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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 Jun 09. 2024

디올의 디자이너들 (2)
-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10년,

크리스찬 디올의 시절은 고작 10년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짧지만은 않지만, 코코 샤넬이 샤넬을 이끈 기간이 1909년부터 1971년까지 총 62년인 것에 비해 크리스찬 디올의 시절은 굉장히 짧았다. 창립자만큼 브랜드 철학을 확고하게 만들 사람이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디올 브랜드는 정체성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올은 지금도 여전히 정체성을 지키며 명품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78년,

디올이 창립된 1946년부터 202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7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디올은 총 7명의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브랜드를 이끌었다. 크리스찬 디올 사후에 디올의 디자이너들이 브랜드 가치와 철학을 어떻게 유지해왔는지, (혹은 정말 유지하긴 했는지..) 각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의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디깅을 통해 브랜드 창립자가 없어도 100년, 200년- 오래가는 브랜드가 되려면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Yves Saint Laurent of Dior 

1957 - 1960


동명의 브랜드로도 유명한 이브 생 로랑은 크리스찬 디올 직후에 디올 브랜드를 이끈 디자이너였다.



이 드레스는 이브 생 로랑이 디올에서 디자인한 드레스 중 가장 유명한 드레스로 알려져 있다. 1955년, 즉 이브 생 로랑이 대표 디자이너 자리를 맡기 2년 전에 선보인 드레스로 큰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디올이 생전에 그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그럴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디올 브랜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성과 우아함을 잘 보여주면서도 크리스찬 디올이 주로 보여주었던 고전적인 분위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브랜드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분위기에 맞추어 자유롭게 변주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아마도 이브 생 로랑은 적임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1957년, 크리스찬 디올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디올 하우스가 공석이 되었을 때 디올 하우스가 이브 생 로랑을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젊은 디자이너에게 디올의 미래를 맡기며 기대하는 바가 컸을 것이다. 





1957년, 그가 디올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21살이었다. 'Little prince of fashion'이라고도 불린 그는 말 그대로 어리고 능력 있는 디자이너로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브 생 로랑의 디올 시기는 상반된 두 가지 평가를 받는다. 모던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가져왔으나 이것이 디올의 전통적인 여성성과 우아함과 충돌해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가 디올 하우스에서 3년간 선보인 6개의 컬렉션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958 Trapeze Line


이브 생 로랑이 디올에서 선보인 첫 컬렉션이다. ‘Trapeze Line’이라고 알려진 이 컬렉션에서는 무릎 아래로 살짝 내려오는 길이의 베이비돌 라인이 특징이다. 디올이 자주 사용했던 크리놀린 형태를 살리면서도 훨씬 단순화해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보인다. 


갑작스럽게 브랜드를 맡게 되어 첫 컬렉션까지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을 테지만, 첫 데뷔는 꽤 순조로웠고 평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드레스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 드레스가 디올스러운지는 모르겠다. 이브 생 로랑스러운 디자인에 디올스러운 요소를 더한 느낌이랄까.


참고: 1958년 이브 생 로랑의 디올 드레스를 다양하게 살펴보려면 링크를 통해 몇 가지 더 살펴볼 수 있다.



1958년 이후에 이브 생 로랑의 디올 드레스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느낌이 드는 건, 내가 이미 그의 미래를 알기 때문인 걸까? 디올도 아니고 이브 생 로랑도 아닌 어떤 것.. 


문득, 이브 생 로랑도 디자인을 하면서 괴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기에는 자기 브랜드가 아니고, 이미 창립자의 개성이 뚜렷한 브랜드라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해볼 수도 없다. 


재능 있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브랜드를 매력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못하는 느낌이 아쉬웠다.




1960 Souplesse, Légèreté, Vie





이 컬렉션은 이브 생 로랑의 마지막 디올 컬렉션이다. 이 자켓을 보고 경악했다. 이 크로커다일 가죽 자켓을 무슨 생각으로 ‘디올’ 이름으로 내보냈는지.. 이 컬렉션은 그 당시에도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도 같은 컬렉션의 드레스들인데, (죄송하지만) 최악이었다.. 디올스러움도 입생로랑스러움도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옷을 입은 여성들이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옷으로 여성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했던 디올의 가치가 전해지지 않는다. 



이 컬렉션은 당시에도 모든 이에게 외면을 받았다. 




이브 생 로랑은 분명 재능 있는 디자이너였지만, '디올' 브랜드를 이끌기에 적합한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뛰어난 사람이 모든 일에 적합하지는 않을 수 있다. 훌륭한 선수가 모두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결국 디올 하우스는 이브 생 로랑을 대표 디자이너에서 떠나보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브 생 로랑은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를 창립하고 또 한 번 패션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다.


리더가 바뀌어도 브랜드 가치가 유지되려면 '변해서는 안되는 핵심 가치'가 분명해야 한다. 


디올이 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성성과 우아함'이었다.


이브 생 로랑은 핵심 가치였던 여성성과 우아함에 대한 탐구보다는 그 가치를 전하기 위해 크리스찬 디올이 사용했던 디자인적 요소에만 집중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마저도 여성의 몸매 라인을 강조했던 풍성한 치맛단 중 라인은 없애고 '풍성한 옷감'만 남아 이상한 버블 형태의 구조물만 남기고 말았다.  실제로 이브 생 로랑의 컬렉션은 “the figure was lost in favor of style.”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이는 이브 생 로랑 본인의 디자인적 개성을 더 우선시하여 실루엣을 잃었다는 의미로 실루엣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디올 브랜드에 대한 평가로는 상당한 혹평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5명의 디자이너들의 디올을 살펴보면서 디올의 가치가 어떻게 변주되는지 디깅해보려 한다. 다음 시간에는 30년 가까이 브랜드를 책임졌던 '마크 보한'의 디올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Edited by cherri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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