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한, 오늘
가끔 나는 추억의 냄새를 기억해 내려 킁킁거린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교실의 냄새. 연필, 지우개, 분필, 나무 책상이 뒤섞인 거친 종이책 냄새. 노을 지는 초저녁의 가을빛 냄새라고 해야 할까.
추억의 향기를 따라 이어지는 단상들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도전의 20대.
가을빛 냄새 같은 그리움은 늘 20대에 머문다.
그땐 목적 없는 방황을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고민하는지,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걷곤 했다. 시간의 틈도 없이 도전하고 성취하려는 욕구가 강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넘치는 에너지를 쏟을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30여 년 전 즈음 그랬다.
그 시절, 내 모든 성깔을 받아준 곳은 '산'이었다. 그것도 '높은 산'.
지리산, 설악산, 월악산, 관악산, 북한산... 산은 값싸면서도 풍부한 성취감을 주는 최고의 여행지였다.
추석 연휴. 친구와 함께 지리산 지도를 펼쳐 놓고 천왕봉으로 가는 가장 빠른 코스를 표시한 뒤 진주로 향했다. 등산 장비라고는 남대문시장에서 산 배낭, 등산화, 코펠 정도.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네모난 휴대용 가스버너를 배낭에 넣고, 식량으로는 쌀과 오뚜기 카레, 김치를 챙겼다. 김치 냄새가 배낭 안에 밸까 봐 김치 봉지를 어깨끈에 달랑달랑 매달고 산을 올랐다.
밤에는 산장에서 담요를 빌려 자고, 아침엔 밥을 지어 카레를 먹으려 했는데, 그 카레가 '3분 즉석 카레'가 아니라 '카레가루'였다!
옆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등산객들이 깔깔 웃으며 찌개를 함께 나눠주었다.
그 뻘쭘했던 기억은 지금도 나의 이야기 소재다.
등산용 버너가 뭔지도 몰라 커다란 휴대용 가스버너를 지고, 카레 가루를 준비해 간 어설픈 초보 청춘들에게 여유로운 미소로 따뜻하게 베풀어 주었던 언니, 오빠, 어른들. 그들은 우리에게 든든한 보호자였다.
등산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팀을 이루고 '산 인연'이 생긴다. 그 인연 덕에 1박 2일 예정이던 여정은 2박 3일 지리산 종주가 되었다.
그 지리산 종주는 내 삶의 변곡점마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겹쳐 떠오른다.
중산리 코스로 시작해 천왕봉에 올라 노고단까지 이어진 여정. 능선마다 새롭게 펼쳐진 장면들이 청춘의 눈에 박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산 초보자였던 우리는, 등산 전문가들의 발길을 따라 낮과 밤을 꼬박 걸었다. 몇 개의 정상을 넘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인연'은 힘들어 우는 친구에게 "저 산만 넘으면 된다"라고 몇 번이나 속이며 달랬다. 그 말이 속는 줄 알면서도 번번이 위안이 되었다.
드디어 산장에 도착한 밤. 차가운 밤공기, 땀에 젖은 옷, 지친 발걸음을 알았는지 산장 앞에 텐트를 친 등산객이 따뜻하게 끓인 설탕물을 건네며 맞아주었다.
"정말 애썼어요." "수고했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울컥한다. 너무 감사했고, 따뜻했고, 정말 달았다.
지금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색하지만, 그때는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주고받았다.
"수고하십시오." "조금만 힘내세요."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힘든 여정을 함께한다는 동질감은 때때마다 반가웠다.
긴 여정의 산을 오르면 타인의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힘든 사연을 씻어내려 전국 산행을 계획한 사람,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며 마음을 정리하려는 이, 친한 친구들과 산행 모임을 꾸린 언니들... 그들은 다람쥐처럼 산을 잘 탔다.
그때는 모두 어른 같아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 서른도 안 된 청년들이었다.
선크림이 뭔지도 몰랐던 내 코에는 가을 햇살에 그을린 검은 딱지가 내려앉았다.
지리산 종주에서 받은 깊은 감동에 비하면 우스운 모습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경험의 흔적이었다. 그 경험은 삶의 줏대이자 방향키가 되었다.
지리산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다양한 풍경과 감정을 안겨주었다. 그 모든 봉우리의 시작점은 새로운 기대였다. 마치 삶도 그렇게 지루하지도, 힘들기만 하지도 않다는 듯.
그로부터 몇 년 뒤, 혼자 천왕봉에 올라 새벽 운해를 바라보았다. '홀로서기'를 즐기는 황홀한 순간이었다.
지리산 종주에는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된 여정을 견디게 해 준 인내심, 봉우리마다 마주한 도전과 성취감, 그리고 이끌어주고 위로해 주던 사람들.
차가운 가을밤, 지친 몸을 녹여주던 따뜻한 설탕물.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건네주던 어른들의 다정함. 말없이도 마음을 건네던 그 순간들. 그 모든 여정을 지켜보며 응원하듯 펼쳐졌던 지리산의 전경들.
그때, 내가 그 여정을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면 내 삶도 미리 통찰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더 많은 순간을 고민 없이 누리고 더 크고 깊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통찰을 몰랐던 어린 청춘은 그저 파편 같은 기억과 감정만 남긴 채 삶의 시절을 흘려보냈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집 근처 산 정상에 오르면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즐비한 아파트를 기준으로 높낮이가 다른 집들과 도로가 펼쳐진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우리 집은?" 하며 먼저 내 위치를 찾는다.
늘 눈앞의 것만 바라보다가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비로소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이 생긴다. 지리산 종주처럼 깊은 경험은 아니지만, 이처럼 가끔은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눈앞의 결과나 당장의 이익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 문득 회의로 다가올 때가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함께 바라보던 시선은 사라지고,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문화가 당연해졌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이기심들을 보면, 아이 같은 미숙함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나 역시 그 문화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 또래의 50대는 이제 다 이뤘다는 듯 말한다.
더 이상 노력하는 건 욕심이고, "지금 이대로가 괜찮아", "젊을 때나 하지", "이제 와서 뭘 더 하냐"는 말들 속에 나도 모르게 용기를 내려놓고, 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꿈'이라는 말이 이제는 조금 어색한 나이다. 요즘은 세대 불문, 너무 자주 쓰여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꾸준한 노력이 진짜 결과를 만든다는 교훈쯤은 이미 모두가 체득했다. 큰 성과를 바라며 노력했지만, 그 기대에 실망했던 경험도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쌓인 경험들 탓에, 그 꾸준한 노력을 이제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은 멈추는 순간 어김없이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 든다.
마치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오르듯, 힘겹지만 계속 움직여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마도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 청춘의 시작점에서, 나는 지리산에서 도전과 성취를 처음으로 맛보았고, 어른의 따뜻함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먼저 배려하고, 묵묵히 성숙함을 나누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은 내 안에 '성장하는 어른'이라는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다.
그동안 '당장의 시급한 일'에만 쫓기며 살아왔으니, 이제는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일'에 긴 호흡으로 시간을 쌓아가고 싶다.
멀리서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과 통찰의 힘, 그리고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큰 어른의 마음을 갖고 싶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처럼. 부퓌에는 아무도 살지 않던 황폐하고 척박한 땅에 매일 건강한 도토리를 심었다.
당장의 결과를 바라보지 않고 그저 오늘 할 일을 묵묵히 반복했을 뿐인데, 그 땅은 어느새 숲이 되었고, 물이 흐르고, 생명이 돌아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는 세상에 없던 미래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어떤 씨앗을 심어야 할까.
누구의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어떤 씨앗을 남길지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뷔피에의 도토리처럼 단단한 하루를 정성껏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