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아버지는 은퇴한 직업군인이었다. 다정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말년에는 치매기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고 세상을 떴다. 그녀는 엄마랑 같이 살게 되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귀가 잘 안 들리기 시작했고, 증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조금 먹먹하다던 것이, 천둥이 쳐도 놀라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녀가 출근하고 나면 매일 걸레로 바닥을 닦고, 찬장 속 그릇들을 다 꺼내 마른 수건으로 정성껏 윤을 냈다. 그릇이 자주 깨졌고, 엄마는 허리가 아파 밤마다 낮은 신음을 뱉었다. 그녀의 만류는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와 반백 년을 함께 살면서 엄마는 아버지를 닮게 되었다.
“엄마, 제발 하지 마. 듣고 있어?”
화가 나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없던 화가 생기기도 한다. 귀가 먼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화가 났다.
아버지는 동생들에게는 늘 관대했다. 가장이 없는 집안의 맏이로서의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십수 년 전 아버지는 퇴직금을 헐어 막내 동생에게 꽤 큰돈을 빌려 주었다. 그사이 그 동생의 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딸은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는 날까지도 그 돈을 하나도 갚지 않았다. 엄마는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를 채근하였지만, 아버지는 동생에게 빚독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방의 국립대학교를 다녔지만, 그녀보다 성적이 나빴던 사촌동생은 서울의 한 사립 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엄마는 그게 늘 못마땅했다. 엄마는 그녀가 사촌동생에게 주눅이 들어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하지만 애써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 것은 엄마 쪽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엄마의 빚을 탕감해 주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딸인 그녀로서는 요령부득이었다.
엄마는 그 동생에게 돈을 받아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러나 따로 차용증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아는 변호사와 상의를 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녀가 삼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할 일도 아니었다. 삼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돈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한 일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기일을 앞두고 엄마는 그녀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만나면 꼭 돈을 갚으라고 해라.”
엄마는 자면서도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는 엄마의 평화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삼촌, 예전에 아빠가 빌려드린 돈 있잖아요. 그거...”
싸늘해진 공기에 그녀는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그 얘기가 지금 여기서 할 얘기니? 여자애가 말이야.” 숙모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힐난했고, 다른 친척들도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아빠가 퇴직금을...”
“엄마가 그동안...”
목소리가 커졌고, 그녀는 화가 났다. 형이 없어진 나이 든 형수와 여자 조카는 이 집에서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우리 딸, 씩씩하게 잘했다.”
엄마는 그녀가 친척들에게 예의 없는 년으로 어떤 모욕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엄마의 청력이 이제 거의 제기능을 하지 못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잠을 잘 잤다. 그녀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