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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레드(RED) 컴플렉스>

by 천경득


그때는 모두 文靑이거나, 헐리우드 키드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에 관한 토론으로 밤을 새웠다.(존 롤스의 ‘정의론’처럼 실제 읽어 본 사람이 드물었고, 읽고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떠드는 놈들만 떠들었다. 떠드는 넘들은 모든 주제에 대해서 떠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골방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란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같은 좇도 재미없는 영화를 보느라, ‘쥬라기공원’이나 ‘쇼생크탈출’, ‘레옹’, ‘라이온 킹’ 같은 걸작을 큰 스크린에서 못 보고, 뒷날 방구석 텔레비전으로 보게 만든 허영의 시간이었다. 늘 그러하듯 그때는 그런 애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평론가 등등이 있었다. 어떤 놈의 이름은 지금도 기억난다. 이히이.


키에슬로프스키의 3부작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블루, 화이트, 레드. 프랑스 국기 삼색이라나?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쯀리엣 비노쉬(블루), 쯀리 델피(화이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다 봤지만, 나는 이제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톰 크루즈만 기억이 난다.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다.


‘레드’의 여주 이름이 이렌느 야곱이다. 나는 쯀리엣 비노쉬나 쯀리 델피보다 이렌느 야곱이 좋았지만, ‘레드’가 좋다고 말하지 못했다. 삼부작 중 ‘레드’까지 본 사람이 없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3부작을 다 보기 위해서는 인내력이 필요했다.


나는 얼굴도 못 생겼고, 비쩍 말라서 슈츠를 입어도 소위 테가 안 난다. 그래서 패션의 포인트를 나름 넥타이로 삼았었는데, 박그네가 빨간 당을 만들고 나서는 빨간색 계열의 넥타이를 멜 수가 없었다. 나는 빨강 계열의 넥타이가 잘 어울린다. 빨강, 핑크, 오렌지색. 페르가모의 독특한 넥타이들. 맨날 칙칙한 블루 계열의 넥타이만 메야하는 시대적 상황이 싫었다. 여주인공이 아닌 색깔로 사람의 성향을 구분하는 세상이 싫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단연 강**변호사다. 나보다 10살이 많은데, 같은 학번으로, 사법시험을 같이 공부해서, 같이 합격했다. 연수원을 함께 다녔고, 수료 후 같이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했다. 나는 닭날개만 안 먹는데 반해서, 이 형은 닭을 안 먹는다. 20살 넘어 공부하겠다고 야반도주를 했다가, 양계장에서 일을 했는데, 치킨만 보면 지금도 그때의 닭 똥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 형이 십 수년 동안 내게 강요 내지 사정 비슷하게 한 얘기가 딱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당 다녀라, 다른 하나는 골프 배워라이다. 덕분에 나는 2016년에 세례를 받았지만, 골프는 그 뒤로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20년에 골프를 처음 시작했다.


“아, 씨발, 진작 좀 배우라고 하지. 하느님보다 훨씬 낫구먼.”


"..."


내가 백돌이로 겪은 설움에 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겠다. 할 얘기도, 쳐 죽일 인간들도 너무 많다. 백돌이랑 스크레치를 해서 백만 원이나 따 먹는 게 인간이 할 행위인가.


다시금 얘기하지만 나는 비쩍 말랐다. 그래서 몸에 맞는 옷을 찾기가 힘들다. 우연히 데상트에서 옷을 한 벌 샀다. 몸에 딱 맞는다.


“야, 너 고위공직자 출신이.. 때가 어느 때인데, 일본 브랜드를 처 입고 오냐!”


2020년이었다.


데상트가 일본 브랜드여서 그런 건지, 작은 사이즈가 내 몸에 맞았지만, 그 후로 데상트는 사지 않는다.


친애하는 최민희 의원의 지역구에 있는 남양주 아웃렛에서 RED 티셔츠를 하나 샀다. 나이키다. 차이나 컬러인데, 맞춤처럼 몸에 딱 떨어진다.


캐디 언니가 묻는다. 세컨드는요? 어프로치는요?


“5번 유틸리티만 주시면 돼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백돌이는 7번 아이언 하나면 족하다. 50미터부터 150미터까지 7번 하나면 된다.(엣지에서도 가능함.) 나에게는 그게 5번 유틸리티다.


나는 드라이버랑, 퍼터, 5번 유틸리티 등 3개면 충분하지만, 폼으로 이것저것 다 들고 다닌다. 무시를 안 당하기 위해서 비닐은 다 뜯었다.


그날 라운딩을 마치고, 팁 1만 원 더 해서 캐디피를 줬을 때, 캐디 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간색 입고 다니지 마세요. 타이거 우즈인 줄 알아요.”


팁에 대한 대가였다. 충언은 쓰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