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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감상

창조와 복제 사이

창작은 곧 해석이다.

by 장철원

창작이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틀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일까? 최근 애거서 크리스티 작가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추리소설을 읽으며, 추리소설 분야의 '오리지널'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오늘날의 추리물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추리 만화인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은 작품들은 알고보면 크리스티 소설의 구조와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다. 특히 "소년탐정 김전일" 쪽은 폐쇄된 공간에서 한 명씩 죽어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밀실 살인을 자주 다룬 다는 점에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만화로 옮긴 듯한 인상을 준다. 크리스티의 첫 작품이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이전인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구조가 반복된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준다.




그렇다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추리 소설계의 진정한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보다 먼저 셜록홈즈를 창조한 코난도일은 1887년에 첫 작품을 발표했고, 크리스티는 그보다 늦게 1916년에 첫 소설을 탈고했다. 이처럼 코난도일의 작품이 먼저 만들어졌고, 이미 존재하는 추리소설의 틀을 크리스티가 사용했으므로 크리스티의 작품은 코난도일의 복제품에 불과할까? 만약 먼저 만들어진 것이 기준이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코난 도일을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부르고 크리스티를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고 부른다.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 코난도일의 셜록홈즈보다 나중에 나왔지만 아무도 크리스티의 작품을 복제품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장르적 형식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크리스티는 기존에 존재하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리되, 자신만의 시선과 기법으로 장르를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폐쇄된 공간, 제한된 용의자, 치밀한 복선과 반전 등 그녀는 추리소설의 다양한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구조화하며 장르적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특히 그녀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차례로 사라지는 인물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 등을 통해 현대 추리물의 표본을 제시했다.




어떤 장르의 틀을 만든 사람은 선구자로 존경받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 코난도일의 경우가 그렇다. 코난도일은 셜록홈즈를 통해 탐정과 조수, 범인을 찾기 위한 논리적 추리,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에서의 반전과 같은 요소들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후 크리스티는 코난도일이 만들어놓은 추리소설의 기본 틀 위에 올라서서 이를 장르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완성도를 높였다. 그래서 흔히 코난도일을 추리소설의 창시자라고 부르고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을 완성시켰다고 하는 것이다. 간호사 출신이었던 크리스티는 사람들간의 관계, 심리, 약물 지식 등에 뛰어났는데, 이를 소설에 녹임으로써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서사를 구축했다. 즉, 그녀는 익숙한 재료를 활용해 그녀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조립한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이란 과연 무엇일까? 창작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행위를 의미할까? 아니면 기존에 존재하는 재료들을 조합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행위일까? 나는 창작은 대부분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의 창시자라고 말하는 코난도일의 셜록홈즈조차 1841년에 출간된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소설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에 영향을 받았다. 창작이란 익숙한 요소들을 재조합하되, 거기에 작가만의 해석을 더하는 것이다. 철학자 들뢰즈는 "우리가 반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반복 속에서도 분명 차이가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코난도일이 이전에 존재하던 에드거 앨런 포에 영향을 받았듯,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전에 코난도일이 닦아놓은 추리소설의 틀을 사용했지만 본인만의 관점을 작품에 녹여냄으로써 기존 작품과의 차이를 발생시켜 그녀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든 것이다.




반대로 아류작 혹은 복제품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이미 존재하는 요소를 가져다 쓰더라도 어떤 작품은 위대해지고 어떤 작품은 단순 아류작 취급을 받는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인기나 먼저 나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다. 흔히 우리가 아류작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이미 존재하는 원작의 형식과 겉모양만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요소들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서사 구조도 비슷하며, 연출 방식마자 어디서 본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창조적 작품들은 기존 틀을 가져다 쓰긴하지만 전혀 다른 관점이나 해석을 제시한다. 창조는 완전히 새로운 재료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재료를 조합하여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에 더해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시선, 관점이 녹아 있어야한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이란 그 동안의 경험을 연결하고 종합하는데에서 온다"라고했다. 아류작들은 보자마자 "이거 어디서 본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창조적 작품들은 작가만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단순 아류작, 복제품들은 기존에 잘 나가는 작품이 존재하니 나도 따라만들어야지라는 소비적인 태도에서 출발하고, 창조적 작품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구조나 틀을 활용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이 원리는 문학 뿐만 아니라 다른 창작 분야에서도 유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리자드 사의 스타크래프트라는 전략 게임이다 이 작품은 1997년에 출시했는데, 그 안에는 영화 에일리언, 보드게임 워해커 40000, 영화 스타워즈 등 기존 콘텐츠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저그에서 생물체가 알에서 태어나 성체로 진화하는 모습이나 프로토스가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라는 점이 그렇다. 스타크래프트는 다양한 작품들에서 여로 요소들을 차용했지만 그것을 한데 모아 하나의 내러티브로 통일했다. 각각의 외계 종족에 고유의 철학을 부여하며 전체 서사를 창조한 것이다. 저그는 생물학적 진화, 프로토스는 엘리트 주의, 테란은 생존주의를 상징하며, 이들을 통해 단순한 설정을 넘어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한 것이다. 이처럼 기존 요소들을 활용한 단순 조합은 복제에 불과하지만, 자신만의 해석과 철학이 담기면 창작이 되는 것이다. 이는 영화 분야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기존에 존재하던 배트맨이라는 히어로의 틀을 가져왔지만 거기에 작가의 철학적 질문을 포함시킴으로써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창작과 저작권은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서로 균형을 맞춘다. 저작권은 왜 필요할까? 저작권은 창작자가 만든 것을 함부러 도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창작자의 노동이나 창의성을 지켜주는 일종의 장치인 셈이다. 만약 저작권이 없다면 창작자들의 생계나 권리를 위협 받아 다른 새로운 창작 활동들이 이루어지지 않을수도 있다. 앞서 창작물에는 창작자만의 관점, 해석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작가가 분명 자신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만들었을지라도 법적으로는 표절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법의 관점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의 유사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저작권 관점에서는 사람이 느낀 감정보다는 원작을 어디까지 똑같이 가져왔는지를 판단한다.




창작자는 누구나 다른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자기만의 언어로 소화시키지 않는다면 표절의 위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창작자는 원작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내 방식, 관점으로 재해석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창작은 기존 요소들의 반복(iteration)이지만, 그 반복 속에 깃든 창작자만의 해석이 곧 창조이며, 그 고유한 해석을 보호하는 것이 저작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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