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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런, Gold체인목걸이 그리고 롤렉스

by 천경득


형들과 2차로 치킨 가게에 가면 불편하다. 아무 생각 없이 먼저 ‘닭다리’를 뜯고 있으면 “씨발, 어린놈이...” 라며 핀잔을 주고, 맥주만 홀짝거리고 있으면 “안주도 좀 먹어. 그러니까 살이 안 찌지 새끼야.” 라며 눈치를 준다.


나는 ‘닭날개’를 먹지 않는다. 나는 날지 못하는 새의 날개를 먹지 않는다. 닭의 운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나는 새인가, 아닌가.’ 수만 년 간 이어져 온 닭들의 존재론적 고민. 실수로 닭날개를 하나 먹었을 경우에는 반드시 다른 날개를 찾아서 짝수로만 먹는다.


사법시험 준비를 막 시작하던 즈음 어떤 선배가 그랬다. “야, 절대 닭날개는 먹지 마. 날개 먹으면 시험 떨어져. 그리고 먹더라도 꼭 두 짝을 다 먹어. 한 날개로 퍼덕거리면 10cm도 못 날아.”


선배의 조언 덕에 나는 사법시험에 꽤 빨리, 쉽게 합격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오 모, 윤 모와 회사 근처 호프집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닭다리’를 뜯으며 달래고 있었다. 닭다리만 골라 먹는 게 겸연쩍어서 닭날개를 안 먹는 이유에 관해 주절주절 거렸다. 물론 어이없다는 듯한 비웃음. 그냥 처먹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하면 철학적 사고가 안 되는 자들이 있다. Birds는 ‘fly’이고, Chicken은 왜 ‘Run’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옆 테이블에서 작은 소란이 일고 있었다. 곧 몸싸움이 벌어질 태세였다. 두어 명의 젊은이가 순금(색깔) 체인형 목걸이가 드러나는 반팔 면티를 입고 있었다. “나, ‘생활’ 좀 한 사람이야.”


그때 우리는 몸가짐을 정말 조심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리를 파하고 일어설 준비를 했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오 모가 의자에 걸쳐져 있던 가방을 가슴팍으로 가지고 와 조신하게 일어섰다. 가방을 어깨너머로 둘러메다가 옆 사람에게 닿아 시비가 붙으면 큰 일이니까. 도둑고양이처럼 자리를 파하고, 호프집 앞에서 셋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픈 미소를 지었다. 이심전심.


시시비비 불문하고, 물의를 일으키면 짤린다. 그것이 당시 회사 인사 책임자의 방침이었다. 정의롭지 않은 한 때였다. 그 회사는 그랬다.


덥다. 너무나 덥다. 이 더위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에어컨’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여름이다. 현대식 에어컨은 1902년 미국 사람 윌리스 캐리어가 발명했다. 에어컨의 대명사가 ‘캐리어’인 이유. 위대한 아메리칸.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더위다. 더위에 미쳐 땡볕 오후 2시에 시작하는 라운딩을 위해 클럽하우스에 모여 점심을 먹는다.


딱 벌어진 어깨에 알록달록한 바지를 입고, 모자를 삐딱하게 깍두기 머리 위에 살짝 얹은 한 청년이 내 뒤를 지나가며 살짝 부딪쳤다. 골프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가방을 집기 위해서 허리를 숙이자 굵은 체인 금목걸이가 찰랑거린다. 10냥은 족할 번쩍거리는 금팔찌를 차고 있다. 나는 상대방이 사과의 말을 할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옆 자리에 앉은 동반자가 말했다.


“깡패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이 더위에 골프장에서 무슨 금목걸이, 금팔찌를 저렇게... 저거 진짜 금 맞아?”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위한 변명을 했다. “아니야. 니가 ‘생활’을 몰라서 그래. 생활하는 사람들은 뭐 하나 걸려서 갑자기 튀게 되면 현금을 챙길 틈도 없고 신용카드를 쓸 수 없으니까 저 금목걸이, 금팔찌를 팔아서 도망 다니는 자금으로 쓰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 마. 네가 차고 있는 거 롤렉스 익스플로러잖아. 스틸이지만, 그거 당근에 팔아도 1천만 원은 되잖아. 차라리 롤렉스를 차고 다니지, 무슨 금딱지 목걸이냐.”


변호사의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동대문 도깨비시장에서 10만 원 주고 산 짝퉁 롤렉스를 차고 있어도 사람들은 이것이 진짜인지 묻지 않는다. 나는 롤렉스를 골프장에 차고 갈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다. 기스라도 나는 경우가 생기면 수선비는 아이폰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 롤렉스는 늘 박스 안에 고이 간직되고 있다. 롤렉스는 차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1번 홀 티샷.


“뽑으실래요?”


“아니요. 우리 명랑골퍼들. 빽 순서대로 할게요.”


Don’t head up!!!!


머리 고정.


공을 끝까지 본다. 공, 공, 꽁.


슈우웅∼, 해냈다!


헤드 정가운데 맞췄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반반공이 알록달록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나무 티도 공을 좇아 날아간다.


어쩌나. 너무 힘찬 스윙에 브레이슬릿과 시계 본체를 연결하는 스프링바가 빠져버린 어설픈 내 동대문표 스틸 익스플로러도 날아간다.


어제, 고관대작이 즐비한 국제 행사장에서 대통령 부인의 모조품 반앤클리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끈이 끊어져, 바닥에 떨어진 가짜 다이아몬드가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는 광경을 상상했다.


부끄러움은 바라보는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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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