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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초 Jun 21. 2020

부엌문을 열면

뜨거운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부엌에서 평생을 보내신 그녀의 한식 퍼레이드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르는 서울의 집밥 맛집]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매해 여름방학이면,시카고에서 서울로 재빠르게 돌아왔다.


다른 이유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내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항상 들리는 맛집이 있다.


바로 우리 할머니 집.


현관문 후다닥 열어 신발은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문간방을 지나 간신히 잡은 부엌문을 드르륵 열면!

인자하고도 밝은 미소와 함께 "하이고~ 우리 밍그이* 왔나~?" 하고 내 짱구 이마에 할머니 표 '마빡 뽀뽀'를 쪽! 받으면 행복한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것이다.

*경상도 분이신 할머니로부터 불려지는 내 이름은 다양하다. 밈미, 밍그이, 밍구 등 :)


여름 내내 하루 삼시 세 끼는 상다리 휘어지도록 각종 할머니표 음식들로 가득 채워진다.

할머니는 고기 특유의 씹히는 식감, 나물 반찬에서 나는 향긋함, 목으로 넘어가는 그 끝 맛, 음식 궁합까지도 신경을 써서 만들어 내셨고 건강 또한 생각하시며 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고 제철 재료 본연의 맛을 내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배를 갈아 넣어 달콤한 국물이 자작한 불고기부터 한약재와 원두를 넣고 삶아 보송 탱글 윤기 좌르르 잡내 하나 안나는 담백한 수육, 미더덕과 멸치를 우려내어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된장찌개, 짭조름한 우엉과 당근을 꼭 넣어 옹골차게 말아졌던 할머니표 김밥을 산 정상에서 한 입 쏙 넣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무심하게 비벼져 내주신 것 같은 간장 국수는 '엄지 척'이 저절로 나오는 오묘한 맛이다.


초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할머니, 이 간장 국수는 간장으로만 비비면 돼요?"


"응! 쉽다~ 그기다가  간장 째께(조금), 조청 째께, 야채 육수 째께, 참깨 쩨께, 마지막으로 들기름 한빨 떨어트리가 . . . . 조물 조물 비비 무면 된다."

할머니 혀에만 적혀있는 절대 쉽지 않은 간장 국수의 레시피.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할머니 손으로 쭈욱 쭈욱 찢은 겉절이가 내 밥 숟가락 위에 툭 올려지면 한 입 크게 떠 우물우물 씹는 동시에, 내 눈은 아삭아삭 오이소박이, 애호박 나물, 가지전, 오징어 장조림으로 향하며 내 젓가락은 어느 반찬부터 먹을지 밥상 위에서 갈팡 질팡한다. "할머니, 다 맛있어요! 빨리 와서 같이 드세요!" 하면 그제야 더 많은 반찬 접시들을 양손 가득 들고 뒤뚱뒤뚱 걸어 나오시는 할머니. 민소매를 입으신 할머니의 양팔은 땀에 흠뻑 젖어 미끌거렸다.

"맛있나? 좀 짜울지 모르겠네. 그래도 마이 무 (많이 먹어라)!"


할머니의 음식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장(醬)에 있었다. 새우젓과 같은 생선으로 만든 어장(魚醬), 고기로 만든 육장(肉醬), 대파, 버섯 등 각종 야채로 만든 초장(草醬) 말이다. 간장, 고추장, 된장과 함께 황금 비율로 버무려진 할머니만의 '마법 소스'는 어느 음식에도 잘 스며들어 감칠맛을 내었다. 더 깊고 구수한 한식의 맛을 내기 위해 할머니는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장을 공부하시곤 했다. 절대 간 맞추기에 실패한 적 없는 할머니 표 음식은 누구라도 할머니 밥상에만 앉으면 밥 두 세공기를 뚝딱 해치우게 한다.


첫 손주였던 나에게 뭐라도 잘 먹이려고 하셨던 할머니. 그녀의 손을 거친 다양한 한식 요리 덕분에 골고루 먹으며 지금의 172cm의 키 큰 손녀가 된 것 일지도!


밥을 다 먹고 나면 할머니는 곧바로 대야 같은 깊은 유리그릇에 가득 담긴 수박 화채며, 식혜, 꿀물 등 기호에 맞춘 한식 음료와 정갈하게 썰여진 알록달록 과일을 내오신다.


"밍그나, 7번. 7번 틀어봐라."


선풍기 방향을 할머니 쪽으로 돌려 드리고, 과일 하나를 먼저 쥐어드린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드라마 볼 시간이다. 내가 여쭤보지 않았음에도 할머니는 구구절절 각각의 등장인물의 관계를 이해가 쏙쏙 되게 설명하신다. 어느 순간, 특정 캐릭터에 몰입해서 할머니와 같이 상대 악역 배우를 욕하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할머니 곁에는 항상 서* 우유(꼭 이 상표여야 한다)를 탄 커피 한 잔과 라디오가 있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라디오 DJ의 조곤조곤한 말소리와 함께 내일 먹을 삼시 세끼 음식 재료 손질을 다 해놓아야 할머니의 하루는 끝이 난다.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든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라디오와 부엌 불이 꺼진다.



[너무 빨리 비운 콩국수와 비빔냉면]


가지 않으려 용을 쓰는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8월,

매일 같이 휘황 찬란한 음식들 받드느라 상다리가 휘어지듯이 할머니의 허리도 나날이 휘어가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늦여름에는 할머니의 집밥을 먹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었으며 할머니와 외식을 자주 했다. 삼계탕, 추어탕, 오리 로스구이, 교* 허니 콤보 치킨, 롯*리아 소프트콘......


할무니, 할부지, 동생과 말복날 삼계탕 외식.


그러던 어느 날, 허리 수술 때문에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들으시다가도,

부축을 받는 게 부끄러우셨는지 헤헤 웃으시며 "밍그나, 할머니 좀 일으켜 줄래?" 하시곤,

부드럽고 고소한 콩국물에 퐁당 담가진 쫄깃한 면발의 얼음 동동 시-원한 콩국수를 뚝딱 말아 오신다.


항상 죽만 드시던 할머니가 그나마 좋아하셨던 해물 피자를 배달시켜볼까 고민하던 찰나,

금세 나타난 콩국수에 눈이 휘둥그레져 콩국수 한 그릇 뚝딱 비웠다.


깨소금과 땅콩가루도 알맞게 뿌려졌던 할머니표 콩국수.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6인용 승합차까지 빌려 다 같이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나름 인정할 만한 정보력으로 찾아낸 숨은 강원도 맛집에서 순두부찌개, 메밀 막국수, 콧등 치기 올챙이 국수 등 뭐든지 잘 먹는 나와 동생을 보시고는, "이런 건 할머니가 집에서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데~"하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전보다 훨씬 허리 통증이 심해지셔서 오래 동안 서 계실 수 없었던 할머니의 아쉬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게 할머니의 뽀뽀로 시작된 4개월의 행복한 여름 방학은 공항에서의 할머니의 뽀뽀로 끝이 났다.

허리 아프신데 공항까지 나오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드렸건만 그 먼길을 짠! 하고 나와계셨던 할머니였다.


"밍그나! 울지 말고! 니 울면 내도 우는데... 내년 방학에 또 오면 할머니가 맛있는 거 마이 해주께잉,

얼른 와라잉? 알겠제?"


 나는 시간이 하루 빨리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할머니에게서 빠르게 멀어지는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여기 육개장 더럽게 맛없네]


다음 해 여름 방학이 되기 세 달 전, 셰프 없는 맛집을 방문하고야 말았다.


호로록 호로록 고소한 콩국물과 함께 열무김치 얹어 맛있게 후딱 비운 콩국수는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할머니표 음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평소 늦잠을 잤던 일요일 아침인데도 그 날은 일찍 눈이 떠졌다.

조금 뒤, 한국으로부터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기 너머로 할머니의 운명 소식을 들었고, 너무 갑작스러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눈물도 안 났다.


'......? 이렇게 갑자기?.... 우리 할머니가....?

아니야. 할머니가 여름 방학에 맛있는 음식 해놓고 기다리신댔어.

그럴 리 없어.'


발인까지, 할머니랑 같은 하늘 아래 있기 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임을 직시해야 했다. 인생에선 다시 없을 할머니의 마지막 배웅 앞에 울고만 싶진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게 아닐거라고 수천번 부정하면서도 미친듯이 울면서 짐을 쌌다. 2월의 시카고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내렸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할머니에게로 날아가는 이 비행기는 너무나 느렸다. 이럴거면 미국에서 한국까지 킥보드를 타고 가지.



[할머니 손녀여서 정말 행복했어요]


새벽 2시쯤 눈이 떠졌다.

꿈이었길 바랬는데 난 여전히 장례식장이었다.


한 줌 가루로 변해버린 할머니에게서 검은색을 띄는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척추같이 생긴 철 덩어리를 보여주며 "폐기할까요?" 한다.


수십년 세월 동안 식구들을 먹여 살린, 할머니를 지탱했던, 참으로 수고 많았던,

할머니 허리에 박혀 있던 철심이었다.

철 몽둥이로 후려 맞은 듯이 아팠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꽉 막아섰다.

이내 눈물은 홍수 난 둑처럼 쏟아졌고 다리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가슴에 구멍이 나는 느낌이 뭔지 그때 알았다.



의료용 허리 보호대를 차시고도 부엌에서 늘 이렇게.


음식을 입에 댈 때마다 할머니 음식밖에 생각 나질 않았다. 한국에 도착해 장례식장에서의 첫 끼였던

육개장은 더럽게 맛이 없었다. 다만, 소주가 달았다.



[그들만의 만찬]


49제를 마치고 생전의 할머니께서 좋아하셨던 묵은 김치찜 식당을 찾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다 시키고도 한 술 뜨자마자 그대로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누가 옆에서 복스럽게 잘 먹는다고 머리를 쓰담 쓰담해주지도 않았으며, "더 무라! 내는 많다. 내 것까지 더 무라!" 하는 누구도 없었다.


'오늘은 뭐 먹을까', '점심 뭐 먹을래?'라는 질문은, 특히 한국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어우, 걔 밥맛이야'라는 부정적 표현으로부터 숟가락을 놓기도 하며 '밥 한 번 먹어요~' 혹은 '밥 먹고 합시다!'라는 반가운 말로 여러 사람이 밥상을 마주한다. 밥으로 사람이 연결되고 밥심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법이다.


이렇게 중요한 삶의 부분인 '식(食)'을 할머니가 채우고 계셨던 것이다.

삼시 세끼 한 켠을 항상 차지했던 삼색 나물 (시금치, 무나물, 고사리), 비 오는 장마철이면 부쳐 주셨던

배추전과 오징어 부추전, 조선시대 궁중에서도 으뜸 국수로 여겨졌다며 여름철 별미로 많이 해주셨던 탱탱한 면발의 메밀국수......


나의 할머니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재능이 있으셨다. 안 먹어본 사람은 몰라도 한 번 맛본 사람은 이내 그녀의 음식 솜씨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녀만큼 한식을 잘 풀어내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한다.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풍성한 파마 볼륨에서 풍기는 멋스러움에 세련된 보석 장식을 좋아하시던 나의 할머니. 사무치게 그립다.


나는 안 하던 요리를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종종 하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한식 요리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요리를 좋아해도 맛있게 하기는 어렵고, 그 사람을 위해 '맛있는 한 끼'를 차려준다는 것은 나의 모든 귀찮음을 이겨낼 상대방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있어야 정성껏 요리하게 된다는 것을.

 

내가 요리를 도와드린다거나 식후 설거지를 하려고 팔을 걷어붙이기라도 하면 "부엌이 제일 덥다. 얼른 나가라!" 하고 내쫓으셨다. 불을 쓰는 부엌과 거실의 온도는 열탕과 냉탕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할머니와 첫 손녀 사이는 사랑이라는 음식으로 채워졌으며 둘의 추억이 오롯이 한 그릇에 담겨 있다.


어릴 때, 늦은 시각까지 할머니랑 거실에서 TV를 보며 뒹굴거리다 그 밤에 하필 비빔밥이 먹고 싶다고 땡깡 부린 기억이 있다. 떼쓰는 손녀를 뒤로 하고, 계란 반숙 후라이 근사하게 얹어 오색나물 양푼 비빔밥을 마법처럼 손녀에게 내어 오신 할머니와 한 그릇 쓱-싹 비워 냈던 그 여름밤.

그 보다 더 행복한 추억은 없었던 것처럼.



[부엌문을 열면]


눈을 떴는데 이상하리 만치 너무 조용했다.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깬 것도 아니었으며 할머니가 듣는 라디오가 켜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젠 익숙해져야 할 이 낯선 아침. 바쁘게 요리하는 와중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꿀떡꿀떡 마시라고 쥐어주셨던 불*리스 요구르트 음료를 눈물과 함께 삼켰고, 할머니 없는 부엌에 할아버지가 쓸쓸히 토마토 주스를 갈기 시작하시고 계란을 삶으시려는 모습에 다시 눈물을 토해냈다. 그리곤 다짐해본다.

당신의 모든 시간을 따뜻한 집밥을 위해 헌신하신 정 많고 사람 좋았던 여자 '이*희'를 영원히 기억에서 살아내게 할 거라고. 그리고, 나 또한 정갈한 한식 밥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할머니 같은 정겨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이제는, 이제는,

부엌문을 열면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할머니 좋아하는 국수랑 비*빅 하드 양손 가득 들고

현관문 후다닥 열어 신발은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문간방을 지나 간신히 잡은 부엌문을 드르륵 열면,

항상 그곳에 서 계실 것 만 같은 할머니 품에 와락- 안기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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