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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나를피하기시작했다

by 천경득

청와대를 퇴직하고 골프를 늦게 시작했다.

결정적 계기는 대학동기 김*철 변호사였다. 앞으로 영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골프를 배워야 한다면서, 배우라고 말만 하던 친구들과는 달리, 머리 올릴 날을 잡아주고 드라이버와 아이언세트, 퍼터에 골프백까지 사 주었다.


소식을 들은 김종* 형은 공식적인 머리 올릴 날을 대비한 연습 라운딩을 준비해 주었다. 그는 쫀쫀한 내기를 해 봐야 실력이 는다면서 홀당 핸디를 1개씩 잡아주고 소위 스크래치를 하게 했다. 그날 어마어마한 돈을 잃었다.(후일 강력하게 어필을 했더니, 기억을 못 한다고 주장함.)


절치부심하여 그때까지 골프를 않고 있던 윤*훈과 이진*를 구슬려 입문하게 했다. 그런데 이들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나처럼 막무가내로 시작하지 않고, 6개월 내외의 충분한 레슨을 받고서 필드에 나왔다. 탁 트인 광야에서 뽀송뽀송한 잔디를 밟는 상쾌함으로 강권했지만, 유혹되지 않았다. 그들은 단 하루도 내 도시락 역할을 해 주지 않았다.


도시락 역할을 해 줄 이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쫀쫀한 내기를 할 수가 없었고, 늘 뽑기만 했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백돌이에 머물고 있고, 윤*훈과 이진*은 요즘 80대를 친다.


기관에 근무할 때다. 새로 온 원장이 본부장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50살 넘은 아저씨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가 두 가지밖에 없다. 골프 아니면 넷플릭스. 원장은 전날 라운딩에서 겪은 비매너 동반자를 강하게 비난했다.


“언덕에 공이 있으면 거기서 치든지, 꺼내놓고 치려면 벌타 하나를 먹어야지. 따블인데, 캐디에게 보기라고 하더라고. 다시는 그 사람과 못 치겠어.”


내가 그랬다.

“그렇게 치면 나는 전 홀 양파인데요. 백돌이도 퍼터는 해 봐야죠. 비싼 돈 주고 갔는데.”


원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천 감사 들으라고 한 얘기는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단체 라운딩이 있을 때 나랑은 같은 조로 묶인 적이 없었다. 동석했던 비서실장(조 편성자)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는데, 곧 승진했다. 다음 비서실장에게도 승진의 비기가 전해졌을 것이다.


백돌이는 피곤하다. 라운딩 내내 뛰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야 한다. 카트를 탈 여유가 없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막대하다. 그늘집에서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으면 후반에는 채를 들 힘도 없어진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속담처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백돌이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휙, 슬라이스가 걸려서 공이 언덕으로 간다. 혼자 뒤에 쳐져 언덕배기에서 수풀을 헤치고 있는데, 멀리서 외침이 들린다.

“야, 수풀이 길어서 못 찾아. 그냥 평평한 데 두고 하나 더 쳐. 무벌타로 해 줄게.”

“네~~”

(아, 씨발, 타이틀리스트 쌔 공이란 말이야.)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백돌이도 이따금 새 공을 치고 싶단 말이다.


요즘은 라운딩을 가자고 하면(백돌이에게 가자고 하는 사람도 없다) 동반자가 누구인지 먼저 물어보게 된다. 백돌이가 안 끼면 너무 부담스럽다. 즐거움이 아니라, 노동의 시간이 된다. 그나마 윤이나 김이 고만고만할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는 윤과 김도 나를 피한다.


그러다가 마련한 최후의 대책이 김미* 변호사였다. 김을 끼우면 나름 경쟁이 가능하다. 편안하다. 김이 먼저 치고 나면 그 샷을 보면서 방향을 잡고 그 자리에 올라간다. 그렇게 최근 두 번을 쳤는데, 첫 번째에는 내가 10만 원을 잃었지만, 두 번째는 칼을 간 덕분에 시원하게 복수를 해 주었다. 김은 나랑 거리가 비슷하다.


지난주 라운딩 기회가 있어서 김에게 전화를 했더니, ‘시어머니’ 생신이어 시간이 안 된다면서 나를 피했다. 그런 마음은 아니었겠지만, 나의 자격지심이 그렇게 느끼게 했다. 비굴했다.

남편인 박종* 변호사에게 전화해서, 당신 어머니 생신이 언제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아, 나를 피하지 말아 줘. 앞으로는 레이디 티 말고, 시니어 티에서 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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