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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Sep 22. 2022

0~3세, 엄마와 함께 하는 언어놀이

프롤로그

   어느덧 언어재활사로 일을 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언어병리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장애군의 언어발달을 연구하며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여러 대학 병원에서 언어재활사로 근무하면서는 많게는 주마다 5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의 언어를 평가하고 재활하며 장애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언어 특징들을 깊이 있게 다루어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도 기다리던 소중한 한 생명이 찾아와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이리저리 나뒹굴다 보니 그제야 엄마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루하루 커갈수록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내 아이의 언어발달을 직접 목도하며 비로소 한 사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키가 자라나고 몸이 성장하듯이 말 또한 아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고 믿는다. 어쩌면 말은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태어난 DNA라고 오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어는 태어나는 순간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옆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며 알려주어야 배울 수 있는 능력이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배우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것이 선천적인 어려움이거나 신체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언어발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반대로 정상적인 언어발달 능력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주변 환경이나 애착 문제 등 다양한 후천적인 원인으로 나타나는 경우일 수도 있다. 


 대학 병원에서 언어재활사로 근무하였을 때 처음으로 근무하였던 곳은 이비인후과의 언어재활 파트였다. 이곳에서의 언어재활은 청각 장애로 인해 언어 발달이 어려운 아이들이 찾아와 인공 와우나 보청기를 통해 듣기 능력을 보완하여 언어 발달을 재활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내가 만났던 아이 중에서 제일 어렸던 아이는 돌도 되지 않은 아주 어린아이였다. 청신경 문제로 양쪽 귀 모두 농(deaf)으로 태어난 아이는 인공 와우 수술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소리’라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고, 언어 재활을 통해 말소리를 이해하며 축적된 언어 능력을 통해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에게는 언어발달을 방해하는 선천적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기억에 남은 또 다른 아이는 두 돌이 지나 고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였다. 아이는 돌까지 엄마의 정신적인 문제로 방치되거나 정서적인 학대를 경험하였고, 두 돌이 지나 부모가 이혼을 한 뒤부터 할머니 집에서 키워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지 못했던 이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진행된 부모교육을 통해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할 수 있었다. 2년 정도 언어재활을 하며 아이의 언어는 또래를 금방 따라잡았다. 두 돌이 지나도록 말을 하지 않아 자폐나 다른 문제들을 염려하곤 했던 이 아이는 다섯 살이 되자 또래보다 영리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청각 장애 아이는 언어발달을 방해하는 원인이 분명히 있었다. 이 경우에는 언어발달을 방해하는 원인을 물리적으로 제거해주어야만 언어발달의 기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와 같이 정상적인 언어발달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애착 문제나 언어 자극의 부재, 불안정한 가정환경 등 후천적인 다양한 이유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도 있다. 선천적인 이유로 언어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원인을 해결해주면 늦지만 또래 아이의 언어발달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후천적인 이유로 언어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그 원인이 아이에게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부모나 주변 환경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에 아이가 아닌 부모의 변화를 통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 동안 어린아이가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고 발달해 가는지 과정을 연구하고 그 아이의 언어발달 수준이 어떠한지를 평가해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것은 '훈련을 받아야 할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라는 것이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면 그 시기는 0~3세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언어발달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아이들의 언어발달의 시작점이 되는 0~3세까지의 시기에 언어발달을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해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가 아이의 언어발달에 있어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친 뒤에는 이번에는 아이가 언어발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부모가 억지로 아이에게 말을 따라 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수는 없다. 아이가 언어발달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내면에 견고한 언어의 집을 세우고 나서야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이나 자신의 생각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입 밖에 내보내 졌을 때에야 그것이 아이의 진짜 ‘말’이다.     

 부모와 만나 부모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가장 먼저 질문하는 것들이 있다. 아래의 표에 나온 내용들을 질문해보면서 먼저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를 확인하다. 그 이유는 '언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어떻게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다 무심코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이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가?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혹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엄마의 손을 의지해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고 하는가? 

엄마가 눈앞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아이를 안아주었을 때 울음이 금방 사그라지고 안정을 되찾는가? 

엄마와 아이만이 알고 있는 은밀히 주고받는 신호가 있는가? 

아이가 울 때 엄마를 거부하거나 밀어내지는 않는가? 


 부모 교육을 시작하는 부모가 가장 오해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아이가 언어치료실에만 다니면 말이 곧 터질 것이라는 오해이다. 어떤 부모는 언어재활사가 아이의 말을 책임져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말이 느린 아이가 주 2회 언어치료를 받는다고 했을 때 일주일 동안 언어재활사를 만나는 시간은 10,080분 중에서 고작 80분이 전부이다. 언어재활사를 만나는 시간을 제외한 10,000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는 자신을 돌봐주는 주양육자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또한, 아무리 언어재활사가 훌륭한 언어 스킬을 겸비하였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부모를 넘어서지 못한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이 숨겨져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10,000분이라는 시간 동안 부모가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주고,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부모에게 보여주려 애쓴다.      


 아이마다 각자의 성장 속도가 존재한다. 어떤 아이는 몸의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말이 느린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말은 빠르지만 늦된 성장을 보이는 아이도 있다. 속도는 각자의 생김새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분기점에 접어들게 되면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어느덧 비슷해진다. 두 돌을 전후해서 유독 말이 빠르거나 느리게 보이는 아이들이 있지만, 세 돌을 전후해서는 말이 빨랐던 아이도 혹은 말이 느리게 터진 아이도 나중에 보면 비슷하게 섞여 무리에 속하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속도를 다그치지 않고, 그저 아이가 키워내는 자연스러운 성장을 지켜봐 주고 지지해줄 때, 결국은 스스로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선천적인 어려움보다는 후천적인 영향으로 언어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님을 위한 것이다. 후천적인 원인으로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고유의 언어 능력을 아직 꽃 피우지 못한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이끌어주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0~3세 시기에 엄마가 반드시 알아야 할 언어발달 과정을 이해하고, 어떤 방법으로 언어발달 놀이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자세히 다루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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