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며 음양오행 생각하기
2020년의 가을은 화성과 목성과 토성을 밤하늘에서 매일 확인하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해가 지고 나면 서쪽 하늘에서 화성이 떠오른다. 화성은 태양과 지구와 함께 일직선 상에 놓일 때 가장 밝게 빛난다고 한다. 화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보통 687일이 걸리니, 약 26개월마다 일직선이 되는데, 이번 가을이 그랬다. 이런 시기에는 거대한 목성보다 화성이 더 밝게 빛난다. 지구 반대편의 거대한 태양 빛을 반사해내는 내 눈 앞의 화성은 글자 뜻 그대로 붉은빛으로 보였다. 붉게 빛나는 화성을 가만히 오랫동안 바라보며 내 마음의 촛불도 활활 타오르기를 기원했다.
오늘은 민지씨가 마감 때문에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해야 했다. 나도 사무실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덩달아 덜 깬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절기인 소설(小雪)을 지나고 나니 역시 차량의 지붕에도 허옇게 서리가 자라났다.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생각하며 마당에 나가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인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선명한 북두칠성. '와 이 시간에도 별이 참 많구나.’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살쾡이자리, 그리고 오리온자리도 힘차게 빛을 내고 있었다. 조금 더 시선을 옮겨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바로 그것이 떠 있었다. 너무도 밝게, 마치 UFO가 아닐까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강렬한 빛을 반사하고 있는 금성이었다. 새벽에 일어날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참 오래간만에, 금성을 실물로 영접했던 것이다.
겨울 새벽하늘의 금성은 지난가을의 화성이나 목성보다 더욱 밝게 빛났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마음에 그 빛이 보일 정도로 강렬했다. 금성은 동양의 음양오행 철학에서 가을과 결실을 의미하는 금(金)의 기운을 상징한다. 싹이 트고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는, 생명 에너지의 발생/발산을 의미하는 목화(木火) 양(陽)의 단계가 끝나고 나면 음(陰)의 기운인 금수(金水)가 힘을 얻는다. 가을(金)이 되면 생명 에너지는 발산이 아닌 수렴의 운동을 시작한다.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내부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생명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씨앗과 열매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겨울(水)이 되면 생명 에너지는 지상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인간의 죽음처럼 땅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물질을 만들어 내는 기운이기에 금(金)은 바위나 보석, 금속성, 씨앗과 같이 현실적이고 단단하다. 새벽 서쪽 하늘의 밝은 금성을 보고 나니, 지난 한 주 동안 몸과 마음에 쌓인 거친 사기(邪氣)가 씻겨 내려가고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요 며칠이 그랬다. 명상을 하며 앉아있는 곳의 공간감이나 자아 경계가 거대하게 확장되는 경험 이후로 오히려 무엇에도 집중이 되지 않는 현상이 지속됐다. 책을 읽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명상도 도무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겠는 것이다. 마치 깊은 산속 바위틈을 지나며 깨끗하게 정화된 샘물을 한 모금 마신 것처럼, 금성을 바라보고 나도 정화되었다. 옛 선인들이 말한 음양오행의 金生水, 즉 금은 수를 맑고 힘 있게 한다는 이치가 이런 것일까?
출근길에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리듯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공기와 하늘은 너무도 맑았다. 그만큼 햇빛은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진다. 고요한 새벽,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잠깐 바라본 금성의 기운 덕분이었을까. 새로운 봄을 맞이 하는 것처럼, 내 몸과 마음도 새롭게 시작되었다. 늘 걸어가는 아침의 거리도 왜인지 새롭다. 오늘 나는 맑고 새롭다. 금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