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10월 둘째 주에는 쿠알라룸푸르에 출장을 다녀왔다. 감사하게도 가장 번화한 곳에서 머물 수 있었는데, 쇼핑의 천국이라 할 만큼 다양한 매장들이 있었다. 나는 평소 눈여겨 보았던 Carhartt WIP의 디트로이트 자켓을 구경하기 위해 매장에 들렀다.
나의 추구미는 뭐랄까 남성스럽고, 테스토스테론이 뿜뿜한, 사막이나 정글에서도 뚝딱 은신처를 만들어 내거나 핵전쟁이 나도 거뜬히 생존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 추구미에 가장 잘 맞는 옷이 디트로이트 자켓이라 들뜬 마음으로 걸쳐본 건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추구하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어디 하나 꼭 집어서 이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총체적 난국이었다.
혹시 몰라 서울에 있는 연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살까요?'라고 뻔뻔하게 물어봤다. 대답은 단호했다. '아닌 것 같아요.^^;' 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옷은, 이 추구미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국내에서는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색상과 사이즈였음에도 불구하고 옷을 제자리에 걸어놓고 나왔다.
매장을 나오며, 추구미를 실제로 추구할 수 있다는 것도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본인과 찰떡인 추구미를 발견해 맘껏 추구하며 사는데, 또 어떤 사람은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입혀놓은 골덴 바지가 결국 나와 찰떡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이상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엄마의 안목을 인정하는데 돈을 많이 들였다. 이 나이를 먹고도 엄마 말을 안들어서 손해를 보다니. 꼬수워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