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개발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법

이토준지 만화 소용돌이 감상평

by 장철원

TV예능 "나혼자산다"에서 기안84 작가님이 자신이 동경하던 이토준지 작가님과 만나는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무척 감동적이었다. 자신이 평생 존경하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10년도 더 전에 이토준지 작가님의 작품들을 인터넷 짤로만 처음 접했는데, 그 당시의 나는 그림이 기괴하다는 생각만하고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의 만화를 읽는 사람들을 특이취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기안84가 존경한다는 작가님이라길래 어느정도길래 저렇게 좋아할까 싶어 읽어보았는데, 시간이 지나 소용돌이라는 그의 작품을 읽었을때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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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고 난 후 소용돌이는 단순히 공포 만화라기보다는 철학서에 가까운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중에서 마을 사람들은 소용돌이 무늬에 집착하면서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람들이 소용돌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용돌이는 집착, 자기파괴, 스스로의 틀에 갖혀버린 인간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SNS라는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고, SNS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멈출 수 없으며 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는 모습도 생각났다. 그리고 조회수나 돈, 성공에 집착하는 모습, 자기개발서를 끊임없이 읽으며 성공을 갈구하지만 결국 성공이 아닌 자기개발서 자체에 매몰되는 모습, 타인과의 끊임없는 경쟁, 비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등 현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현상들이 모두 소용돌이를 상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달팽이 인간

작중 중반 쯤에 학교에서 달팽이 인간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해당 화에서는 왕따 당한 학생, 왕따 시킨 학생, 선생님 이렇게 3명이 달팽이 인간으로 변하는데, 왜 하필 많은 사람 중 그 3명이 달팽이 인간이 되었을까? 왕따 당한 학생은 피해자를 상징하고 왕따 시킨 학생은 가해자, 선생님은 관리자에 해당하는데, 이 셋이 달팽이로 변한 것은 피해자, 가해자, 관리자라는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달팽이로 변한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사회 시스템 내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지 상관없이 모두 달팽이 인간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피해자였던 학생과 가해자였던 학생이 달팽이가 된채 번식해서 알을 낳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사회 구조적으로 왕따 피해자와 가해자가 계속해서 생산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중 후반부에는 마을 사람들이 달팽이 인간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한 때 인간이었던 존재를 먹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며 잠시 망설인다. 이 단계에서는 생존 욕구보다 도덕이 우위에 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차 식량이 부족해지자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먹게 된다. 처음에는 도덕을 내세웠지만 이때부터는 생존 본능이 우위가 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번 먹고 난 후에는 식량 해결을 이유로 오히려 다른 사람이 달팽이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즉,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생존이 되는데, 이 부분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어쩌면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가장 무서운건 인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달팽이 인간을 사회에 비유하면 사회적 약자에 비유할 수 있고, 달팽이 인간을 먹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달팽이 인간이 더 생기길 바라는 마음은 착취 시스템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게 아니었을까. 마치 누군가는 힘들어야하고, 누군가는 가난해야하고, 누군가는 위험한 일을 해야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으니, 이는 마치 달팽이 인간이 늘어나길 바라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장면처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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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달팽이 인간이 될까?

소용돌이 후반부에는 달팽이 인간이 되는 사람이 있고 멀쩡한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떤 사람이 달팽이 인간으로 변하는 것일까? 얼핏 랜덤으로 보이는 이 현상은, 어떤 것에 집착할수록 달팽이 인간으로 빨리 변하는 경향이 있다. 작중에서는 임신에 집착, 아름다움에 집착,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집착하는 사람들이 소용돌이에 더 빨리 잠식된다. 이들은 어떤 것에 집착함으로써 열등감이 심해지고 주변 시선에 민감해지면서 점차 사회에서 멀어지고 달팽이 껍질이라는 자신만의 세계에 숨어버린다.




사회에서 보통 어떤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사람들에게 집착은 성공의 필수요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집착을 재능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집착은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자 자신을 파멸시킬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착은 성공의 연료도 될 수 있지만 동시에 파멸의 연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똑같은 생각을 계속하고, 하나의 문제를 몇년씩 붙잡고 늘어진다. 남들은 도중에 지루해서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결과가 안나와도 계속한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약간 미친 것처럼 보일수도 있는데, 이런 상태가 거의 집착 상태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과학자라면 어떤 문제를 붙들고 평생 고민하거나, 예술가라면 작품, 운동선수라면 기록, 사업가라면 돈이나 회사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시에 집착은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집착이 강해지만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건강이 무너지고 시야는 좁아진다. 시야가 좁아지니까 다른 가능성을 보지못하고 스스로 멈추는 법을 모른다. 보통 열정이나 몰입 상태에 있으면 자신이 원해서 계속하는 데 집착으로 넘어가게 되면 안하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하면 할수록 자신의 삶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착 대상 하나로 줄어들어 좁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실패하면 자신의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매달리다보면 건강과 인간관계 모두 잃는 것이다.




그래서 집착을 하되, 집착에 먹히지 않는 건강한 집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건강한 집착은 위험한 집착과 무엇이 다를까. 내 생각에는 건강한 집착은 스스로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멈출 수 있는 반면, 위험한 집착은 멈추면 불안해지는 것 같다. 사실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은 일 한하고 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 조금 위험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지는지 혹은 반대로 좁아지는지도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지 아니면 인간관계가 점점 줄어드는지, 새로운 공부나 취미 생활이 있는지, 삶이 단일화되지는 않는지 등 말이다. 아무래도 위험한 집착을 하다보면 삶이 그것 하나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기개발이라는 소용돌이

나는 소용돌이를 보면서 유행에 휩쓸리는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느꼈다. 약 20년 전쯤에는 서점 스테디셀러의 대부분이 고전 작품들이었는데, 어느새부터인가 '자기개발서'라는 장르가 등장하면서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독식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기개발서는 읽는 순간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책을 덮는 순간 내 인생이 딱히 변하지 않은채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나서 책에 나온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자기개발서를 읽게 되고 성공이 아닌 자기개발서 자체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예전에 갓 20살이 되었을 무렵 성공하고 싶어서 자기개발서를 많이 읽었었는데, 그 당시 내가 마치 달팽이 인간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는 목표가 성공이었는데, 어느 순간 목표가 자기개발서 읽기로 바뀐 것이다. 아마 그때의 나는 성공하고 싶은게 아니라 성공을 준비하는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상태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준비 상태는 아직 실패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 이는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공부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것에도 해당한다. 이들 모두 하고 있는 동안에는 실패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실패 없는 영역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개발서는 정확히 이 지점을 노린다.




자기개발서 전체를 싸잡아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개발서들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맞는 말을 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개발서를 일종의 진통제처럼 여기는데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불안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술에서 깨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현타가 함께 찾아온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속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는 나였는데, 게임을 종료하는 순간 현실이다. 현실은 바뀌지 않은채, 이때 느끼는 현타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또다시 술을 먹고 게임을 한다. 자기개발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속 자신은 불안하기에 자기개발서를 집어들게 되는데, 자기개발서를 읽는 동안에는 잠깐 의욕이 생길지 몰라도 책을 다 읽고나면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다시 불안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자기개발서를 찾게 된다. 나도 자기개발서 한창 읽을 때는 시중에 안읽어본 자기개발서가 없을 정도로 많이 읽었던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책을 100권 읽으면 삶이 바뀐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보는게, 책 100권 읽는것 보다 결과 하나 만드는게 훨씬 스스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을 잘쓰고 싶어서 글쓰기 책 20권 읽는 것보다 미숙하지만 블로그 글 5개라도 써본 사람이 얻어가는게 많다고 생각한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할수도 있겠지만, 직접 소설을 써보는게 낫지 않을까.


자기개발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법

자기개발이라는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입력과 출력의 비율을 맞추는 것이좋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력과 출력의 비율이 100:0인 경우가 많다. 책 100권 읽기가 목표라면 100권의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입력에 대응되는 출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예를 들어, 책을 한 권 읽었다면 글을 1개 쓰고, 공부를 10시간했다면 결과물 1개를 만드는 것이다. 시간을 투자한 만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글을 쓰므로 당연히 책 100권 읽기까지 시간은 몇 배로 걸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못견딘다고 생각한다. 마치 어렸을 때 밀린 여름방학 숙제하듯, 100권을 후다닥 읽어버린다. 100권을 다 읽은 후 변할 자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이런식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채 기계적으로 활자를 처리하며, 책 100권 읽는다고 자신이 변할수 있을까.




소용돌이라는 작품 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소용돌이 모양에 집착하면서 점점 깊게 빠져들고, 결국 현실과 멀어지면서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파멸한다. 마찬가지로 자기개발에 중독되면 성공 방법에 집착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책, 더 많은 유튜브 영상을 찾게 된다. 그러면서 실행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결국 스스로 변하지 않은채 자기개발 탐독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자기개발 달팽이 인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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