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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수 Mar 27. 2022

#02 - 피라미드는 분명 거인이...

아니 외계에서 온 거인이 만들었다.


전편 세 줄 요약 :

1. 기운차게 칸엘칼릴리 시장에 갔다가 영혼까지 털리고 옴

2. 다음날 아침,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카이로 박물관에 감

3. 카이로패스를 사려했으나 담당 직원이 출근을 하지 않아 무한정 기다리기 시작.


이것이 이집션 타임이다 - 2


박물관 정문 안쪽 오른쪽에 사무실로 보이는 방이 있었다. 불이 켜져 있었고, 거기에는 직원들이 있었다. 표검사 직원은 나를 그저 귀찮아하고 있었기에 차라리 사무실에 쳐들어 가서 해결하는 편이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검사 직원을 다시 한번 붙잡고 물었다.


‘혹시 저 사무실이 카이로 패스 사는 곳이야?’

‘응 오분만 기다려’

‘나 추운데 저기 안에서 기다리면 안 돼?

‘그러던가’


사무실 문을 열고 불쑥 들어가니 사무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카이로 패스 사려고 하는데 밖은 추워서 여기서 기다리고 싶다고 말했고,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나를 박대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친절했다.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자기가 방금 직원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엄청 초조해 보였나 보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열 시 사십 분, 싸한 느낌이 들었다. 다년간의 여행으로 발달된 나의 촉이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 담당 직원은 점심시간은 지나야 올 거라고. 급할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카이로 박물관의 사무실에서 오전 내내 죽치고 있고 싶지는 않았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나 담당자 오기 전까지 먼저 구경하고 있으면 안 될까?”


이 말을 꺼내자마자 사무직원 아주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은 ‘과연 이 새끼를 믿을 수 있을까?’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답을 안 하고 있길래 한마디 더 했다.


“여권 놓고 갈게.”

“물론 가능하지 자꾸 늦어져서 미안해.”


이제야 이 직원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비록 호갱님이 될지언정 사기꾼은 아니다. 약 두 시간의 기다림 끝에 열한 시가 되기 직전에 카이로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거대한 유물창고- 카이로 박물관


카이로 박물관은 저어어엉말 컸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있었다. 내가 가본 그 어떤 박물관도 이렇게 유물이 많지는 않았다. 이건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무지막지하게 큰 유물 창고였다. 맨 먼저 눈앞에 들어온 것은 파라오의 거대한 석상이었다. 인터넷에서 카이로 박물관을 검색하면 나오던 그 석상이 진짜 있었다. 밑에 설명이  작게 써져 있었다. 19 왕조의 아멘호텝 3세와 그의 부인 티이라고 한다. 아멘호텝 3세 석상처럼 간단하게나마 설명이 적혀 있는 유물은 극소수였고, 유물을 만져도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가이드와 함께 들어온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인도 아래 몇몇 유물들을 만져보며 자기들끼리 호들갑을 떨며 감탄을 하기도 했다. 나도 용기를 내어 부조로 조각된 석관에 손을 살짝 얹어 보았다. 이걸 조각한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클라이언트에게 곡 의뢰받아서 작업하고 있는 내 마음이랑 비슷했을까. 한 번에 수정 없이 컨펌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

좌 : 카이로박물관 메인 홀. 우 : 아멘호텝 3세 부부
최종_수정완료_FINAL_FFINAL.PSD

석상 같은 유물들도 좋지만 나는 무엇보다 미라가 보고 싶었다. 카이로 박물관에는 미라들이 연말에 오픈 예정인 그랜드 뮤지엄이라는 곳으로 다 이사 가고 딱 둘만 남아 있었다. 이름은 유야와 튜야. 부부라고 한다. 유야는 이집트 재상이었고, DNA 검사 결과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증조부였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풍성한 머리털이 있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 미라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귀국하면 모발관리에 총력을 다 할 것을 맹세했다. 투탕카멘 왕의 황금 마스크는 워낙 유명하다 보니 따로 전시실이 있었다. 거기서는 관리인들이 절대 사진을 못 찍게 했다. 실제로 보면 구글에 쳐서 나오는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으니 굳이 찍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어떤 아저씨가 사진을 찍었다. 관리인이 야수처럼 달려들어 그의 휴대폰을 압수해 사진을 지워버렸다.. 하여간 어느 나라나 아저씨들이 말을 제일 안 듣는다. 나는 말 잘 듣는 아저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기가 느껴져서 시간을 보니 벌써 한시였다. 별로 본거 같지도 않은데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오늘 기자 대피라미드까지 보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제 슬슬 점심을 먹고 이동을 해야 했다. 여권을 맡겨 둔 사무실로 갔다. 직원 아주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방금 카이로 패스 담당자가 왔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싸한 느낌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여권을 맡기고 들어가기로 한 나의 재빠른 판단을 셀프 칭찬하였다. 드디어 카이로 패스가 내 손에 들어왔다.


좌 : 미이라, 우 : 영롱한 홀로그램의 카이로패스


기자 피라미드까지 버스를 타고


길에서 양고기 샌드위치를 뜯으며 대피라미드까지 가는 길을 검색했다. 대피라미드는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건너면 나오는 도시인 기자에 있다. 도시 이름이 달라지긴 하지만 서울 강남과 강북의 관계라고 보면 된다. 그곳까지 지도상으로는 17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우버를 타면 100파운드, 우리 돈으로 7500원 정도에 해결 가능했지만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었다. 경찰을 붙잡고 말끝마다 ‘Sir’를 붙여가며 피라미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는지를 물었다. 경찰은 길 건너편의 미니버스정류장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미니버스는 하얀색 승합차인데 이집트에서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이고, 당연히 행선지, 노선도 따위는 적혀있지 않다. 미니버스 기사가 행선지를 목놓아 외치는 것을 듣고 알아서 잡아 타는 시스템이다. 나중에야 익숙해져서 잘 타고 다녔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타야 하는지 인터넷의 후기를 아무리 봐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은 아무 버스나 붙잡고 기자 피라미드 가냐고 물었다. 다들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나는 아랍어를, 그곳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못한다.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한 20분을 그러고 있다가 포기하고 우버를 타기로 마음먹은 순간 미니버스 한 대가 내 앞에 서더니 타라고 했다. 일단 탔다. 기사님이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기자 피라미드를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기사님은 어제 공항버스 탈 때와 마찬가지로 승객들과 설전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차를 길 한복판에 세워둔 채. 뒤에서 막 빵빵거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경찰도 와서 빨리 차 빼라고 닦달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불안해졌다. 기사님에게 ‘나 그냥 택시 타고 갈게’라고 이야기했더니 ‘택시기사들은 다 거짓말쟁이들이야 조금만 기다려 봐’라고 하며 승객들과 설전을 계속했다. 버스가 출발했다. 드디어 결론이 난 듯했다. 한 2 킬로미터쯤 달리다가 버스가 멈췄다. 기사님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 가서 버스를 갈아타라고 했다. 그곳에는 미니버스보다 큰 노선버스들이 모여있는 환승센터 같은 곳이 있었다. 버스비를 내려고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나는 슈크란(감사합니다)을 목놓아 외쳤고, 그 기사님은 자신의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는 멋있는 포즈를 하며 이집트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나일강. 원래 NILE은  강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한다. 나일강이라고 하면 강강이라는 말이지.


노선버스를 타고서도 나일강을 건너 한참을 가야 했다. 나일강은 음.. 한강이랑 비슷했다. 유튜버들 영상 보면 뭐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는 거 같이 묘사를 해 놨는데 내 체감으로는 그렇게 가깝지 않았다. 17킬로미터 정도면 금방 아니냐 싶을 수도 있지만 카이로 도로의 혼잡함은 퇴근시간 강남대로의.. 아니다 내가 가본 곳 중 유일하게 비벼볼 만한 곳은 인도 델리다. 방콕도 호찌민도 양곤도 자카르타도 카이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걸렸다. 가다 보니 좀 억울했다. 아니 빠니보틀이랑 원지 영상 보면 금방 휙 간 거 같던데 나만 어쩌다 오지게 걸린 건가? 아니면 편집 때문인 건가.. 아님 저 사람들은 여행 전문가들이라 요령껏 잘 간 건가?


피라미드는 거인 아니면 외계인이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또는 외계 거인이나.


한참만에 버스에서 내리니 저 너머에 피라미드가 보였다. 이때 좀 감동했다. 와 씨 진짜 피라미드야!!라고 내적으로 부르짖으며 피라미드를 향해 한참을 걸어갔는데 도무지 가까워질 기미가 안보였다. 그만큼 컸다. 피라미드로 걸어가는 길에서 삐끼를 오억 명쯤 만났다. 뭐 낙타를 타라느니 마차를 타라느니.. 나는 걷는 걸 좋아해서 절대 탈 마음 없었지만 이쪽 흥정 스타일이 어떤지 궁금해서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하우머치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양반이 대뜸 니하오 그러는 거다. 갑자기 맘이 짜게 식어서 그 아저씨에게 '난 한국인이고, 한국어 인사는 안녕하세요다. 따라 해 봐라 안녕하세요' 난 딱히 중국인들을 싫어하지 않아서 평소였음 그냥 웃고 말 텐데.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편파판정 때문에 감정이 좀 안 좋아져서 버럭 해버렸다. 그 아저씨가 오케이 '안녕하세요' 그러길래 굿잡 바이 바이 그러고 와버렸다. 심지어 어떤 아저씨는 나를 붙잡더니 대뜸 화를 내면서 ‘헤이! 깁미 티켓 쇼미 유어 티켓’ 그런다. 그래서 ‘아이 해브 카이로 패스 후아유 쇼미 유어 아이디카드’라고 같이 화 내줬다. 역시 그도 삐끼였다. 저런 방식으로 과연 호객이 될까.

좌, 중 : 버스에서 내리면 저만하게 보인다, 우 : 신나서 셀카도 찍었다.
왼쪽부터 멘카우레, 카프레, 쿠푸왕의 피라미드다. 가운데는 스핑크스.

피라미드를 가까이서 보고 처음 한 생각은 '와 저 큰 게 진짜 있구나'였다. 고대의 거인이나 외계인이 만들었다고 누가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그대로 믿을 법도 했다. 그래 나도 안다. 피라미드를 만드는 과정이 다 기록되어 있고, 학자들의 실험 결과 당시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을 밝혀 냈다는 거.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피라미드를 실제로 보면 압도당해서 '이건 정말 거인이나 외계인이 만든 거 같다'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할 거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었다. 추가 요금을 내야 했지만 나는 카이로 패스가 있었기에 프리패스. 나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 무덤 주인 쿠푸왕의 영면을 위해 3초간 묵념도 했다. 피라미드 안은 몹시 덥고,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며 좁은 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초등학교 교실만 한 방이 나온다. 거기에는 돌로 된 관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난 도굴로 싹 털리고 남은 건 박물관으로 죄다 옮겨버려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원래 처음 발굴됐을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사실 무덤이 아니었을 것이다라는 가설이 나름 학계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단다.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삼대장 주인의 이름은 각각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다. 각각의 피라미드를 구별하는 방법은 쉽다. 제일 크고 꼭대기가 싹둑 잘려있는 게 쿠푸왕, 역시 큰데 위쪽이 싹둑 잘려있지 않은 건 카프레왕, 어쩐지 좀 작아 보이는 건 멘카우레다. 남의 무덤 왔는데 주인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피라미드 대 탐험

시내로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피라미드 앞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기자역까지 미니버스로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갈 때보다는 빨리 돌아올 수 있었다. 진작 지하철 탈걸 그랬나. 시내로 돌아오니 여기 젊은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금요일 토요일이 쉬는 날이다. 불타는 목요일을 즐기러 나왔나 보다. 이 친구들이 밤새 떠들고 노는 통에 자다가 몇 번을 깬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집트 청춘들이 부럽다. 우리는 코로나 방역 때문에 밤 11시면 다 집에 가야 하는데. (다음 편에 계속)


*앞으로 매주 일요일에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어쩌다 시간이 남으면 수요일쯤에도 업로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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