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로 남거나 기억 속에 남거나

공연장에 대한 이야기

by 가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찰나의 예술

건축학도인 나에게 공간은 늘 '영원'을 요구하는 대상이었다. 내가 긋는 도면 위의 선 하나는 콘크리트와 철근이 되어 수십 년을 버텨낼 것이라는 책임감, 그리고 수정하려면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견고함은 과제를 하는 내내 공포에 가까운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건축이 중력에 저항하며 땅에 뿌리내리는 예술이라면, 공연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2시간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찰나의 예술'이다. 대학로에는 특정 시간만 되면 수십 개의 세상이 피어난다는 말을 그래서 참 좋아한다. 건축이 한자리에 오래도록 남는 실체라면, 공연은 매일 밤 같은 무대 위에 지어지고 커튼콜과 함께 철거되는 한시적인 공간이다. 캐스팅과 배우의 애드리브에 따라 감정의 밀도가 매번 달라지는 이 가변적인 공간 속에서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은 저서 <빈 공간>에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빈 무대가 될 수 있다. 누군가 이 빈 공간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다른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연극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물리적 실체가 없어도 배우가 무대에서 "넘실대는 저 파도를 봐!"라고 내뱉는 순간 그곳은 바다가 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관객과 배우는 가장 낭만적인 약속을 맺는다. 잠깐의 암전 속에서 무대 위는 시시각각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관객의 시선으로 담아낸 그 찰나들이 모여 공연이 되고, 개인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 무대 위에서 공간의 한계는 영원히 사라진다는 점, 이 점이 참 사랑스러운 것 같다.



안전하게 울 수 있는 공간

이 찰나의 공간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마음껏 울 수 있는 권리'였다. 왜 나는 집보다 극장에서 더 솔직하게 울 수 있었을까.


나에게 눈물은 어쩐지 어색한 존재였다. 가족과 함께 슬픈 다큐멘터리를 보든, 같은 반 친구가 전학을 갈 때든, 크리틱을 받고 문득 서러워졌을 때든. 나는 애써 센 척하며 늘 눈물을 삼키고는 했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왠지 내 밑바닥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이 계속되니 문득 슬퍼질 때 길바닥에서 우는 것은 절대 못하고, 기껏해야 혼자 있을 때 베개를 손수건 삼아 숨죽여 우는 것이 전부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울지 않는 자아를 연기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온전한 어둠을 가질 수 없었고, 그것은 곧 내 슬픔을 어디에서도 노출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객석의 조도가 0에 가깝게 떨어지는 순간, 나와 타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다. 극장의 어둠은 단순한 조명의 소거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격리해 주는 '시각적 방음벽'이었다. 완벽한 암전 속에서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안전하게 무너질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소리의 영역이다. 현실에서는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걱정과 부담의 대상이 되지만, 극장에서는 다르다. 공연의 감정이 심화될수록 객석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소리들은 나에게 "울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공감의 신호가 된다. 배우의 오열과 관객의 훌쩍임이 섞여 공기 중으로 퍼질 때, 그 소리들은 튀는 소음이 아닌 공간을 완성하는 배경음으로 스며든다. 극장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가 눈물을 숨기고픈 나를 위한 안전한 공간이 되는 순간이다.


공연을 보다 보면 각자의 오열극을 하나씩 품게 되는데, 나는 <라흐헤스트>라는 공연이 그러했다. 극 중 동림과 향안이라는 인물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 결국 내가 듣고 싶었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는 위로였음을 깨달은 순간, 댐이 무너지듯 눈물이 났다. 갖고 있던 휴지가 모자라서 옷소매까지 흠뻑 적시고 나왔다. 멋쩍은 기분으로 로비로 나왔는데 나 같은 사람이 여럿 보이고, 계단을 올라가며 어떤 사람은 “내 자리 쪽 줄에 있던 사람들 다 울더라.”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그냥 그럴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슬프면 울고 그런 거지 뭐.


그동안 내 슬픔을 전시할 공간도, 숨길 공간도 없어서 울지 못했다. 하지만 극장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는 나에게 안전한 어둠을 내어주었다. 조명이 꺼지면, 나는 비로소 사회적이고 약한 자아를 내려놓고 100%의 온전한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 펑펑 울고 나올 때 느껴지는 차가운 바깥공기는 더없이 시원하다. 그렇게 나는 극장에 무너지러 갔다가, 다시 나를 지탱할 견고한 성을 쌓아 세상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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