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레틱>이 말하는 오리지널, 이단, 시스템에 관하여
What is the one true religion?
상영 중인 영화 리스트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헤레틱이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다. 단순 공포 영화인줄 알고 넘기려는 찰나, 자세히 보니 A24 영화 배급사의 작품이었다. 평소 미드소마와 같은 A24 영화들을 재밌게 봤던지라 믿고 보는 A24라는 생각으로 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2025년 영화 중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 가득한 감상평입니다.
첫 장면은 몰몬교라는 종교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반스(소피 대처, 검은 옷)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 회색 옷)벤치에 앉아서 나누는 콘돔 마케팅과 포르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감독은 영화 시작부터 말한다. 이 영화에서 성역은 없다고. 성, 종교, 본질없는 마케팅과 같은 것들은,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깊이있게 언급하기는 어려운 주제들이다. 감독은 첫 장면부터 이 영화에서는 금기같은거 없고 너네들이 다루기 싫어하는 것들 주로 다룰것이라며, 엄포를 놓는다. 이는 이후 스토리상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들이다.
반스와 팩스턴은 포교활동을 하는데, 성과도 없는 와중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팩스턴의 바지를 벗기며 매직팬티라고 놀리는데, 이런 단순 코미디같은 장면에서도 팩스턴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팩스턴은 선교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어엿한 성인임에도 아이들의 기세에 눌려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당한다. 심지어 매직 팬티라는 말을 듣고도 대응하지 않고 수치심만 느끼며 상황이 종료된다. 이는 팩스턴이 외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실제로는 주체성이 부족하고 순종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정갈하고 바른 태도를 보여줌에도 불고하고 아이들에게 장난감 취급을 받는데 이는 나중에 리드(휴 그렌트)에게 "순수한 신자일수록 더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는 장면과도 연결된다.
그렇게 소득없이 해가 저물 무렵, 그들은 마지막으로 리드(휴그렌트)의 집으로 포교를 하게 된다. 때마침 폭우가 쏟아져서 그들은 리드의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반스와 팩스턴은 안전상의 이유로 리드의 부인도 함께 자리하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리드는 부인이 블루베리파이를 굽고 있으니 곧 올거라고 둘을 안심시킨다. 때마침 블루베리 향이 흘러들어오자 반스와 팩스턴은 한시름 놓는다. 리드는 종교에 관심이 많아 유일한 교리를 찾기 위해 이 세상 모든 종교를 공부했다고 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몰몬교 성경을 보여준다. 빼곡히 필기되어 있는 성경을 보자 반스와 팩스턴은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겠다면서 리드를 치켜세워준다.
리드는 본격적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해보자며, 몰몬교가 과거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다가 나중엔 없애버린 이야기를 꺼낸다. 당연하게도 이는 몰몬교를 믿는 반스와 팩스턴에게는 불편한 이야기라 둘의 표정은 일그러지는데, 리드는 이 점을 미리 알고서도 치밀하게 공격한 것이다. 리드의 주장은 너네가 말하는 "신의 말씀"이라는 것도 결국 사회적 조건에 따라 바뀌는 것 아니냐, 이게 진짜 신의 뜻이 맞냐면서 따지는 듯 했다. 리드는 몰몬교 뿐만 아니라 종교 전반의 상대성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리드는 반스와 팩스턴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공격했다. "너희가 믿고 있는 교리는 과연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를 시험한 것이다. 작중에서 리드는 '오리지널'에 집작하는 인물인데, 그는 진정한 교리는 바뀌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하며 몰몬교처럼 진리를 시대에 맞게 바꾸는 종교는 가짜라고 주장했다.
팩스턴은 모태신앙이었던 반면 반스는 아버지가 루게릭병으로 돌아가신 뒤로 종교를 믿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를 들은 리드는 또다시 공격한다. 리드는 반스에게 "아버지가 블루베리병으로 죽었나요?"라며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고통을 희화화함과 동시에 반스의 반응을 봄으로써 그녀의 믿음을 시험한다. 반스는 그의 질문에 당연히 불편한 감정을 내보이고, 리드는 사과한다. 이 장면부터 리드가 정상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상대방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반스를 그저 하나의 실험체로 보고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리드의 관점에서는 반스나 팩스턴 둘다 심판을 받아야할 이단자이므로 감정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리드는 반스의 어떤 면을 테스트한 것일까? 리드는 종교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자는 육체적 고통이나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신을 믿는다면 죽음 조차도 신의 섭리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이다. 리드의 테스트에 통과하려면 무덤덤하게 죽음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미있는 질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오히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쳤어야 했을까. 그러나 리드의 기준이 그렇다고 한들 그 기준자체가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라는게 문제인듯 하다. 반스의 반응은 사실 종교를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수 있을 법한 반응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인간다움을 이단으로 간주하는 리드가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리드 입장에서는 사람을 시험한게 아니라 자기 기준에 맞는 "가짜 인간"을 찾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리드는 반스와 팩스턴에게 가장 좋아하는 패스트푸드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들은 맥도날드, 웬디스, 인앤아웃 등 수도 없이 많은 패스트푸드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리드는 현대의 종교는 모두 패스트푸드와 같다고 한다. 마치 패스트푸드가 빠르고 자극적인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 처럼, 오늘날의 종교는 사람들에게 빠르고 자극적인 정답을 제공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어떤 종교든 다들 빠르고 간편한 구원을 약속하는 소비재 같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이상함을 느낀 반스와 팩스턴은 리드가 거실로 간 사이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구조 요청을 하려고 했으나 전화도 먹통이다. 이상함을 느낀 반스와 팩스턴은 서재에 있는 리드에게 밖으로 내보내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문은 잠겼으며 다음날까지 열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보드게임 모노폴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보드게임인 모노폴리. 하지만 그 이전에 지주게임(The Landlord's Game)이라는 보드게임이 있었는데, 모노폴리는 단지 지주게임의 이름을 바꾸고 팔아먹은 아류작에 지나지 않는다며, 리드는 분노에 가득차 말한다. 모노폴리를 팔아서 백만장자가 된 제작자에 반해, 정작 오리지널을 개발한 지주게임 개발자는 몇푼 벌지도 못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라디오헤드의 Creep 이야기도 한다. Creep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아지만 그 오리지널은 다른 곡이라면서 지주게임과 마찬가지의 취급을 당한다며 분노한다.
이후 리드는 본격적으로 종교이야기를 한다. 그는 전세계 종교 중 Big 3라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꼽는데, 유대교는 지주게임에 해당하며, 기독교는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교로 모노폴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슬람은 모노폴리의 스페셜 에디션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반스와 팩스턴이 믿고 있는 몰몬교는 모노폴리 밥아저씨 에디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리드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오리지널'에 굉장히 집착한다. 그는 지주게임과 마찬가지로 오리지널은 유대교인데 전세계의 0.2% 밖에 믿지 않는다며, 이는 마케팅의 실패이며, 기독교가 인기있는 이유는 마케팅을 잘해서 라고 주장한다. 리드는 유대교가 '오리지널'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또한 진정한 교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12월 25일에 태어난 인도 신만 10명이 넘으며, 동정녀로부터 태어난 신화속 인물들을 열거하며 오늘날의 종교는 예전의 신화의 변형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오늘날의 종교는 코미디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It is farce
자신들의 종교가 모욕당하자 더이상 참다 못한 반스와 팩스턴은 나가야겠다며 나가는 문을 알려달라고 하는데 리드는 반스와 팩스턴 앞에 있는 두개의 문을 가리키며 둘 중 하나의 문을 선택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쪽문에는 BELIEF(믿음)이라고 적고 다른 문에는 DISBELIEF(불신)이라고 적는다. 고민하던 두 사람은 문을 선택하는데 의외로 신앙심이 강한 팩스턴이 '불신'문을 선택하고, 반스는 '믿음'을 선택한다. 이는 팩스턴이 리드를 믿지 못했으므로 불신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고, 반스는 이 모든 것이 게임이며, 리드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는 중이라며 믿음을 선택한다. 둘은 어느쪽 문을 선택할지 한동안 논쟁하다가 결국 팩스턴도 반스와 함께 믿음의 문을 선택한다.
두 사람은 '믿음'문을 통해 지하실로 내려간다. 사실 어느쪽 문을 선택했더라도 같은 지하실로 이동하므로 선택에는 의미가 없었다. 리드는 그들에게 자유 의지, 선택의 기회를 주는척했지만, 결국 결과는 동일하다. 모든 것은 리드의 손아귀에 있는 것일까. 리드는 지하실을 자신의 생츄어리라고 소개하면서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이 기적이라고 한다. 리드는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노파는 자신이 겪은 사후세계를 이야기해주겠다며 리드에게 미리 받은 대본대로 사후세계를 묘사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녀는 It is not real이라는 말을 하는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진짜가 아니라며 주인공들에게 힌트를 준다. 리드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시뮬레이션일 뿐이라면서 둘러대기 시작하는데, 진정한 종교를 믿는다면 죽어도 부활할 수 있다며 둘에게 죽음을 독려한다. 이에 리드의 속임수를 간파한 팩스턴이 리드를 공격려고 하는데, 그전에 리드는 칼로 반스의 목을 긋는다. 반스는 그대로 쓰러지고, 팩스턴은 리드의 속임수를 줄줄 읊어댄다. 그러면서 팩스턴은 시체를 숨긴 새로운 문을 발견하고 진실을 파악하러 그 문으로 들어간다.
문에는 시체가 있었고, 더 깊숙히 들어가자 계속해서 다른 문이 등장하는데, 장소를 이동할때마다 사탄을 믿는 종교 관련 서적이나 그림이 나오는 등 이 세상 모든 종교를 만나는 듯한 장면이었다. 모든 문을 열고나간 팩스턴은 마침내 갖혀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러면서 리드가 생각하는 유일한 종교는 '통제(control)'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리드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을 통제하기는 아주 쉬운일이라면서 울고있는 팩스턴에게도 지금까지 해오던것처럼 다른 사람이 시키는데로 살라고 말한다. 누구를 믿을지, 어디서 믿을지, 어떻게 믿을지 모두 다른 사람이 하라는데로 살아온것처럼 말이다.
팩스턴은 리드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리고 다시 지하실로 도망가는데 서로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팩스턴은 기도한다. 리드가 팩스턴에게 공격하려고 하던 찰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반스가 리드를 처리한다. 마지막 힘을 다한 반스는 숨을 거뒀지만 반스 덕분에 팩스턴은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팩스턴 손에 나비가 한마리 앉았다 사라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The one true religion is CONTROL
작중 리드는 종교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장르(genre)를 연구했다고 했다. 종교의 구조, 시스템, 패턴을 알아내기 위해 힘쓴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와 같이 잘 알려진 종교 이외에도 사람들이 잘모르는 오컬트, 사탄주의와 같은 종교들도 연구한 흔적을 그의 지하실에서 볼수있다. 영화전반적으로 리드는 종교 자체를 혐오한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의 종교는 패스트푸드와 같다라고 말한 점을 보면 그는 타락한 종교를 혐오한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수많은 종교들을 연구하며,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리를 실행하고 종교 의식을 행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교회처럼 꾸민게 아닐까. 기존 종교들이 망가졌으니 리드만의 새로운 교회를 만든 셈이다. 리드는 기존 종교들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질투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오리지널 지주게임은 인기 없으나 복제품인 모노폴리가 인기있는 점에 분노한 것처럼,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리드 본인이 알아냈는데,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으니, 기존 종교들이 집단을 이끄는 힘을 보면서 본인도 그 힘을 갖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노파의 부활을 연출하며, 마치 성경 속 기적을 재현하려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본인이 신과 같다는 퍼포먼스 아니었을까. 그는 단순한 연쇄살인범이 아닌 신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인정받지 못한 이단자가 아니었을까. 그는 집에 잡혀있는 노파들에게 신처럼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마지막 팩스턴을 신도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반스와 팩스턴을 이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본인 스스로도 이단인 것이다. 그는 기존 종교를 부정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장 종교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기존 종교를 뛰어넘고 싶어했지만, 결국 그 틀안에 갖혀버렸다.
보통 신이라고 하면 만물을 창조한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하는 리드는 정작 스스로 창조한 것은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어째서 본인을 신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종교라는 장르를 연구해 창조가 아닌 진실을 간파한 자로서의 권위를 신격화 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드 입장에서 본인은 인생 내내 연구해 모든 종교가 거짓이라는 걸 알아낸 유일한 깨달은자이고,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복사본을 믿는 무지한자니까 말이다. 즉, 진실을 아는 본인이 진짜 신이라고 생각한거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그는 창조성 보다 인식의 우월성을 신의 조건으로 본 것 같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그림을 그려 예술가가 되지만, 리드는 모든 그림이 가짜임을 알아차린 사람이라고 하면, 그는 그림을 창조하는 사람보다 그 그림이 가짜임을 아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믿어버린거 아니었을까. 사실 이렇게 모두가 틀렸고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독재자나 광신도가 되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리드가 딱 그 길을 걸은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했으면, 본인도 틀렸을 가능성을 염두해 뒀어야지 싶다.
반스는 어떤 캐릭터였을까? 리드는 반스가 몰몬교를 믿는 이유는 아버지를 잃은 슬픈 자신의 감정의 도피처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반스가 몰몬교를 믿은 이유는 진심보다는 필요에 의해 믿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겉으로보았을때 반스는 독실하지도 않고, 교리를 열정적으로 설파하지도 않으며, 리드의 공격에도 종교적 신념을 방패삼아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정신적으로 무너졌던 순간에 몰몬교라는 줄을 잡은 것이다. 자신의 신념보다는 버팀목으로 종교를 선택했다고 해야할까.
반면 팩스턴은 종교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고 흔들림없으며 종교적 언어와 시스템을 철저히 따르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이 없다. 리드가 조롱해도, 반스가 흔들려도, 그녀는 극한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따른다.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팩스턴은 무사히 탈출한 것일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장면들을 조합해서 생각한 결과 팩스턴은 탈출하지 못했고 지하실에서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리드에게 일격을 날린 반스를 보는 팩스턴의 표정은 마치 기적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성스러운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데, 아마 팩스턴이 기도를 하면서 바랬던 장면이 상상으로 연출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팩스턴이 탈출하면서 핸드폰을 먼저 던지는데, 카메라에 잡힌 핸드폰에는 여전히 No signal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정말 건물 밖으로 나왔다면, No Signal이라는 문구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해당 장면은 팩스턴의 상상이었고, 그녀는 여전히 지하실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팩스턴 손에 나비 한마리가 앉게 되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 나비가 반스라고 생각했는데, 좀더 생각을 해보니 팩스턴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가이 들었다. 팩스턴은 작중 초반에 이런말을 한다. 내가 만약 죽으면 나비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앉아 그게 나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마지막에 손등에 앉았다가 사라진 나비가 팩스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이 되고싶어 자신의 신도를 만들고자 반스와 팩스턴을 시험한것이다. 리드는 진정한 종교(one true religion)을 찾았다고 하면서 반스와 팩스턴을 시험하며 누가 진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을 것 같은 반스는 거짓 믿음이라고 판정해 심판을 내린 것이고, 팩스턴을 자신의 신도로 선택했다. 그는 그가 의도한 대로 팩스턴이 이동시킬 것이라고 생각해, 자전거 열쇠를 팩스턴 코트에 넣어놨고, 마지막 문의 잠금 장치를 자전거 잠금 장치로 설정해두어 팩스턴이 자신이 가진 열쇠로 열 수 있게끔 만들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반스는 믿음이 부족하므로 리드 입장에서는 컨트롤이 되지 않는 존재이므로 제거한다. 리드가 발견한 유일한 종교는 통제다. 그런데 리드 입장에서는 반스는 통제되지 않는 존재이므로 자신의 신자가 될 수 없으며,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단이다. 그러므로 반스를 먼저 심판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오리지널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작중에서 리드는 유대교를 오리지널이라고 평가하면서 다른 종교들은 패스트푸드에 비유하며 분노한다. 그가 오리지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 것은 그게 진실이라서라기보다 세상이 진짜를 외면하고 복사본들만 소비한다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그는 유대교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마저도 그리스신화와 같은 신화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비판한다. 아마 그는 유대교 자체를 높이 평가한다기보다는 그나마 순수했다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리지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리드는 작중에서 수많은 종교들의 변형판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때 변형을 이야기할 때 change나 vari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ite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iteration은 사실 변형보다는 반복이라는 의미에 가까운데 그는 왜 ite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일까? 그는 수많은 종교들이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구조를 반복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에도 반복문 iteration이 존재하는데, 반복문이 돌때마다 완전히 똑같이 도는 것은 아니고 매개변수와 같은 것들이 조금씩 변한다. 즉, 리드는 수많은 종교들이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똑같은 시스템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ite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죽은 인터넷 이론, 원본 영상의 수많은 ai iteration 영상들이 만들어진다.
영화를 보면서 종교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영화 상에서는 종교는 곧 통제(control)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반스와 팩스턴에게 두개의 문을 보여주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데, 이는 얼핏보면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내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어느 문을 선택하던 결국 같은 장소로 이어졌으므로 이 장면 역시 통제(control)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종교는 곧 통제라는 생각은 제 3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점이고, 종교를 믿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결국 내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자체가 종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드시 기독교, 불교, 천주교와 같은 종교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맹목적으로 믿고 따른다면 그것 또한 종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후반부에서 팩스턴은 지하실에서부터 계속해서 수많은 문을 열고 나간다. 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최후반부에 리드가 팩스턴에게 그동안 해왔던데로 종교에서 시키는데로 살라고 말한 것을 보면 팩스턴은 그동안 수동적으로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그녀가 계속해서 문을 열고 나간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표현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문은 단순한 연결 통로가 아닌 다음 차원으로 들어가는, 팩스턴의 믿음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팩스턴이 새로운 문을 열때마다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고 기존 신념은 해체되며, 혼란은 더욱 깊어졌다. 이는 기존의 자신의 신념이 벗겨지고, 그 안의 벌거벗은 자아를 마주하는 여정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팩스턴은 용기내어 자신의 눈으로 진실을 보려고 한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어떤 문을 열고, 어떤 문을 닫으며 살아가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