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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감상

패기만이 모든 것을 능가한다.

만화 원피스를 통해 본 자기 확신과 삶의 본질

by 장철원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비교속에 살아간다. 누군가는 타고난 재능으로 주목받고, 또 누군가는 묵묵히 노력하며 따라가려 애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능력이 부럽기도 하고, 나도 무언가 특별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능력'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문득 만화 원피스를 떠올렸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넘쳐나는 그 세계 속에서도 진짜 중요한건 단지 능력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엿볼 수 있었다.




만화 원피스에는 악마의 열매라는 특별한 아이템이 등장한다. 원피스 세계에는 다양한 종류의 악마의 열매가 존재하며, 이름처럼 열매를 먹으면 바다에서 수영을 못해지는 대신 특별한 능력을 얻는다. 주인공 루피는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해적왕이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난 루피는 여러 동료들을 만나고, 다양한 열매를 먹은 악마의 열매 능력자들과 대결하며 점차 강해지는 내용이 원피스의 주요 스토리 흐름이다.


0001_01.png 고무 열매를 먹은 루피(출처: 원피스 1화)



초반: 능력이 전부인 세계


스토리 초반부에는 누가 어떤 능력을 가졌냐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즉, 누가 어떤 열매를 먹었는지, 누구 능력이 더 특별한지, 어떤 능력이 전투에 더 유리한지가 중심이 된다. 악마의 열매는 크게 동물계, 초인계, 자연계로 나눠지는데, 특히 손으로 실체를 만질 수 없는 자연계는 초반에 아주 강력한 계열로 평가받는다. 번개를 다루는 에널, 불을 다루는 에이스, 연기를 사용하는 스모커 등과 같은 자연계 인물들이 강자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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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능력에 의존하는 캐릭터들(출처: 원피스 100화, 577화)

이 구조는 현실과도 닮아있다. 악마의 열매 종류는 사람의 재능이나 능력에 비유 할 수 있다. 누가 더 큰 재능을 가졌는지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모습은 우리가 학력, 집안 배경, IQ와 같은 요소들을 평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 때,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 도 있고,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해당 재능이 경제적 활동을 하는데 얼마나 유리한지에 따라 성공 여부도 결정되는데, 예를 들어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축구선수가 되어 성공할 수 있지만, 반대로 철학이 특기라면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이 거의 없어서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를 띈다.




이와 같이 원피스 초반에는 열매의 종류가 전부였다. 주인공 루피는 고무 능력이라는 스펙상으로는 다소 평범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단지 열매 능력으로 그의 본질적인 면까지 규정할수는 없었다. 그의 진가는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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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고무 열매의 능력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루피(출처: 원피스 387화)


중반: 능력 그 자체보다 중요한 활용법


스토리 중반으로 접어 되면, 열매의 단순한 순수 능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해당 열매의 활용 방식이 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다. 실제로 초반에 강하게 그려졌던 자연계 능력자 스모커는 자신의 열매 능력에 안주하여 평범한 전투력을 보여주고, 처음에는 그다지 강하게 평가받지 않았던 루피는 고무고무 열매를 창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한층 더 강해진다. 뿐만 아니라 도플라밍고처럼 초인계 능력자임에도 '각성'을 통해 능력을 극대화 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0785_01.png 악마의 열매 각성(출처: 원피스 785화)


현실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재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축구를 잘한다고 해서 꼭 축구선수만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버, 해설가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 능력을 펼칠 수 있다. 단순히 무엇을 갖고 있느냐보다 전략, 창의성, 행동력, 실천성을 통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재능이 좋지만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대로 재능은 평범하지만 활용을 잘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원피스 중반에는 후자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0597_02.png 패기의 정의(출처: 원피스 597화)


후반: 견문색 패기, 무장색 패기, 패왕색 패기


스토리 후반부에는 패기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패기에는 크게 견문색, 무장색, 패왕색 3가지 종류로 나뉜다. 먼저 견문색 패기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기척을 감지하고, 단련하면 몇 초 후 미래까지 보는 능력도 가능하다. 이는 현실로 비유하면 통찰력, 몰입력, 상황판단력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황에 깊이 들어가고,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는 힘이나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힘이다. 현실에서 견문색 패기가 뛰어난 사람은 타인의 말 속에 숨은 의도를 잘 읽고,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데 탁월하고 공감 능력도 뛰어나 상대방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빠르게 간파한다. 그리고 사회 변화나 분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하며,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알아차리고 준비한다. 훌륭한 상담사나 리더, 조직 관리자, 투자자 등이 견문색 패기가 뛰어난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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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색 패기와 무장색 패기(출처: 원피스 597화)


무장색 패기는 작중에서 자신의 몸이나 무기를 강화시켜 외부에서 오는 공격을 방어하거나 반대로 공격하는데도 활용할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자연계 열매 능력자에게도 물리적 피해를 줄 수 있다. 무장색 패기를 현실에 비유하면 실행력이나 정신력(멘탈), 실력, 의지력에 해당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한면 외부 공격이나 환경 변화에도 버틸 수 있는 내적 강인함,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행하는 행동력, 자신의 의지를 외부에 발현하여 직접 손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실천력, 끝까지 밀고 나갈수 있는 근성 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회복탄력성과 같이 실패, 비난,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위기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실질적인 전문성으로 외부 위협에 대응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반복되는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는 창업가, 악조건 속에서도 성과를 내는 실무자,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도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이 무장색 패기가 뛰어난 사람들이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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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색 패기(출처: 원피스 597화)

패왕색 패기는 작중에서 왕의 자질을 가진 극소수의 인물들만 사용할 수 있다. 패왕색 패기를 사용하면 상대를 기백만으로 기절시킬수도 있고, 나중에는 패기를 휘감아 공격에 활용하는 등 응용하는 장면도 나온다. 현실에서 패왕색 패기는 강력한 자기 확신, 스스로 삶을 창조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현실에서 패왕색 패기가 뛰어난 사람들은 자기 확신으로 공간을 장악하는데, 말보다 존재 자체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거나,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경우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는 경우가 패왕색 패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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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른 재능(출처: 원피스 597화)



패왕색 패기


작중에서 패왕색 패기는 백만명 중 한명 있을까 말까한 극소수만 타고나는 자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루피, 로저, 카이도, 샹크스와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인 패왕색 패기 보유자다. 이렇게보면 역시 타고나는게 중요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질을 타고나는 것 만큼 그 능력을 개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현실에서도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태생적으로 조용한 사람도 있고, 어릴때부터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내면의 세계를 구축하는 자는 결국 어느 순간 패왕색의 문을 열게 된다는 점이다. 패왕색은 선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나 그 씨앗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씨앗을 개화시키느냐, 그대로 잠들게 두드냐의 차이일 뿐이다. 패왕색 패기를 타고난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확신과 세계관이 빠르게 형성되는 자를 의미하며, 개화시키지 못한 사람은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억압, 두려움, 낮은 자존감에 묶여 진정한 자신의 내면을 해방하지 못한 사람에 해당한다.



1010_01.png 패기를 개화시키는 법(출처: 원피스 1010화)


그렇다면 어떻게 패왕색 패기를 개화시킬 수 있을까? 우선 자신만의 철학을 가져야한다. 즉, 자기만의 신념이 없으면 외부 세게의 흐름에 휩쓸리기 쉽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을 가는게 아니라 외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음식점에 가며, 내가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곧 외부의 기준이 아닌 자기 내면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내 삶을 시험 점수나 랭킹과 같은 타인의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만의 고유한 평가 잣대를 스스로 설정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믿고 가는 것이다. 또한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어야한다. 패왕색을 지닌 자는 피하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감정, 실패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외부의 비난, 실패의 두려움을 감수하고 자기 기준에 따라 결단을 내리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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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세계를 제패할 일은 없다.(출처: 원피스 1010화)


패기만이 모든 것을 능가한다


악마의 열매는 자신 외부에 존재하고 이를 작중 캐릭터가 먹는 식으로 얻게 된다. 현실에서도 능력은 자신 외부에 있으며 그것을 공부나 연습하는 식으로 체득하게 된다. 결국 능력은 외부로부터 오는 속성인 반면, 패기는 존재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악마의 열매를 현실에 비유하면 학위, 전공, 자격증에 비유할 수 있고, 패기는 그 사람의 자기 신뢰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결국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닌 그 사람자체가 주요한 것이다. 원피스 후반부는 마치 스펙, 능력주의의 허상을 비판하고 기술은 수단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1047_03.png 패기만이 모든 것을 능가한다(출처: 원피스 1010화)


이는 철학자들의 생각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플라톤은 지식과 기술을 중요시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데아를 강조했고, 하이데거는 현대 사회가 기술에 매몰되어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니체 역시 재능이나 지식에 의존하는 삶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강조했는데 이는 패왕색 패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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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강함이다(출처: 원피스 597화)



인생에서도 결국 능력 자체보다는 패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능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외부 기술은 무시할 수 없는 성장의 촉매이며, 그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자기 존재를 새롭게 형성하여 자기 확신으로 이어져자신을 깨우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원피스에서도 악마의 열매는 때때로 패기의 문을 여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패왕색 패기는 결국 외부 기술로 인한 성과가 아닌 그 기술을 소화하면서 자기 확신으로 이어진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만큼 외부 기술과 자기 철학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1010_02.png 패왕색도 두를 수 있는거자?(출처: 원피스 1010화)


외부 기술은 필요하다. 다만 그것은 무기이지 정체성이 아니다.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게 되는 순간, 자신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는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성장한다. 루피가 고무고무 열매를 단순히 기괴한 고무 능력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고무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수많은 훈련을 통해 노력을 하면서 열매를 자기 존재의 일부로 삼았은 것 처럼 말이다.


1047_04.png 습득이 쉽지 만은 않다(출처: 원피스 597화)


나에게도 기술은 내 자아를 드러내는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결국, 패기만이 모든 것을 능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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