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 한우를 먹다.

2025년 10월 30일

by 김노트

회사에 손님이 오셨다. RA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홍콩계 호주인인 이 할저씨는, 인기있는 미드의 첫째딸과 이름이 같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중후한지, 나는 자꾸 헐리웃의 영화배우 누구랑 비슷한데...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결국 그게 누구였는지는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굳이 누구를 꼽자면 로버트 드 니로와 모피어스의 목소리 중간 어디쯤.


한우는 역시 느끼했다. 600g에 23만원이나 하는 고급 한우집이었는데,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김치들이 차려져 있어 좋으면서 안좋았다. 나는 백김치를 많이 먹었다. 일곱 명이서 1200g의 한우를 먹고, 또 1200g의 돼지고기를 먹고, 짜파게티 4개를 먹고, 옛날 스타일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음식은 모두 훌륭했다. 훌륭한 음식이 보통 그렇듯 내 돈으로 먹기는 힘들다. 더듬거리며 영어로 이야기하느라 불편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어 고마왔다.


그는 3년 전 2주 간격으로 부모님을 모두 여의었다. 그 때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가끔 그들이 그립다고 한 것 같다. 영어로 이야기해서 제대로 알아들은게 아닐 수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더라도 나의 기억보정이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떠나간 사람은 이따금 그립기 마련이다.


호주의 근무환경은 참 부러웠다. 모든 직원이 1주일에 두 번만 사무실에서 일하고, 3일은 집에서 일한단다. 인사팀에서는 사람들이 서먹하지 않도록 크고작은 이벤트들을 많이 기획해서(공짜 아침 모임, 공짜 점심 모임, Are you okay 모임 등) 좋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회사가 굴러가는지 모르겠다. 그가 보기엔, 우리나라의 회사들이 대체 왜 이렇게 굴러가는지 모르겠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태어날 나라를 제비뽑기 할 때 실수가 있었던 것일까. 시간이 흘러 은퇴할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때 제비뽑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