 섭취로 인한 변비를 예방하기 위한 변비약도 함께 처방되었는데 그 변비약은 일단 먹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나는 철분제가 잘 받는 편인지, 철분제를 먹은 이후 몸의 변화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변비 증상도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도 철분제를 먹기 시작하면서 가끔씩은 생활이 불편할 만큼 심해지던 심장 두근거림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 처음 먹기 시작할 때는 정말 너무 싫었는데, 막상 먹기 시작하면서 생활이 오히려 편해지고 나니, 역시 의사 말은 잘 듣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배도 적잖이 나와 누가 봐도 확연한 임산부다. 그런데 스스로 그런 인식이 모자란 건지 나온 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꾸 여기저기 부딪힌다. 화장실 문을 닫을 때에도 몸을 더 뒤로 빼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문이 배에 스치곤 하고, 장을 보러 가서도 남편이 주차를 하며, 거기 공간 충분해? 물을 때, 옛날 생각을 하며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가 차를 다시 주차해야 했던 일도 있다. 이제는 조금 더 내 신체의 변화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