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미술 애호가가 되었나

질문하게 만드는 미술의 힘

by 최리

살아가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먹고사는 것과 상관없이, 온전히 나만의 즐거움이자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는 일. 나에게 그것은 ‘미술’이다. 나는 마치 미술관에 가야만 숨이 트이는 사람처럼 지치지도 않고 그곳을 찾는다. 전시 티켓을 손에 쥐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머무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작은 사치이자 위안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미술관과 갤러리를 자주 찾게 되었는지, 또 언제부터 이곳에서 행복과 해방감을 얻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10대 시절, 미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도 있었지만 객관화가 되어 있었기에 그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술에 대한 열정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결국 파리의 미술학교로 교환학생을 떠났고, 디자인을 부전공하며 나름의 길을 찾아갔다. 지금은 미술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더 자주 미술관을 찾는다. 이렇게 내 삶은 늘 미술과 교차하며 흘러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하필 미술일까.

나는 왜 미술을 이토록 사랑하는가.



IMG_2494.heic 이어령의 말, 이어령 어록집


예술가, 문학가는 해답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을 주고, 있는 것을 표현할 뿐입니다.
- 이어령의 말 -



예술에는 늘 주제가 있고, 문제의식이 있고, 질문이 있다. 고전 회화나 중세의 성화,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비교적 명확한 작품들과 달리, 현대 미술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작품이 왜,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했는지를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예술가가 자기만의 문제를 붙잡고, 그것을 끝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태도 그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냥 아무거나 만들고 말만 잘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결국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끝까지 고민하는 태도다. 이것이 내가 미술을 사랑하는 이유 중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미술관에 갈 때 그 뒤에 숨어 있는 질문을 떠올린다. 이 예술가는 무엇을 문제 삼았을까. 왜 하필 이 재료와 방식을 택했을까. 그렇게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처럼 다가온다. 그러면 미술은 오브제가 아니라 대화 상대가 되고, 그 대화가 내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거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IMG_2495.HEIC 어떤 그림, 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돌이켜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정답을 강요받는다. 시험에서는 오직 하나의 답만 인정되고, 회사에서는 실수 없이 효율을 높이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미술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모순을 드러내며, 답이 없는 상태를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나는 작품 앞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미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미술은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을 열어주고, 내가 놓쳤던 질문을 새롭게 건네며,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내 마음속 깊은 갈망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나는 이 매거진을 통해 미술관에서 마주한 질문, 작품과의 대화를 기록하려 한다. 미술 전공자도, 예술가도 아니지만 작품 앞에서 느낀 생각과 흔들림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끝까지 표현해 냈듯 나 역시 솔직하게 나만의 방식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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