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 감상법
여기 한 의자가 있다.
온전한 의자라고 할 수 없는, 의자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이것은 어떤 틀에 갇혀 콘크리트와 함께 매장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작품의 가장자리마다 길고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관통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보며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 우선,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자.
이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자리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지금껏 다녀본 전 세계 미술관 중 단연 최고였다.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를 지나 동시대 미술까지, 서양 미술은 물론 동양의 불교미술, 미대륙 원주민의 예술, 회화와 조각은 물론 건축가가 만든 가구까지 아우를 만큼 소장품의 폭이 넓고 방대하다.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도 흥미로워, 마치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루 종일 머물러도 모든 작품을 다 보기엔 부족할 것이다.
메트로폴리탄에 다녀온 지 1년이 지났고 수많은 작품 중 대부분이 흐릿해졌지만, 이 작품만큼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수많은 걸작들 사이에서 마음을 파고든 단 하나의 작품. 오늘은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한 가지 방법을 나누고자 한다.
이 작품은 콜롬비아 작가 도리스 살세도의 작품이다. 제목은 없다(untitled). 그러나 이 작품은 ‘애도’에 관한 것이다. 콜롬비아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약 50여 년간 무장 게릴라, 정부군, 민병대 간의 내전을 겪으며 수많은 민간인이 실종되거나 희생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과도 겹친다. 1980년 광주, 1987년 6월 항쟁이 상처로 남아 있는 우리에게 살세도의 작업은 낯설지 않다. 그녀는 국가 폭력 속에서 사라진 이들의 부재를 기억하기 위해, 일상 사물을 애도의 조각으로 전환시킨다. 말 대신 침묵으로, 이미지 대신 물성으로 상처를 드러낸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다. ‘나무’라는 따뜻한 소재는 인간성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위를 덮은 콘크리트는 차갑고 영구적이며 무거운 현실을 의미한다. 의자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철근은 찔린 상처와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본래 사람이 앉기 위해 만들어진 의자는 이제 그 기능을 잃고,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상실의 상징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살세도는 희생자 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들이 겪는 상실과 침묵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이 의자 역시 실종된 이가 앉아 있었을 자리에 있던, 실제 희생자 가정의 의자라고 한다. 누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남겨진 것은 먹먹한 ‘부재’뿐이다. 이 차가운 형상은 단지 사물이 아니라, 사라진 이의 흔적이자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품은 증거다. 작가는 말한다. 남겨진 자들의 고통은 기능을 잃은 사물처럼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 있으며,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고.
내가 이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었던 이유는 단지 누군가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 의자를 바라보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상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설명하던 도슨트 선생님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예술가의 역할 중 하나는 사회에 애도의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촉매를 제공하는 것이죠.
그 말은 이 작품이 단지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우리가 그 상처와 어떻게 마주할지를 묻고 있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이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마음이 아려온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이렇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도슨트 덕분이었다. 작년 7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을 때 나는 '도리스 살세도'라는 작가를 알지도 못했고, 어떤 배경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아마 도슨트 없이 방문했다면 이 작품이 놓인 곳을 지나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지나갔다고 한들 제목도 작가 이름도 붙어있지 않은 이 작품을 놓고 이런 감상을 했을 리가 만무하다.
고흐의 밤하늘이나 모네의 수련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적 충만함을 주지만 현대 미술, 정확하게는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은 그렇지 않다. 최근 흥미롭게 읽고 있는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라는 책에서 동시대 미술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미술은 체스에 가깝다. 규칙부터 배워야 하는 게임이다. 뒤샹 이후 예술 작품의 진정한 핵심은 작품 배후에 있는 아이디어다. 컨템퍼러리 아트에서는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라는 핵심적 문제 자체를 맥락이 결정한다.
결국 이 시대의 미술 작품 감상법은 작품의 배경과 맥락, 그리고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미술이라는 체스의 규칙이다. 도리스 살세도가 콜롬비아 출신 작가라는 것, 콜롬비아 내전이 대다수의 국민에게 상실감을 줬다는 것, 그 상실과 부재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희생자가 사용하던 의자를 사용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알아야' 왜 이 작품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지, 이 작품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인에게 현대 미술은 어렵고 난해하다. 나도 일반인이기에 그런 감정을 숱하게 느껴보았다. 전시를 보러 간 미술관에서 지나가던 관람자의 '이거 그냥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인 것 같은데'라는 불평을 들어본 적도 많다. 나도 그런 의심을 꽤나 해봤다. 그런데 이 미술이라는 것은 알면 알 수록, 특히 지금 이 시대의 미술은 알면 알수록 재밌다.
그러니 어렵고 난해한 미술 작품을 보러 갈 때면 가기 전에 그 작가에 대해 가벼운 자료조사 정도는 하고 가는 게 좋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 더 좋고, 다녀와서 그 작품 형상이 어떤 배경으로 나온 것인지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를 찾아보면 더 재미있다. 미술계가 난해한 말과 표현으로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불만이 많지만,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조금 어렵더라도 불평하기 앞서 짤막한 조사를 하고 방문해 보면 보이는 게 훨씬 달라질 것이다. 드넓은 미술관에서 딱 하나의 작품만 마음에 새기고 와도 충분하다. 그 단 하나의 작품이 당신의 삶에는 어떤 가치와 풍성함을 남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