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짓는 나의 세계

공연장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

by 가가


지난 글에서는 물리적인 공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오늘은 공연장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야기하겠지만, 내가 대학로 작품에 빠진 이유에는 가까운 거리감도 크게 작용했다.


건축학도인 나에게 공간은 늘 '효율'과 '구조'의 영역이었다. 비좁은 공간과 통로는 위험하며 비효율적이니 수정해오라. 이건 하나의 법칙과도 같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중소극장의 밀폐된 공간에서만큼은 이 물리적인 법칙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예상치 못한 친근함이 자리 잡는다. 좁은 로비에 다닥다닥 붙어서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앞줄에 앉는 날이면 배우들의 작은 발소리, 숨소리, 땀과 눈물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운 무대의 물리적인 거리감. 그렇게 10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인물들을 가까이에서 집중해 보고 있다 보면 무대라는 아주 작은 대지 위에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거대한 세계가 설계되기 시작한다.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

건축에서 좋은 도면이란 다양한 사용자의 동선을 배려한 도면이다. 뮤지컬을 통해 타인의 삶을 마주하는 과정 또한 이와 같다. 무대 위 인물들의 고통과 환희를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의 평면도에는 그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웃의 자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세상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는 비로소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살아갈수록 나는 인간관계에서 알게 모르게 나만의 선을 긋고 있었다. 나와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슬쩍 거리를 두고, 이해하기 벅찬 사정은 굳이 머리 아프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넓은 관계의 선택권이 생길 줄 알았지만, 사실 나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더 좁고 단단한 감옥을 짓고 있던 것이다.


그런 나를 흔들어 깨운 게 바로 소극장의 가까운 거리감이었다. 무대 위 인물의 숨소리와 눈물, 땀방울이 관객석의 나에게 선명하게 들리고 보이는 그 좁은 공간에서 내가 그어놓은 선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그곳에서 나는 사회가 흔히 외면하는 목소리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는 저마다의 빈틈을 안은 이들이 등장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정체성의 틀 밖에서 치열하게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이들, 또는 숨기는 이들. 신체적 한계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이들, 세상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학교와 사회로부터 포기당한 이들까지. 예전의 나라면 그들을 '나와는 다른 처지의 사람' 혹은 '도와줘야 할 약자'로 정의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숨소리조차 공유하는 그 짧은 물리적 거리 안에서 그들이 가진 결핍은 사실 내가 애써 외면하며 숨겨온 나의 조각들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벽해 보이고 싶다는 강박,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다는 갈망,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고 싶다는 근원적 외로움까지. 무대 위 인물들이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낼 때 내 마음속 벽이 천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가거나, 걸어온 길을 잠시 뒤돌아보고 그대로 나아가거나, 더 이상 나아가지 않기도 했다. 모든 선택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고 정답은 없었다. 이게 참 위로가 되었다. 타인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함께 맞대어보는 일 자체로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은 내가 앞으로 어떤 공간을 짓든, 그 중심에 언제나 사람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야기의 전달자, 배우

그렇게 무대 위 캐릭터를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속에는 이 모든 이야기를 전달해 낸 배우가 있다. 공연이 나에게 준 또 다른 힘은 배역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배우들의 뜨거운 생명력이었다. 모든 순간들을 몰입하며 집중하는 배우들에게서는 빛이 났다. 반짝반짝, 마치 정말 그 캐릭터로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온 듯 뿜어내는 빛.


건축가는 결과물인 '건물'로서 자신을 증명한다. 사람들은 잘 지어진 건물을 보고 감탄하지만, 그 건물을 지은 건축가의 고뇌나 얼굴까지 기억해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가는 결과물 뒤에 숨겨진 존재지만 무대 위 배우들은 자기 자신을 도구 삼아 예술을 짓는다. 배우의 몸짓과 목소리, 그 자체가 결과물이 되어 관객들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하지만 그렇기에 고통스러운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임을 안다. 저들도 각자의 배역이 되기 위해 겪은 처절한 시간들은 나의 것과 닮아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빛은, 결코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처절함'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여정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무대 위에서 증명해 내는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그들을 지켜보며 나 역시 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임을 잊지 않고 싶다. 익숙하지 않았던 대사와 몸짓들이 어느 순간 나의 것인 듯 내 안에서 살아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표지사진: 251221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커튼콜데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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