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 싶은 음악 &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데이트 후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할 때 우린 어떤 인사말을 건넬까요?
"조심해서 들어가. 도착하면 전화해."
"오늘 고마웠어. 사랑해"
어쩌면 이런 말 대신 진한 포옹이나 가벼운 키스로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헤어져야 할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해야 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잘 자~. 내 꿈 꿔~.
저와 비슷한 또래인 분들은 이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겁니다. 이 말은 1999년 한 통신사 광고에서 이정현 씨가 조성모 씨의 음성사서함에 전송하고서 딴 남자에게 말한 척 능청 부렸던 짧은 두 마디였죠.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 해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고 연인들의 작별 인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20여 년이 지나 쿨함이 대세가 된 요즘에서야 내 꿈을 꾸라는 당부는 유행이 한참 지난 닭살 멘트에 불과하겠지만, 이 소박한 바람은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훨씬 전부터 연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인사말이었는지 모릅니다. 재즈 뮤지션이었던 파비앙 안드레와 윌버 슈완트가 작곡하고 거스 칸이 아름다운 노랫말을 붙인 "Dream a little dream of me. (내 꿈을 살짝 꾸세요)"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이 1931년이었으니까요.
오지 넬슨(Ozzie Nelson)이 최초로 부른 후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명곡 'Dream a little dream of me'는 현재는 무려 60여 가지의 버전이 존재합니다. 그만큼 지난 70년여간 수많은 뮤지션들의 사랑을 받았지요. 그중에서도 '재즈의 여왕'이라 불리는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와 '재즈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함께 부른 버전, 1950년대와 60년대를 주름잡았던 할리우드의 명배우이자 가수 도리스 데이(Doris Day)가 부른 버전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Dream a little dream of me의 역사를 논할 때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를 뺄 수는 없을 겁니다.
성공한 작곡자이자 음반 기획자였던 존 필립스와 젊고 아름다운 모델이며 존의 아내였던 미셸 필립스, 모그웜프의 멤버였던 데니 도허티와 캐스 앨리엇까지. 그 네 사람이 만나 1965년 결성한 이 혼성 포크 그룹은 소박하고 무겁지 않은 히피 문화를 대변하며 아직까지 회자되는 명곡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성격과 지향이 너무 달랐던 그들은 3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해체 위기에 직면했지요. 그중에서도 1968년은 멤버 간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로 이때 그들은 앞서 소개한 'Dream a little dream of me'를 발표합니다.
기존의 마마스 앤 파파스 곡들과 달리 오로지 캐스 앨리엇의 보컬만으로 녹음한 이 곡은 빌보드 차트 HOT 100에서 12위, 호주에서는 1위에 등극합니다. 이 노래는 그들의 마지막 히트송으로 기록되었고 이 앨범을 끝으로 마마스 앤 파파스는 실질적인 해체를 맞이합니다. 물론 3년 뒤인 1971년 잠시 재결성하여 앨범을 발매하지만 그것은 소속 레코드사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단발성 이벤트에 불과했죠. 그런 의미에서 Dream a little dream of me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짧지만 화려했던 전성기에 마침표를 찍은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한 때는 대중과 평단에 열광적인 평가를 받았던, 그러나 멤버 간의 분열로 허무하게 흩어진 그룹을 한참 세월이 흘러 다시 대중 앞에 소환한 사람은 동양의 어느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노래 한 곡을 자신의 영화에 삽입했고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게 되면서 그 노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 곡은 바로 Califormia Dreamin'입니다.
동영상 출처 : https://youtu.be/Yh87974T6hk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의 흥행에 힘 입어 그들은 잠시나마 다시 뭉쳐 옛 노래들로 투어를 돌아다녔습니다. 한 때는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파릇한 젊음은 사라졌고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 역시 예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그룹 내 보컬에서 큰 축을 담당했던 캐스 앨리엇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죠.
오늘 저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리드 보컬 캐스 엘리엇과 그녀의 대표곡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Dream a little dream of me의 슬픈 일화를 여러분들께 소개할까 합니다.
미국의 배우였던 페기 캐스의 이름 '캐스'와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의 이름 '엘리엇'을 합쳐 자신을 "캐스 엘리엇(Cass Elliot)'이라 칭하고 다녔던 소녀, 엘렌 나오미 코헨은 1941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러시아 유태인 이민자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숱한 파산을 지켜봤던 캐스는 정작 그의 사업이 성공했을 때는 그 일을 돕느라 학교에 제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 졸업을 단 2주 앞두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캐스는 200km 떨어진 뉴욕으로 트래킹을 떠납니다. 평범한 직업을 가지길 바랬던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미 캐스의 마음속에는 다른 꿈이 자라고 있었죠. 고교 졸업반 시절 "The boyfriend"라는 뮤지컬에서 프랑스 간호사 역을 맡아 "It's nicer in nice"를 열창한 이후 품게 된 꿈,
바로 배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꿈의 도시, 뉴욕 브로드웨이에 도착한 캐스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여러 뮤지컬 오디션에 응시했지만, 신통치 않은 결과만 얻게 되었죠. 그러던 그녀는 1962년 초연을 앞둔 뮤지컬 'I Can Get It for You Wholesale'의 미스 마멜스타인 역의 오디션에 도전합니다. 그러나 결국 강력한 경쟁자에게 밀려 배역을 놓치고 마는데, 그때 캐스를 꺾고 미스 마멜스타인이 되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 바로
미국의 국민 여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입니다.
캐스는 이러한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The Music man"의 스텝으로 순회공연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흐지부지되자 클럽의 물품보관소에서 일하며 간간히 스테이지에 올라 노래를 불렀죠. 그리고 그 해 말, 캐스는 팀 로즈와 존 브라운을 만나 '트라이엠버럿(triumvirate)'을 결성, 본격적인 가수 활동에 돌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수로 데뷔한 후에도 캐스에게 꽃길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트라이엠베럿은 1년도 채 안되어 존 브라운이 탈퇴, 짐 핸드릭스가 영입되면서 Big 3로 팀명을 바꿉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인 1964년엔
팀 로즈가 밴드를 떠났고 남은 캐스와 짐은 잘 야노프스키, 데니 도허티를 만나 머그웜프(The Mugwumps)를 결성하게 되죠. 그러나 고작 8개월이라는 짧은 활동 후 머그웜프 역시 해체되고 그즈음 솔로 활동을 시작한 캐스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머그 웜프의 멤버였던 데니 도허티(Denny Doherty)는 팀 해체 이후 뉴저니맨(The New Journeymen)이라는 밴드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존 필립스(John Phillips)와 그의 아내 미셸(MIichelle Phillips)을 만나게 되죠.
1965년 세 사람은 함께 팀에서 나온 뒤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때까지 가수 경력이 없던 미셸만으로는 여성 보컬이 부족하고 판단했던 데니가 존에게 예전 동료를 추천하게 되는데,
그 동료가 바로 캐스 엘리엇이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데니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가 망설였던 이유는 먼저 캐스의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뚱뚱한 캐스의 겉모습이 그룹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죠. 또 다른 이유는 그녀의 낮은 음역대였습니다. 덩치에 비해 음역대가 낮았던 캐스는 그가 작곡한 노래를 소화할 수 없다 믿었죠. 그렇게 캐스의 합류를 존이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캐스가 버진 아일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무렵 공사장을 지나던 그녀의 머리 위로 인부가 들고 있던 구리 튜브가 떨어지고만 것이죠. 머리를 다쳐 병원에 후송된 캐스는 2주간 극심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이 큰 선물을 주기 직전 괜히 부려본 심술이었을까요? 상처가 완치된 후 그녀는 자신의 음역대가 무려 세 음이나 올라간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며 존은 데니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죠.
활동 초기 마마스 앤 파파스는 뉴욕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셸이 뉴욕의 추운 날씨를 불평하면서 따뜻한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고 존은 경쾌하면서도 왠지 우울한, 설명하기 참 어려운 묘한 분위기의 곡을 만듭니다. 그들이 활동했던 1960년대 중반의 미국은 히피문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히피문화의 본거지는 샌프란시스코였죠. 그 샌프란시스코가 속한 캘리포니아를 막연히 꿈꾸는 젊은이들의 암울하면서도 막막한 심정을 담은 노래, 바로<Califormia Dreamin'> 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시대의 흐름을 타면서 크게 히트했고 마마스 앤 파파스를 히피 문화의 대변자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Go Where You Wanna Go> <Monday, Monday>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빌보드 1위를 달성하게 되죠. 당시 어느 잡지에서는 그들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비틀스 이후 가장 독창적인 팝 그룹이자 전에 없던 새로운 보컬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캐스 엘리엇 역시 이름 대신 "마마 캐스"라는 별명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그녀처럼 비만증을 앓고 있는 소녀들에게는 희망이자 멘토가 되었죠. 그렇게 멋진 동료들과 순풍을 타고 성공을 향해 거침없이 항해하리라 믿었던 캐스의 인생은 얼마 가지 않아 크나큰 암초를 만나게 됩니다. 캐스에게는 결코 잊을 수없는 치욕스러운 사건,
이른바 <호텔 담요 절도 사건>이 일어난 것이죠.
1967년 2월 공연을 위해 영국을 방문했던 캐스는 머물던 호텔의 담요 두 장과 호텔 키를 훔쳤습니다. 고작 50달러에도 못 미치던 물건들이었요. 10월에 공연차 다시 영국에 방문했을 때 캐스는 2월에 벌인 절도죄로 체포당합니다. 그녀는 곧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그 일로 인해 그룹의 공연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풀려난 캐스를 축하하기 위해 여러 가수 동료들과 친구들이 잔뜩 모인 자리에서 그녀가 자신의 결백을 설명하고 있을 때였어요. 존이 갑자기 캐스의 말을 끊고 이런 말을 합니다.
저거 다 거짓말이야. 훔친 게 맞아.
자신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한 캐스는 존에게 고함을 지른 후 그 자리에서 떠나고 맙니다. 이제껏 늘 자신에게 무례했던 그의 행동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몇 년 후 그녀는 자신이 그 담요를 훔쳤음을 공연 중에 시인합니다.)
그러나 캐스에게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비만증에 시달려야 했던 캐스에게 사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성공적인 커리어와는 무관하게 사랑은 늘 그녀를 요리조리 피해만 갔죠. 언젠가 캐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자 친구를 만드는 것은 아주 쉬워요.
오토바이랑 가죽 슈트를 사주고
연기 학원에 보내면 되죠.
재력으로 남자에게 접근해서 사랑하는 척 연기하도록 만들면 된다는 자조 섞인 이 말은 그녀가 일생동안 사랑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짐작케 합니다. 그런 캐스는 평생 두 번 결혼했는데 첫 상대는 Big3에서 함께 활동했던 짐 핸드릭스였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사랑에 의한 결혼이 아니라 베트남전 징집을 피하려 했던 친구 짐을 위한 위장 결혼이었죠. 결국 1968년, 이 결혼은 무효가 되고 맙니다. 사실 캐스가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바로 캐스를 마마스 앤 파파스로 데려온
데니 도허티(Denny Doherty)였죠
뛰어난 보컬 실력과 준수한 외모를 겸비했던 데니. 그를 진심으로 짝사랑했던 캐스는 어느 날 용기 내어 그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데니는 그녀의 제안을 냉정하게 거절했죠. 데니가 사랑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존의 아내, 미셸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셸 필립스(MIichelle Phillips)
1944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어난 그녀는 빼어난 외모를 바탕으로 일찍부터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남편 존을 만난 건 그녀의 나이 고작 18살 때였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금세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그러나 미셸은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통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어요. 한 사람만 사랑하기에는 그녀의 가슴이 너무 뜨거웠던 것이죠. 그래서 그녀는 결혼 이후에도 다른 남자들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데니 역시 그들 중 한 명일 뿐이었고요. 그러나 두 사람의 불륜은 그룹의 내분을 불러왔고, 미셸이 데니 한 사람으로 만족 못하고 사이키델릭 록 그룹 '버즈(The Byds)'의 멤버였던 진 클락과도 사랑에 빠지자 존은 결국 그녀를 그룹에서 추방시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셀은 다시 돌아왔고 그렇게 존과 데니가 미셸에게 빠져 허우적 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캐스는 그룹 활동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쯤 캐스는 그룹 활동에 큰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뛰어난 보컬 능력은 업계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있었고, 내로라하는 여러 뮤지션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그간 재산도 넉넉하게 축적했습니다. 거기다 그녀는 1967년 4월, 소중한 딸을 출산합니다. 딸의 이름을 오웬이라고 지은 캐스는 그녀의 아버지를 굳이 밝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어렵사리 들어왔을지 몰라도 더 이상 그룹 안에서 노래만 부르는 존재가 되기 싫었던 캐스는 다방면의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반면 어느새 그룹에서 가장 필요한 목소리가 된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존이 설득했고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자신의 위상을 실감한 그녀는 당당하게 복귀합니다. 돌아온 캐스는 미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전해집니다.
미셸, 난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넌 네가 원하는 남자를
언제든 다 가질 수 있잖아.
근데 왜 하필 내 남자(데니)였어?
1950년, 멕시코 시티에 살던 6살 미셸은 아빠의 친구라는 한 주정뱅이를 만납니다. 언제나 술에 절어 있고, 늘 피아노를 연주하던 남자. 남자는 그런 추한 모습으로만 어린 미셸의 기억 속에 남았죠. 그리고 20년이 지난 1968년 어느 날, 그녀는 그 주정뱅이가 멕시코 시티의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주정뱅이는 바로 Dream a little dream of me의 작곡가 중 한 명이었던 파비앙 안드레였습니다.
미셸 필립스는 파비앙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존에게 전했고, 존은 캐시에게 그가 만든 노래를 불러보라 권유했죠.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Dream a little dream of me가 탄생한 것입니다.
동영상 출처 : https://youtu.be/1-AxpbrFrZo
Dream a little dream of me
작사 : Gus Kahn
작곡 : Fabian andre & Wilbur Schwandt
노래 : Mama Cass (캐스의 별명)
Stars shining bright above you
별들은 당신 위에서 밝게 빛나고
Night breezes seem to whisper "I love you"
밤바람은 "사랑한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요
Birds singing in the sycamore tree
새들은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노래를 하고 있죠.
Dream a little dream of me
내 꿈을 살짝 꾸세요
Say "Night-ie night" and kiss me
"잘 자요"라고 말하고 키스를 해주세요.
Just hold me tight and tell me you'll miss me
나를 꼭 안고서 보고 싶을 거라 말해주세요.
While I'm alone and blue as can be
내가 혼자이고 우울할 땐
Dream a little dream of me
내 꿈을 살짝 꾸세요
"Stars fading, but I linger on, dear
"별들은 사라지지만 난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대여
Still craving your kiss
아직도 당신의 키스를 갈망하고 있어요.
I'm longing to linger till dawn, dear"
새벽까지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요"
Just saying this
이렇게 말해주세요
Sweet dreams till sunbeams find you
햇살이 당신을 찾을 때까지 달콤한 꿈을 꾸길
Sweet dreams that leave all worries behind you
모든 걱정은 뒤로 하고 감미로운 꿈을 꾸길
But in your dreams whatever they be
하지만 당신 꿈속에 무엇이 존재하든
Dream a little dream of me
내 꿈을 살짝 꾸세요
"Stars fading, but I linger on, dear
"별들은 사라지지만 난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대여
Still craving your kiss
아직도 당신의 키스를 갈망하고 있어요.
I'm longing to linger till dawn, dear"
새벽까지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요"
Just saying this
이렇게 말해주세요
Sweet dreams till sunbeams find you
햇살이 당신을 찾을 때까지 달콤한 꿈을 꾸길
Sweet dreams that leave all worries behind you
모든 걱정은 뒤로 하고 감미로운 꿈을 꾸길
But in your dreams whatever they be
하지만 당신 꿈속에서 무엇이 존재하든
Dream a little dream of me
내 꿈을 살짝 꾸세요
이 노래를 발표한 후 마마스 앤 파파스는 끝내 불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캐스는 그룹이 해체되는 와중에도 자신을 대표하는 명곡을 얻게 되었죠. 홀로서기를 시작한 캐스는 1968년 10월 라스베이거스에서 단독 콘서트를 기획합니다. 그러나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다이어트가 공연을 코 앞에 둔 그녀의 컨디션을 망치게 했고, 쇼 당일까지도 캐스는 고열로 고생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생애 첫 단독 쇼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쇼가 끝날 무렵 캐스는 관객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대표곡인 Dream a little dream of me을 열창했지만 청중과 언론은 이미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두 번째 공연에서 캐스는 노래를 부르는 도중 많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수모도 겪어야 했죠. 그러나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그녀가 공연 몇 주 전부터 마약인 헤로인을 복용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 소식은 언론을 통해 빠르게 퍼졌고 캐스는 그만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온갖 시련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캐스는 사랑하는 딸 오웬을 위해서라도 삶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룹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마음대로 출연할 수 없었던 TV쇼에 잇달아 출연하며 재기를 노리던 그녀는 1970년부터는 영화에도 출연하며 늘 꿈꾸어왔던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3년 피츠버그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콘서트를 개최하죠. 5년 전과는 달리 캐스는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공연을 마무리합니다.
이후 잇따른 스케줄로 건강에 적신호가 왔으며 독일 언론인과 했던 두 번째 결혼 역시 1년을 채 넘기지 못했지만 정열적으로 행복을 찾기 시작한 캐스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진출한 캐스는 1974년 7월에 열린 2주간의 공연을 모두 매진시키고 대중들에 엄청난 찬사를 받았습니다. 공연의 엔딩을 장식하는 피날레 곡은 역시 <Dream a little dream of me> 였죠. 공연이 끝난 후 그녀는 애증의 관계였던 친구 미셸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누며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미셸 역시 캐스의 뒤늦은 성공에 진심 어린 축하를 해주었죠. 그렇게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런던의 아파트에서 휴식을 취하던 캐스는
이틀 후, 두 번 다시 깨어날 수 없는 영원한 잠에 들고 말았습니다.
그녀를 마지막까지 괴롭혔던 비만증에 따른 급성 심부전증이 원인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딸 오웬이 7살이 되던 해였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 여름밤의 꿈>은 엇갈린 사랑으로 시련에 빠진 이들이 자비로운 신의 도움을 받아 저마다의 사랑을 모두 이룬다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희극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쓰게 된 큰 원인은 직전에 완성한 작품이었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계관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단편적임을 깨닫고, 이성과 감성, 비극적- 희극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세계를 그린 작품이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셰익스피어의 가장 낭만적인 희극은 가장 슬픈 비극을 딛고 태어났습니다.
캐스 엘리엇의 인생에는 분명 비극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가난을 겪었고, 학업을 마칠 수 없었으며 오디션에서 숱하게 떨어졌습니다. 때론 동료에게 냉대 받았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으며 이성에게 따뜻하고 진심 어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겪은 모든 아픔을 단순히 불운한 탓으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호텔 담요를 굳이 훔쳐 팀에게 민폐를 끼쳤으며 헤로인을 복용해 가장 중요한 무대를 망치고 말았죠.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보컬리스트가 되었고 어릴 적 꿈인 배우도 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롤모델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뮤즈가 되었으며 한 소녀에게는 소중한 엄마가 되었죠. 대중들에게 캐스 엘리엇 대신 마마 캐스로 불렸던 그녀는 한없이 품이 넓은 엄마처럼 자신을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잠들 때마다 예쁜 꿈을 꾸길 당부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가장 행복한 밤에 달콤한 꿈을 꾸며 눈을 감았죠. 그래서 캐스의 인생은 누군가에는 '한 여름밤의 꿈'처럼 슬픈 비극을 딛고 완성한 아름다운 희극으로 기억될는지 모릅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되었습니다. 곧 다가올 7월 29일은 47년 전 그녀가 천국의 가수로 데뷔한 날이죠.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어도 '나의 꿈을 꾸세요'라고 속삭이는 캐스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우리 모두는 아직 기억합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오늘 밤 당신의 꿈이 그녀의 목소리처럼 감미롭고 그녀의 노랫말처럼 평화롭기를 기원합니다.
참조 사이트
1. http://www.casselliot.com : 캐스 엘리엇의 홈페이지
2. https://www.npr.org/2000/03/26/1072082/dream-a-little-dream
3. https://en.wikipedia.org/wiki/Cass_Elliot 외 그녀와 관련된 여러 위키 페이지
4. https://namu.wiki/ : 나무위키 마마스 앤 파파스 페이지
5. https://www.telegraph.co.uk/news/obituaries/1540140/Denny-Doherty.html
6. https://www.biography.com/news/the-mamas-and-the-papas-origins
7. https://www.rockhall.com/sites/default/files/2019-11/The%20Mamas%20and%20the%20Papas_1998.pdf
8.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00342&cid=51292&categoryId=51292
9.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7%AC%EB%A6%84_%EB%B0%A4%EC%9D%98_%EA%BF%88 : 희극 한 여름밤의 꿈
(번역보다 의역에 가까우니 내용상의 오류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0년 7월 11일 처음 쓰다
2020년 8월 9일 다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