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에 시작하는 휴일

나에게 주는 휴식이란

by 유지현


휴일 아침, 출근 준비 시간에 맞춰 한 번 뒤척인다. 9시가 넘으면 두 번째, 11시 전 세 번째 뒤척임을 하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세 번째를 넘기면 그다음은 오후 1시가 된다.

그때쯤이면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등과 허리에서 마디마디 우두둑 소리를 내듯, 묵직한 통증이 밀려온다.

"아고고".

몸은 늘 정직하다. 게으름에는 꼭, 고통으로 답한다. 그래서 두 번까지만 뒤척임을 허용한다. 그래야 몸의 신호가 원망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정해둔 나만의 규칙은 작은 훈련이자, 휴일의 첫 번째 약속이다.


전날, 가족이 먹을 국과 반찬을 미리 준비하고 청소까지 마쳐두었다면 다음 날 아침은 한결 가볍다.

국에 밥을 말아 간단히 먹고, 화장은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니 세수 후 스킨과 로션만 바른다.

스스로를 돌본다는 건 이렇게 소소한 절차에서 시작된다.

에코백과 노트북, 등받이 의자를 챙겨서, 11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선다.

이제부터는 청량한 마음으로 다시 학생이 된다. 학교 도서관에 자리 잡으러 가던 시절처럼, 나를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그 카페, 그 자리로


아파트 단지의 대형 카페, 1층 전면 창가의 그곳에 늘 자리를 잡는다.

비가 오면 초록 잎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반짝이고, 눈이 오면 야외 테이블 위에 케이크처럼 눈이 쌓인다.

그 풍경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이 잔잔히 퍼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각자의 하루가 저마다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 날은 창밖을 보다가, 학원에 있어야 할 아들이 PC방으로 향하는 걸 보고 전화를 건다.

"너 학원 가는 길이니?"

짧은 대화가 끝나면 미소가 남는다.

부모의 마음이란 늘 단속과 이해 사이에서 흔들린다.

나의 아지트에는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가 겹겹이 쌓여 있다.


이곳이 나의 아지트가 된 지 벌써 3년이다.

처음엔 집안일을 마친 뒤 오후 2시에는 무조건 이곳에 와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지금은 '11시의 약속'이 되었다.

피곤해 게으름을 피우거나 집안일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면 오후 3시부터 짜증이 밀려온다.


짜증의 정체는 나를 잃어버린 시간


게으름은 허리를 아프게 만들고, 집안일은 '왜 나만?'이라는 원망을 만든다.

불만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갉아먹는다. 짜증 섞인 말이 입 밖으로 쏟아진다.

이쯤 되면 하루 종일 집안이 편치 않을 것을 제일 먼저 감지한 남편이, 불안해져서 얼른 말한다.

"우리가 다 할게, 그냥 두고 빨리 가."

그 말은 실천의 약속이 아니라, 나의 짜증에 대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모두의 평화를 위해 '11시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되었다.

나를 회복시키는 건 누군가의 배려가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질서다.


나의 아지트는 한 곳이 아니다.

미용실 근처에도, 자주 가는 상가 근처에도 있다.

미용실을 가거나 쇼핑이 필요할 때,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일정이 생기면 습관처럼 노트북과 책을 챙겨 나선다.

일을 마치면 그곳에서 나의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나만의 시.공간'을 갖고 싶다는 열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결혼은 함께있고 싶어서 했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참 좋지만, 한편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게 됐다.

심리학자들은 '분리된 개인 공간'을 마음의 회복실이라 부른다.

관계는 가까움으로 자라지만, 그 안에서 자아가 숨쉴 틈이 없으면 결국 피로해진다. 그럴 때 잠시 혼자가 되는 건 도망이 아니라 회복이다. 내 안으로 돌아가 숨을 고르고 나면, 다시 부드럽게 타인을 마주할 수 있다.

함께 있어도 혼자이고, 혼자 있어야 다시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을 걷다 카페를 볼 때마다 "여기가 나의 아지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처음엔 작고 아늑하고 예쁜 공간을 원했지만, 막상 집중하기 좋은 곳은 대형 카페였다.

차분한 갈색 톤과 넓은 공간, 적당한 음악과 대화가 섞인 그 소음 속에서 오히려 집중이 더 잘되었다.

언제나 그 자리, 창가의 스폿을 지킨다.

루틴에는 시간만큼이나 공간의 반복도 중요하다.


집 앞이어서 가끔 남편이 책을 들고 찾아오기도 하고, 아들이 필요한 게 있다며 들르기도 한다.

때로는 친구가 오면 차 한 잔을 나누며 오랜 수다를 즐긴다.


생산하는 삶이 주는 고요한 기쁨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글 한 편을 마무리할 때, 강의를 듣고 새로운 감각이 생겨날 때면, 내면의 만족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채운다.

카페가 북적이는 시간에도 나는 투명한 진공 속에 분리된 듯 고요하다.

혼자이지만 전혀 외롭지 않다.

그 유리돔 같은 공간 안에서 느끼는 이 성취감과 평온함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행복은 돈으로 오는 게 아니라, 생산적인 삶에서 비롯된다'는 고명환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놀고 소비하며 즐기는 것은 단편적인 행복이다. 인간은 생산적인 삶을 살 때 행복하다. 특히 자신의 생산 활동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의 말처럼, 나 역시 이 작은 루틴 속에서 나를 써내는 기쁨을 느낀다. 무언가를 배우고, 기록하고, 완성하는 그 모든 과정이 내 안의 생명력을 깨운다.

사람은 돈보다 생산적인 삶에서 더 큰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나는 매주 이 자리에서 확인한다


책 한 권이라도 읽고 싶어 시작했던 주말의 카페 나들이가 이제는 내 삶의 리듬이 되었다.

평일엔 주말의 나를 상상하며 일한다. 노트북과 커피 한 잔, 창가의 햇살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일상의 기쁨이 된다.


언젠가 내 인생을 기록할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시간일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오롯이 나로 존재하던 그 시간.

노트북과 커피 한 잔으로 쌓아 올린 주말의 풍경이, 언젠가 주상절리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게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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