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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세계 파괴기

허술한 경계 시리즈 - 종교와 세계관

by 천피터


내가 태어나 성장한 환경은 상당히 종교적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교회에서 신비로운 성령체험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그 후로 온 집안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할머니를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기독교의 옷을 입고 있는 일종의 무속인 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다. 할머니는 내가 누워있을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는 ‘허~이! 할렐루야!’ 라고 외치며 자주 기도를 해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할머니가 ‘신의 뜻’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속마음을 들킬까 봐 할머니가 손을 얹을 때마다 흠칫 놀라며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소위 기도빨, 영력이 좋았던 전성기 시절에는 할머니에게 상담과 기도를 받기 위해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도 한다. 개인의 뜻인지 신의 뜻인지 알 길 없는 할머니의 신비한 종교적 힘은 실제로 집안 내에서 막강하게 행사되고는 했다. 마치 고대 수렵채집 사회에서 종교와 정치권력이 일치했던 것처럼 말이다. 신의 뜻이라는데 누가 거부할 수 있었을까.


우리 집안의 족장 할머니는 당시 태안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던 나를 굳이 자신의 대전집으로 데려가서는 교회 부속 유치원에 입학시켰다. 그러니까 종교를 위해 일종의 조기유학을 당해버린 격이다. 그 후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까지 꽤 오랜 기간 동요와 구현동화와 예배의식을 통해 기독교 경전의 이야기들이 주입됐다. 백지와 같았던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플레이된 레퍼토리는 나로 하여금 세계에 대한 아주 명확한 관점을 형성하도록 촘촘히 베어 들어왔던 것 같다. 세계의 시작과 끝에 대해, 삶과 존재에 대해 이미 완결되어 있는 온전한 내러티브는 마치 따뜻한 요람처럼 나를 취하게 했다.


나의 첫 세계는 그렇게 신과 함께, 신을 중심으로 표상되었다. 신이 창조한, 신이 만든 질서로 운영되는 단일한 세계로서 말이다. 선과 악이 대립하는 세계, 악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계, 그러한 세계 외에는 다른 어떤 세계도 존재할 수 없는 세계… 이 세계 안에서 인간은 신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늘 기도하고 헌신해야 했다. 획일성만이 존재하는 곳에는 의심이 자리할 수는 없는 법. 의심은 이곳에서 그 자체로 ‘죄’다. 오직 열렬한 믿음만이 허용되는 세계 안에서 안정화된 질서를 거부하는 자는 악으로 여겨진다.


“마귀의 계략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하십시오. 우리는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이 어두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인 마귀들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11-12 / 현대인의 성경


청소년 시절 본격적으로 진로를 고민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성직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 나에게 교회는 단순히 종교시설이 아닌 일종의 ‘대안 공간’이었던 것 같다. 학교라는 환경과 시스템에 적응을 잘 못했던 나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많았던 것 같다. 좋은 성적을 내고 싶지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았던 나에게 ‘종교인’은 꽤 익숙하기도 하고 매력적인 직업으로 다가왔다. 당시 꽤나 굳건했던 종교적 신념과도 잘 들어맞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내가 학교와 사회에 대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인식과, 그래서 교회를 일종의 탈출구로 여기게 된 것이, 교회 밖을 ‘악’으로 가득 찬 환경으로 인식하는 학습된 교리(도그마)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본질적 차원에 이미 내재된 반골기질이 있었기 때문인지 당시에는 구분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지금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아마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더라도 비슷한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스물세 살이 되어서야 ‘기독교’라는 일종의 색-안경이 머리에 씌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몇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우연히 수강한 ‘기독교학과’ 수업이 첫 계기를 만들어줬다. 독일에서 진보적인 신학을 연구한 교수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수는 신이 아닌 인간이고, 성경에 수록된 많은 이야기들은 신화다’는 꽤나 충격적인 내용의 강의를 해주셨다.


당시 강의 내용에 대해 여러 기독교학과 학생들이 항의를 했고, 나 또한 에세이 시험에서 교수님의 관점이 왜 참이 아닌지 주장하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격분하며 들었던 강의가 아이러니하게도 의심 없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사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있고, 전혀 새로운 관점도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종강 후에 그 교수님은 진리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잘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두 번째 계기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줬다. 강의를 들었던 그 해의 어느 날, 서점에서 ‘주여,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을 수 있게 도우소서’라고 기도하며 뽑기 하듯 들어 올린 책, M.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었다. 이 책의 3부 ‘성장과 종교’에서 읽은 ‘종교는 세계관이다’라는 문장은 오랜 기간 단단하게 굳어있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망치가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그것이 제한적이거나 원시적이거나 혹은 부정확하다 할지라도 인간이면 누구나 어떠한 세계관을 갖고 있으므로 누구나 종교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따라서 믿는 경향이 있으며, 어린 시절 자아 형성 과정에서 들었던 세계의 본질을 그대로 진리라고 받아들인다……즉, 세계의 본질에 대한 배움은 자라면서 가족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우리는 낡은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회의하며, 두렵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이전에 배워 소중히 간직해 온 가치관에 과감히 반기를 듦으로써 영적 성장을 시작한다.

성스러움으로 가는 길은 ‘모든 것’을 회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우리가 부모의 종교에 반항하고 거부해야 하는 이유는 그 세계관이 우리가 능력껏 성취할 수 있는 세계관보다 더 좁기 때문이다……종교는 철저하게 개인적이어야만 한다. 이 말은 현실이라는 가혹한 시련을 경험하면서 불처럼 타오르는 회의와 의문을 통해 빚어지고 굳어진 개인적인 것이라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갖고 있던 세계관이 유일한 진리가 아닌, 여러 관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충격을 주었다. 또한, 그동안 당연히 그러하다고 여겼던 이 세계상(象)이 태어나 자란 환경과 문화에 의해 일종의 유전된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했다. 이즈음 내가 안정적으로 형성form될 수 있게 경계, 틀frame로서 품어준 세계는 완전히 깨져버렸다.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게 된 나는 난생처음 벌거벗은 것 같은 날것의 상태로 틀 밖의 세계를 마주했다.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제공해 주던 ‘신’이 사라진 세계, 그 속에서 이유 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은 불안과 공포로 다가왔다. 실존적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으로 유명한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역사학자 로캉탱 또한 실존적 위기를 경험했다. 도서관에서 18세기 프랑스 혁명기 인물들의 전기를 정리는 일을 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물가에서 물수제비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흉내를 내려고 돌을 집는 순간 구역질 같은 것을 느꼈다. 이후로 이 구역질은 시도 때도 없이 엄습했는데, 그의 손이 닿거나 눈길만 주어도 일어나는 이상한 감각은 떠날 줄 모르고, 강력한 증오감과 함께 ‘구토’를 동반했다. 로캉탱은 문득 공원 벤치에 앉아 마로니에 나무를 바라보다가 드디어 구토증의 의미를 깨닫는다. 구토는 바로 의미와 본질이 사라져 무질서한, 존재의 이유가 주어지지 않은 ‘현존재의 존재 자체’의 맛이었다.


그것은 이유도 없이 존재하고 있는 존재물의 맛이란 것이었다……구토란 인간이나 사물의 언어에 의해 성립되는 의미나 본질을 박탈당하고 괴물처럼 흐물흐물한 무질서의 덩어리였다. 또는 무섭고 음탕한 벌거숭이의 덩어리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언어 이전의 체계였고, 세계를 체험한 본질의 것이었다.

그가 드디어 생각해 낸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은 전혀 존재 이유를 가지지 않고, 또 존재의 의지조차 가지지 않은 채 단지 사실상 우연히 거기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 즉 하나의 '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도 이러한 생명체인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실존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경우는 구토가 아닌 신으로부터 버려져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꽤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명확한 방향성이 사라져 버려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는 참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여덟 개의 사직서를 써야 했고, 그 후로 소속 없이 자유롭게 살아보겠다 선언하며 시작한 마을활동은 4년 만에 아파트 재건축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다시 비영리 단체에 취업해 일을 해보다가, 또 여차저차한 일로 퇴사하고, 참 인생 더럽게 안 풀린다는 생각이 들 무렵 사주명리학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탈-기독교를 선언한 지 10년 만에, 돌고 돌아 동양적 사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 하다.


물론 지금은 더 이상 지옥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다. 천국과 지옥,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이 음양이라는 개념을 통해 통합을 이야기하는 동양사상을 공부하며 많이 옅어진 덕분이다. 올해로 딱 40살이 되었다. 만으로 불혹이다. 미혹되지 않는다는 나이인데, 그럼에도 삶이라는 것은 여전히 고장 난 나침반을 보며 가듯 갈팡질팡하다. 만약, 그때 조금 많이 의심하긴 했지만 회개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갔더라면, 지금 즈음의 내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나름 많은 고뇌를 했었기 때문에 어쩌면 ‘마블(Marvel)의 세계관’처럼 수많은 다중우주(multiverse)가 2008년을 기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목사님이 되어 있는 나, 음악활동에 전념해 전업예술가가 되어 있는 나, 혹은 작은 광고회사를 계속 다니다가 좋은 회사로 이직한 나? 어쩌면 익숙한 문화와 환경 안에서 별다른 부침 없이 살 수 있었을지 모를 옛-틀을 벗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그것은 이제 유아용 재킷처럼 너무 작고 헤어져 다시 입을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처럼, 삶은 정해져 있지 않은 어두운 길을 이리저리 부딪히며 그럼에도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신이 사라진 거대한 싱크홀에 피할 수 없는 실존적 불안이 채워진 것은 불행한 사고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구원일지 모르겠다. 주어진 의미가 없다는 것, 정해진 길이 없다는 것은 자유다. 불안은 자유와 함께 맞물려 존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스스로를 던지는, 기투(企投, project)하는 존재로서 목적과 의미를 스스로 창조한다. 신과의 결별을 선언한 인간은 지상의 신으로서 변태(變態, metamorphosis)되어 신의 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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