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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 Apr 27. 2024

[디올디깅북] 디올 vs 샤넬, 당신의 선택은?

디올 브랜드의 시작


종종 디올과 샤넬은 동일한 비교선상에 오르곤 한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브랜드라는 점과 창립 디자이너가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 속히 말하는 명품 피라미드에서 동일 군에 속한다는 것까지. 언뜻 보기엔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이는 이 두 브랜드는 사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뼛속까지 달랐다. 사실 코코 샤넬은 크리스찬 디올을 싫어하기까지 했다. 내가 디올을 생각할 때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인 샤넬과의 비교로 첫 디깅을 시작하려 한다.


20세기, 창립자인 크리스찬 디올과 코코 샤넬이 공존했던 때로 돌아가 보자.

결국 이 글은 디올 브랜드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 디올, 브랜드의 시작


브랜드의 시작을 이야기하려면, 창립자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두 브랜드 모두 창립자의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가졌으며, 두 창립자가 디올과 샤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두 사람은 성별부터 성장 배경뿐 아니라 브랜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가 완전히 달랐다.



크리스찬 디올 (Christian Dior)


어린 시절의 영감


크리스찬 디올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다섯 남매 중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 그랑빌의 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특히 어머니가 가꾼 아름다운 정원은 디올 브랜드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자서전을 통해서 '어머니의 장미 정원'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시절 정원에서 받은 영감이 여전히 디올 브랜드 곳곳에 모티브가 되어 드러나고 있다. (이 부분은 다음에 살펴보자.) 예술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디올은 예술 학교에 다니며 예술가가 되기를 꿈꿨다. 정치학을 전공하길 바랐던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처음에 정치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결국 예술의 세계로 돌아와 브랜드 런칭 전까지 아트 갤러리를 운영하며 예술계에 종사했다. 1920년대에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와 교류하며 예술적 깊이를 쌓았다.


크리스찬 디올이 어린 시절을 보낸 그랑빌의 집(Villa les Rhumbs), 현재는 Musée de Dior로 사용되고 있다.


디올 하우스의 시작


디올이 운영하던 아트 갤러리는 대공황 때 문을 닫았고, 그때부터 패션 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디올은 로버트 피게(Robert Piguet), 루시앙 르롱 (Lucien Lelong) 밑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통해 디자인 기초를 익히고 디자인 스타일을 발전시키며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하기 위한 기본을 다졌다.


1946년 자신만의 브랜드를 설립한 그는 1947년 2월, 전설적인 디올 브랜드의 첫 컬렉션을 발표하게 된다.


‘The New Look’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온 디올의 첫 컬렉션 ‘New Look’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Bar Suit



첫 컬렉션 명은 'Corolle'(프랑스어로 꽃받침이라는 뜻)이었는데, 이 컬렉션을 본 하퍼스 바자 (Haper's Bazaar) 에디터가 감탄하며 'New Look'이라고 언급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New Look 자체가 컬렉션 상징하는 명칭이 되었다.


It’s quite a revolution, dear Christian!
Your dresses have such a new look!

Carmel Snow, the editor-in-chief of Harper’s Bazaar



1947년 디올의 첫 컬렉션이 그토록 큰 센세이션을 불러온 이유는 사회적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1939년 ~ 1945년) 경제적 어려움과 물자 부족으로 패션 산업 역시 크게 타격을 입었다. 여러 나라의 참전으로 전 세계가 일상생활을 온전히 하기 어려웠던 시기였으므로 이 당시에는 대부분 어둡고 절제된 디자인의 옷을 입었다. 계급이나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사용되는 옷감을 최소화한 투박하고 라인 없는 디자인의 옷을 입던 시기였다.


그때 디올이 나타난 것이다.


옷감을 마음껏 사용한 풍성하고 긴 스커트,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디올의 첫 컬렉션은 전쟁 시기의 절제된 패션과 큰 대비를 이루며 말 그대로 '새로운(NEW)' '스타일(LOOK)'을 선보였다. 전쟁으로 인해 억눌렸던 아름다움, 심미적 가치에 대한 욕망이 솟구쳐 오르며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고 그렇게 디올은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47 Dior collection



디올은 여성스러움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아름다움을 여성스러움으로 정의하는 사람이었다. 디올에게 아름다움이란 어린 시절 그랑빌의 장미 정원에서 찾은 것이었고, 예술을 누리고 꽃을 가꾸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찾은 것이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여성스러움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디올의 가치이자, 샤넬과 유독 대비를 이루는 지점이다.



2.샤넬과의 대비


코코 샤넬 (Coco CHANEL)


크리스찬 디올이 첫 컬렉션을 선보였던 1947년, 샤넬 브랜드의 전성기(1920년대~1930년대)는 이미 한차례 지나있었다.

코코 샤넬은 이미 64세였다.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이전, 패션계는 샤넬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문을 닫았던 샤넬의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디올이 전 세계의 이목을 가져갔다. 디올의 컬렉션은 세간의 주목과 감탄을 받았으나, 코코 샤넬은 디올의 컬렉션을 비판했다. '디올의 옷은 여자를 감추려 한다'라며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강조한 디올의 가치에 공감하지 않았다.


샤넬로써는 디올의 옷을 극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샤넬이 벗어나려는 프레임, 해방되고 싶고 해방시키고 싶어 고군분투했던 그 실루엣으로 디올은 회귀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코코 샤넬을 이해해야 한다.


1920s CHANEL



부잣집 도련님으로 대저택에서 예술과 꽃에 둘러싸여 자란 디올과 달리 샤넬은 부모님에게 버림받아 고아원과 수녀원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상류층의 문화 예술을 누릴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옷으로 신분이 구분되던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상류층 여성들이 입는 옷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는 인식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옷을 만들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신분과 불편함으로부터 자유로운 옷을 만든 것이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소재,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스타일이 샤넬의 스타일이었다.


그러니 디올의 New Look이 못마땅할 수밖에.


게다가 그녀는 옷을 직접 입지 않는 '남자가' 여자의 옷을 만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녀가 만든 옷만큼 여자들에게 편안한 옷을 절대로 만들 수 없으며 '보이기에 아름다운' 옷을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Look how ridiculous these women are,
wearing clothes by a man who doesn't know women,
never had one, and dreams of being one.

Coco Chanel


재미있게도, 디올의 첫 컬렉션이 자극제가 되었는지 그녀는 긴 방학을 끝내고 다시 패션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1950년대 60대의 나이에 트위드 투피스를 선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3. 브랜드 정체성의 차이


이처럼 디올과 샤넬은 뼛속부터 다른 브랜드다.


샤넬 옷을 입고 있는 샤넬, 디올 옷을 입고 있는 모델들과 함께 있는 디올


샤넬 브랜드의 가장 큰 가치는 '자유'였다.

불편함, 계급, 사회적 관습 같은 그 당시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유.


그녀는 모델이자 디자이너였다. 직접 입고 다닐 옷이기에 본인이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옷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샤넬 브랜드의 옷은 일상복에 가까웠다. 그런 샤넬의 시각에서는 디올의 컬렉션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샤넬이 말한 것처럼 디올의 드레스는 '보기에 예쁜' 심미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기에 샤넬의 블랙 미니 드레스보다는 당연히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본인의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재료 삼아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전하고 싶었던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디올 브랜드의 가장 큰 가치는 '아름다움'이었다.

'예술'에 큰 가치를 두고 시작했기에 정교한 기술, 고품질의 원단, 디테일한 디자인과 전문적인 장인 정신을 통해 만들어낸 파티 드레스가 유명했다. 편하게 입는 일상복보다는 전쟁 전에 행복한 옛 시절을 떠올리며 삶에 특별함을 더할 수 있는 파티복.


본래 아름다움이란 때론 무용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삶에 만족감을 준다.

우울한 시대를 끝내고, 다시 행복해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샤넬 패션 하우스는 1913년에 시작되었고

디올 패션 하우스는 1946년에 시작되었다.


한 세기를 거치며 두 브랜드 모두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앞으로 ‘디올디깅’을 통해 이 브랜드의 어떤 것이 변했고 어떤 것이 그대로인지, 어떤 요소들이 남아 각 브랜드의 가치를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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