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감상평
요새 한창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고 있다. 이 작품은 근대 이후 감옥이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응용되어 사회 전반의 통제로 이어졌는지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몬스터>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실력좋은 신경외과의사 텐마가 수술로 한 소년을 살려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을 너무 감명 깊게 본 나머지 원작 만화책로 한꺼번에 구매하게 되었다.(절판된 5권 구하기 힘들었다ㅜㅜ) 얼핏 상관없을 것 같은 <몬스터>와 <감시와 처벌> 두 작품은 생각보다 연관성이 깊었고, 애니메이션을 보면 책을 더 재밌게 읽었고, 책을 보면 애니메이션이 더 재밌어졌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작품을 읽고 생각한 점을 적어보려한다.
<몬스터>의 배경은 독일이다. 작중 사건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511 킨더하임이라는 고아원이 나오는데, 악역으로 등장하는 요한은 바로 이 기관에서 자란다. 511 킨더하임은 겉으로는 고아원처럼보이지만 실상은 제2의 히틀러를 만들어 내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 기관이다. 이 고아원에서는 다양한 사회 심리 실험이 진행되는데, 실혐 과정에서 아이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요한 혼자 살아나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중에서 요한을 보다보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환경이 사람을 괴물로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요한은 태어날때부터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 괴물일까.
실제 냉전시대의 동유럽 역사를 알면 <몬스터>라는 작품을 좀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다. 그 당시 동독은 국가 차원에서 개인을 강하게 통제했었는데, 한 명의 개인을 심리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Zersetzung(독일어로 "분해", "혼란")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통해 직장을 잃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그 사람에 대한 거짓정보를 퍼뜨려 정신병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몬스터> 속 설정은 실제 현실속 여러 요소들을 섞어 만들었는데, 모티브가 된 것은 동독 비밀경찰, 냉전 정보기관, 심리실험, 고아원 시스템, 독재국가의 이념교육 등이고 이들을 작품 내에서 모두 합쳐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511 킨더하임 시스템이라는 설정을 만든 것이다. <몬스터>는 현실 기반 설정을 만들었기에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아 실감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미셸 푸코는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판옵티콘 개념을 설명한다. 군대라는 곳은 얼핏보면 개인이 훈련을 받으면서 능력이 키워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집단에 통제되는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예전의 감옥처럼 사람을 직접 때리거나 강제로 통제하지 않고, 각 개인이 스스로 통제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이 병원이나 학교에서도 그대로 수행된다. 겉으로는 훈련, 교육, 치료의 목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행동을 틀에 맞추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명의 개인은 시스템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에서 511 킨더하임은 갈 곳없는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명목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그 안에서는 아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결국 비극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행동은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511 킨더하임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던 연구자는 이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아이들을 기른다. 그런데 그때는 511 킨더하임과는 반대로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면 어떻게 변할지 실험한다. 그 결과 사랑으로 키워진 아이들은 항상 밝은 표정으로 웃음짓는데, 이는 시스템이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지에 따라 해당 시스템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게 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각 개인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생각은 시스템에 의해 유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냉전시대부터 심리 전략이 꾸준히 발전해왔다면,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사회의 거의 모든 곳에 심리전략이 깔려있지 않을까. 나만해도 내가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했을 때, 그 당시 나는 내 스스로 결심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에 유도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하는 생각은 학교도 그만두고, 회사도 그만두고 나만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시스템으로부터 유도된 생각이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푸코는 인간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한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조종당하는 것도 아니라고 언급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 내에서 선택한다. 그런면에서 내가 박사과정을 그만두거나 회사를 퇴사한 것은 시스템 입장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 중 하나였을 것 같은데, 분명 나에게는 완벽한 자유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시스템 내에서는 상당히 편차가 큰 선택을 한 것이다. 인간은 제약조건 하에서 선택하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단순히 자유가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제약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 문화, 사회, 신체와 같은 것들도 모두 제약으로 여길수있는데, 그런면에서 인생에서의 선택은 어쩌면 제약을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아들일수 있는 제약과 싫어하는 제약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자신이 선택한 제약조건 하에 나만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삶이란 어쩌면 내가 선택한 제약조건 하에서 사는 삶을 의미하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에 요한이라는 인물을 작중묘사로만 상상해 보았때 무차별 살인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항상 그는 선량한 사람들을 특별한 이유없이 헤치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가 등장했을때는 의외로 고도의 지능 캐릭터라는 사실에 놀랐다. 작중 재벌로 등장하는 슈발트라는 인물는 요한을 두고 법률, 경제, 라틴어, 역사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요한의 능력이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보통 자신만의 철학이 생기려면 역사적으로 흘러온 학문 내용들을 흡수한 후에 자신만의 철학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은 20대 초반에 자신만의 철학을 쌓아 올린 것이다.
요한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을 넘어, 지식을 활용하는 법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야 호감을 쌓을 수 있는지도 명확히 알고 있었는데,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공감 능력도 뛰어났다. 칼의 과거를 듣고는 그를 위해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건 단순히 연기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반대로 결정적으로 누군가를 해치우기로 결심했을 때, 예를 들어 리베르트 형사를 죽일때는 무력을 사용하지도 않고, 그의 과거를 토대로 그가 겪고 있는 투라우마를 정확히 노려서 심리적으로 공격한다. 요한은 그에게 어떤 말을 했을때, 어떤식으로 반응할지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위스키를 건네고 질문 몇개 던진 것 뿐인데, 결과적으로 그 질문들이 그가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인것처럼 그를 자살로 몰아간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여러 작품에서 지능형 악당을 많이 보아왔는데, 요한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이라고 느껴졌다. 요한은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뛰어난 지식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요한의 진짜 능력은 인간의 심리를 완전히 읽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통 일반적인 만화의 악당은 힘이 강하거나, 전략이 뛰어나거나, 범죄 조직 리더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요한은 인간자체를 완벽히 이해한 악당이라는 느낌이 들어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명문대 간판을 마치 자신을 꾸며주는 악세사리처럼 적극 활용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면에서 요한의 공부에 대한 관점이 흥미로웠다. 그는 뮌헨 대학교를 단순히 자신을 꾸며주는 간판으로 사용하지 않지 았는다. 그는 지식을 단순히 시험용으로 외우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는 거의 모든 분야에 능통했는데,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 지식을 활용하고,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조작하기 위해 철학 지식을 활용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공격하기 위해 심리학 지식을 활용하고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언어학을 활용한다. 그런면에서 나는 비록 요한이 악역이긴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깊이는 일반인들과 비교가 안될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요한이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느낌으로 알수 있다는 점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작중에서 요한을 만난 사람들은 그와 몇 마디만 주고 받아도 요한의 말투, 행동, 아우라 같은 것으로 그 사람의 힘을 느낄 수 있다는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요한은 작중에서 살인을 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활용하는데, 자살을 유도 하거나, 직접 총을 쏘거나 독살을 하는 세가지 방법을 주로 활용한다. 첫 번째 방법인 자살을 유도하는 방법은 요한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살인 증거가 없고 경찰추적도 어려우며,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퍼트릴 수 있기 때문에 요한이라는 캐릭터의 철학과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아무에게나 통하지는 않는다. 심리적으로 유도하려면 상대 과거를 알아야하고, 그 사람의 트라우마도 있어야하고 대화할 시간도 필요하므로 항상 가능한 방법은 아니고 급한 상황에서는 사용하기 힘들다.
두 번째로 직접 총을 쏘는 방법은 가장 단순하고 확실하게 타겟을 처리할 수 있다. 이 케이스는 보통 빨리 목표를 제거해야하는 상황에 활용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살은 단순히 죽이는 것을 넘어 공포를 확산시키고, 주변사람들을 혼란시키며 사건을 미스터리화 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자신이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살인 방법을 선택한다. 작중에서 요한은 상당히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는 심리전, 폭력, 설득, 공포 등 여러가지 방법을 상황에 맞게 선택함으로써, 상당히 전략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작중에는 프란츠 보나파르타라는 동화 작가가 나오는데, 그가 집필한 <이름없는 괴물>이라는 동화책은 작품 속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작가는 겉으로는 평범한 그림책 작가이지만, 그는 실제로 동독에서 심리학자이자 교육자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잔인한 실험을 감행했던 인물이다. 그는 아이들을 모아서 서로에게 경쟁시키고 불신하게 만들고 고립 상태로 만들어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부쳐 결국 아이들끼리 서로 죽이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작품에 나오는 511 킨더하임은 단순한 고아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동독의 비밀 프로젝트 시설이고 그 시설에서 진행되는 실험을 설계한 핵심 인물이 프란츠 보나파르타인 것이다.
환경이 인간에 영향이 미치는 중요성을 보여주는 실제 사건으로 1954년의 강도 동굴 실험(Robbers Cave Experiment)을 예로 들 수 있다. 연구팀은 11~12세 남자아이 22명을 여름 캠프에 초대한 후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각 그룹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채 캠프 생활을 하다가, 며칠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집단 별로 리더가 등장하고 규칙이 생긴다. 실험의 다음 단계는 두 그룹을 만나게 하고 서로 경쟁을 붙인다. 연구자들은 아이들에게 야구, 줄다리기, 보물찾기 등을 통해 경쟁하게 만들고, 승자에게만 상품을 준다. 그 결과, 놀랍게도 아이들은 서로에게 욕설을 하고 싸우며 적대적인 집단으로 변했다. 연구자들은 갈등을 더욱 고조 시키기 위해 각 그룹에 상대팀이 그랬다는 듯 거짓 정보를 퍼뜨려 갈등이 정점에 치닫게 만든다. 그제서야 연구자들은 두 집단을 화해 시키기 위해 같이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게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팀이 협력해야하는 문제, 예를 들어 캠프 물 공급이 고장되는 상황이 생기니 적대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실험은 집단 갈등은 매우 쉽게 만들어지며, 서로 싸우던 집단이라고 해도 같은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면 협력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품 최후반부에는 산간마을에서 요한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만든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한이 그 마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인간들을 서로 죽이게 만드는건 아주 쉽다는 것 아니었을까. 이를 위해 특별한 악당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서로 죽이라는 직접적인 명령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조직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주 조금만 상황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보통 전쟁이나 학살은 적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원래부터 잘 알던 관계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서로를 죽이게 된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보며 느낀 점은 안정적으로 보이는 인간사회가 어느 한 순간 붕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느끼는 인간사회의 균형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상당히 위태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법, 도덕, 사회규범, 교육과 같은 인위적인 장치가 필요한데, 생각해보면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역사적으로도 전쟁이나 학살, 살인이 끊이지 않는데, 이는 특별한 몬스터 같은 존재가 벌인 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사회에서 느끼는 질서는 자연상태라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에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모두를 감시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열을 형성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면서 통제하는 것을 보며 역겹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몬스터>를 읽고 나니 이렇게 감옥같은 학교 시스템이 없다면 더욱 통제가 안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