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푸는 수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은, 글로 씁니다.

by 유지현



툭, 건드리면 쏟아지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순간이 있나요?

무언가 목 끝까지 차올랐는데, 말을 꺼내려 입을 여는 순간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온 적 있나요?


참으려던 감정이, 말보다 먼저 밖으로 쏟아진 것이다.

나처럼 누군가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이게 나만의 이상한 반응이 아니었기를 바라며.


언제, 무엇 때문인지는 그때의 나만이 안다.

꾹꾹 눌러 단단해진 감정의 뭉치를 마음속 깊은 곳에 치워두려 애썼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느새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풀어버리고 싶었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 내 편은 없었다.



차마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



요즘은 “서운했어”, “그렇게 말했을 때 무시당한 기분이었어”, “마음이 불편했어”처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말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감정을 꺼내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라는 사실을, 우리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80~90년대엔, 감정을 말로 꺼내는 것이 어색하고 민망했다.

어른에게 순종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였고,

마음을 표현하기보다는 참고 견디는 것이 더 어른스럽다고 여겨졌다.

공감보다 조언이 먼저였고,

이해받기보다는 단단해지라는 말이 익숙했다.

표현을 절제해야 괜찮은 사람이라는 묵시적 기준은 나를 조용히 억눌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억울함이 쌓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꼭 그 시절 탓만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감정을 꾹 삼켜야 하는 순간은 있다.

상대와 다툴까 봐, 괜히 유치해 보일까 봐,

그냥 넘어가는 게 편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억울해도 설명할 길이 없을 때가 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콕 찔리지만,

그걸 말하면 괜히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웃어넘긴다.

내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가끔은 지치게 느껴진다.



수다, 마음의 치유



그런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면, 친구들과 나누던 수다가 그리워졌다.

특별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을 털어놓고 "맞아, 나도 그래"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여자들에게 수다는 단순한 잡담이 아니다.

마음에 맺힌 말을 풀어내며 불편한 감정을 흘려보내고,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랬구나", "나도 그랬어"라는 말에는 위로와 공감의 온기가 담겨 있다.


꼭 진지한 대화가 아니어도 가벼운 수다가 오히려 삶의 균형을 지켜줄 때가 있다.

(물론,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자랑만 일삼는 말들은 좋은 수다가 아니다.)

때로는 그런 수다를 나눌 사람이 마땅치 않을 때도 있다.

내 상황을 이해해 줄 친구가 없을 때도 있고, 함께 고민해 줄 동료가 없을 때도 있다.

어쩌면 그건 오직 나만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인생의 성장점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으며,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간절해진다.



내 안의 둑이 터지는 순간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했는데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던 그때처럼,

"내 마음이..."라는 타이핑이 시작되는 순간, 내 안의 둑이 툭 터졌다.

가득 차 있던 생각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빠르게 타이핑되는 문장들과 줄줄 흐르는 눈물이 속도를 맞추며 쉼 없이 흘러내렸다.

폭우처럼 거칠게 쏟아낸 말들을 조용히 받아준 빈 문서는 그날 나에게 최고의 상담자이자 해방구였다.


그때 알았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글로 쏟아내고 싶어 했는지를.

아무 때나 툭툭 떠오르는 생각의 단상들이 내 안에서 꺼내달라고 노크하고 있었다.
추억, 감사, 분노, 후회, 관계, 가족, 친구에 대한 기억들이 내 손을 잡고 생각 속으로 끌고 가곤 했다.

아침에 깨어나면 잊히는 꿈처럼, 그 생각들이 사라질까 봐 언제든 메모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불을 끄고 잠들려다가도

글감이 떠오르면 장갑을 벗고 불을 켜고 아무 데나 메모를 남겼다.


그렇게 적어둔 메모들이 여기저기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글을 쓰라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았다.



글, 나의 수다 친구



그 아우성을 다스리기 위해 서툰 글솜씨로 책을 썼다.

얇은 책 한 권에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담고 나니,

감정과 고민, 생각들을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글이 나의 수다 친구가 되어준 것이다.

이제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대지 않는다.

상처투성이였던 나를 보며 분노하지도 않는다.


"아, 그랬구나."

"이제 보니, 그래서 그랬던 거였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이렇게 해볼까?"

"마음이 편안해져서 다행이다."


글 속의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글로 비우고, 새롭게 채운다



이건 나만 겪는 것이 아니다.

모양은 달라도, 누구나 각자의 고통과 기쁨을 안고 살아간다.

그걸 해결하는 방식도, 무엇을 깨닫는 순간도, 기쁨을 누리는 색깔도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겪고 이겨내고 깨달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브런치에 글을 쓴다.

나와 내 글을 읽는 분들과 조용한 수다를 나누며, 마음속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고 싶다.

글로 감정을 꺼내 놓다 보면, 쌓였던 마음의 찌꺼기는 흘러나가고 생각의 안개는 서서히 걷힌다.

마음엔 개운함이 남고, 그 자리에 차분하고 또렷한 생각이 하나씩 쌓여간다.


나는 그런 ‘성찰의 수다’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