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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방위

by 천경득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말랐다. 비쩍 말랐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몸무게를 3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 키가 클수록 더 말라갔다. 다행히 어느 순간 키가 멈추었으니 망정이지, 자칫 젓가락이 될 수도 있었다. 젊었을 때는 상당한 스트레스여서 목욕탕도 안 갔고, 왜소함을 감추기 위해서 요즘처럼 쪄 죽는 날에도 재킷을 입고 다녔다. 하지만 진실은 낭중지추 같은 것이어서 감추어지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PT도 받아보고, 단백질 셰이크도 먹어보고, 염소뿐만 아니라 개소주, 자라, 배암까지 먹어봤지만 살은 쪄주지 않았다.


쉰 살이 넘고 보니 오히려 장점도 있다. 무게가 안 나가니 무릎이나 발목이 아직은 멀쩡하고, 러닝이나 등산에 무리가 없다. 문제라면 장점을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이다.

“어머머, 내 살을 좀 떼줄 수 있으면 좋겠다. 부러워.”

“넌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지? 난 물만 먹어도 찌는데. 부러워.”

어이, 아자씨, 칼 한 접시 주문이요. 샤일록처럼 학 씨 허벅지를 잘라서 구워 먹어 버릴까 보다.


예의 없이 몸무게가 얼마 나가는지를 직접 묻는 자도 있다. 대충 55kg이라고 답하지만, 사실 55kg까지 가 본 적은 없다. 내 소망일 뿐이다. 100kg 가까이의 여성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녀의 스트레스와 내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몸무게 덕분에 나는 어쩌다 마지막 방위가 되었다.

사실 내가 신검을 받을 때에는 더 이상 방위병을 뽑지 않았다. 현역 아니면 면제였다. 나는 저체중으로 3급이었다. 어쩌면 조금만 노력했으면 면제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국가의 아들이 되기로 했었다.


당시 나는 경남 마산의 자원이었는데, 막상 방위병 제도를 없애기로 하고 보니 후방 부대에는 방위병을 대체할 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방위병이 하던 ‘잡일’을 할 병력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존 3급 중 일부를 방위병으로 전환시켜서 방위병 제도를 1년 더 운용하기로 했었는데, 내가 거기에 당첨된 것이었다.

한때 고위공무원으로 인사검증을 받을 때 내심 이 부분을 걱정했었다. 혹시 병역비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나라가 하는 일은 대부분 이렇게 어설프다.

(나중에 있을지 모르는 청문회를 대비해서, 당시 함께 방위병으로 전환된 성격이 별로인 친구와 아직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음.)


마산고속버스터미널의 TMO에서 근무를 했다고 하면 웃겠지만, 18개월 간의 내 방위 생활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공감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니,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겠다.


한참 골프를 안 하다가, 몇 주 전에 김ㅇㅇ형과 원더클럽에서 라운딩을 했다.

드라이버가 훅 아니면 슬라이스.

“너 부업으로 골프장에서 꽁 주우러 다니냐? 로스트볼 장사혀?”

홀마다 공을 잃어버렸다. 전부 쌔 공.

“너, 그립이 잘 못 되었어. 오른손을 권총 잡듯이 잡아.”

참견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구찌다. 나도 알아.

여전히 슬라이스다.

“권총 잡듯이 잡으라니까. 그립이 엉터리잖아, 등신아.”


“이 씨발, 나 방위라니까. 권총 안 잡아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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