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지키는 일

마음까지 닫지 않기 위해

by 이청목

오전에 바쁘게 환우분들을 이송하고

점심시간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생겼다.


차 안에서 이송 일정을 정리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올라탔다.


“아휴 덥다.

벌써 이렇게 더냐.”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 생각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팀장님이 말했다.


“환우분들하고 사적인 얘기는 하지 마.

말은 돌고 돌아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익숙한 말이었다.


그래도 물어봤다.


“혹시 제 얘기가 나온 게 있나요?”


“있지.

영업을 25년이나 했다고 하더라.”


나는

영업을 했다는 말은 했지만

숫자는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말은 그렇게 변한다.


조금 덧붙여지고,

조금 빠지면서

다른 모양이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게 사실이 된다.


팀장님은 그걸 막고 싶어 했다.


사적인 이야기가 많아지면

사람은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면

기준이 흐려진다.


출발 시간을 앞당겨 달라거나,

도착이 늦었다며 화를 내거나,

일이 아닌

관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맞았다.


실제로 그런 일은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치료가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출발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출발하면

20분 정도 걸립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예요?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예요.

힘들어 죽겠는데.”


말끝이 거칠어졌다.


“내가 이러려고

비싼 돈 들여서 여기 있는 줄 알아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평소에는 말이 거의 없던 분이었다.

그래서 더 낯설었다.


차는 이미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핸들을 잡고 있었다.


늦게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말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나는 짧게 답했다.


“금방 도착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 목소리가 한동안 귀에 남았다.


몸이 아파서 예민해진 상태라는 걸

알고는 있다.


그래도

그 말을 듣는 순간은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말을 끊지 않는다.


끝까지 듣고,

잠시 멈춘다.

그리고 묻는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예전보다

조금 더 늦게 말하게 됐다.


그 사이에서

내 감정을 한 번 거른다.


환자분들은

치료를 마치고 차에 올라탄다.


항암을 하는 날이면

걷는 것도 버거워 보인다.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는다.


어떤 날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또 어떤 날은

괜찮다고 먼저 말하며

조용히 웃는다.


그런 상태에서도

나에게 말을 건넨다.


별일 아닌 이야기,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말 한마디.

그걸 외면하기가 어렵다.


어떤 날은

질문이 길어지기도 한다.


혼자냐고 묻고,

왜 혼자인지 묻고,

결혼은 왜 안 했냐고 이어진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춘다.


그리고 짧게 답한다.


“개인적인 부분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질문에도

선을 생각하게 됐다.


차 안은 이상한 공간이다.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태우고 운전한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말을 꺼내고,

나는 그걸 듣는다.


그래서 더 고민이 된다.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마음인지.


선을 지키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선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선을 지키다 보면

사람이 멀어지고,

사람에게 마음을 두다 보면

선이 흐려진다.


나는 그 사이에 서 있다.


그래서 오늘도

말을 고른다.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마음까지 닫지 않기 위해서.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하루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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