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입덕기 + 탈덕기

취향의 변화/진화

by 채리

김기덕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애증이다.


<피에타>로 처음 김기덕 감독을 접한 이후 그는 나에게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 아직도 <피에타>가 죄, 용서, 구원에 대한 웰메이드 지침서 같은 영화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김기덕이 인간의 추잡스럽고 나약한 내면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 그걸 아주 탁월하게 영화화시키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남자> 같이 여성으로서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잠깐 갈등했다가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작품도 있었지만, 윤회와 업에 관해 얘기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첫 관람 후 너무 큰 감동을 받아서 연속해서 한 번을 더 보았을 정도.


영화는 저수지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사찰에서 막을 연다. 노승은 개구리와 뱀을 재미로 괴롭히는 동자승에게 똑같은 괴롭힘을 주고 잘못을 되돌려놓지 못하면 그것이 평생의 업이 될 것이라 당부한다. 동자승은 어른이 되어 가면서 내면의 욕망과 욕구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만, 반야심경을 바닥에 새기며 참회하고 노년엔 스승의 길을 따라 수련의 삶을 산다. 하지만 세대가 지나 그에게 맡겨진 새로운 동자승은 영화 초반 유년 시절의 그가 했던 행동처럼 똑같이 개구리와 뱀을 괴롭힌다.


나는 러닝타임 동안 몰두해서 영화를 관람하며 시적이고 종교적인 개념을 풀어 옮겨 놓은 듯한 플롯에 매료되었고, 영상 속 청송 주산지의 저수지 한가운데 위치한 사찰의 고즈넉함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사계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봄이 되듯이 반복되는 죄와 회개 사이에서 나의 업은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온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몇 번을 재관람해도 여전히 인상 깊었고 나는 그렇게 김기덕의 팬이 됐다. 2016 년 <그물> 개봉 당시 나는 그의 작품 설명을 직접 듣기 위해 아트하우스 GV를 찾았다. 꽁지머리에 개량한복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순박한 얼굴로 최근 들어 술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라 너무 즐겁다고 했고, 나는 이리도 순수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깊고 날카로운 통찰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정말 정말 팬이라며 악수를 청한 후 그에게 쭈뼛거리며 내민 몰스킨엔 “삶”과 “사람”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만든듯한 특이한 사인을 받았고, 나는 이 모든 게 너무 멋있다며 카톡으로 열심히 주위 사람들에게 김기덕을 자랑하고 그의 최근 영화를 홍보했다. 그날 밤 11시 즈음 북적거리는 명동에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나는 정말 많이 뿌듯했던 것 같다. 주위에 시간 나는 친구도 김기덕 작품을 좋아하는 친구도 없어서 금요일 밤 혼자 외롭게 버스를 타고 갔지만, 취향이 확장되고 있다는 기분, 나는 대단한 것을 쫓고 있다는 기분, 내가 존경하는 감독에게 내 팬심을 전했다는 기분, 뭐 이런 것들 때문에 전혀 외롭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김기덕 감독의 촬영 현장 여배우 성추행/성폭행을 고발하는 PD수첩 에피소드를 보고 사실 나는 페미니즘과 여성 혐오에 관심을 갖게 된 이래 가장 큰 딜레마에 빠졌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년 전 그라치아에서 발행된 김태훈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이 계기였다. 논란이 일자 김태훈은 칼럼의 의도가 페미니즘을 향한 비난이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당시 글에서 그가 사용했던 비유와 자의적 해석으로 기정사실화 시킨 스테레오타입들(이혼을 재산의 절반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정의하고 군 가산점제에 대한 반대 견해를 여성의 이데올로기라고 표현하는 등), 그리고 이런 총체적으로 편협한 견해가 칼럼의 형태로 이름 있는 매거진에 실렸다는 사실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여성의 권리와 안전과 환경이 남성의 그것과 동일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여성으로서 가졌던 개인적인 차별의 경험과 혐오의 시선들은 당사자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지지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출처와 이유가 불분명했던 불편함이 실재하는 여성 혐오였음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분별력이 생겼다 자부했는데, 뜬금없이 좋아하던 영화감독 때문에 큰 혼란을 마주한 거다. 그가 잘못했냐는 당연한 질문을 두고가 아니라, 그럼 이 혐오스러운 사람의 영화를 나는 이제 좋아하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질문에서였다. 사람들에게 “저는 여성 혐오에 관심이 많아요”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김기덕의 영화는 훌륭하다고 말했던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기 때문이고, 그런 중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좋은 영화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답은 모르겠다. 미투 사건 이후로 다시 영화를 봤지만, 감독에 대한 반감이 영화에 대한 견해를 바꾸진 않았다, 인간 김기덕을 보는 내 감정은 존경에서 경멸로 180도 바뀌었지만.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대해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도덕적으로 부정한 사람이 그린 꽃 그림이 그의 부도덕함으로 인해 꽃이 아닌 게 되지 않듯, 그의 추태와 여성 혐오적인 시선을 인지한 후의 나에게도 이 영화는 영화로서 평가할 때 좋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 김기덕의—혹은 김기덕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여성 혐오자의—콘텐츠를 소비할 선택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그들을 외면할 것이다. 내 기준에 아무리 좋은 영화여도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함으로 인해 김기덕이란 인물 자체가 고평가 되는 것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영화를 소비함으로써 경제적 이윤을 만드는 데 기여하지도, 이로 인해 여성 혐오를 행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지장 없음을 증명하는 사회에 기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에겐 내 취향보다 여성—을 포함한 모든 약자—에게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가 더 시급하고 절박하기 때문이고, 고작 나 한 사람이 소비함으로 인해 미디어에 부여되는 파급력은 생각보다 꽤 크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이 코로나 감염 후 심장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외에 거주 중이라 국내 소식은 늘 한 박자 늦게 접하는 편인데, 그의 사망 소식은 아주 재빠르게 전해 들었다, 내 팬심을 아는 지인들 덕분에. 뉴스를 찾아보니 그는 최근 몇 년간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라트비아에 이민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고 했다. 나는 김기덕 감독의 재능에 그래도 일종의 애정이 남아있다 생각했는데, 그의 이민 소식을 듣고는 그냥 그곳의 (아마도 낮을 것이 분명한) 여성의 인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성범죄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허용되는 그런 곳이겠지. 내 안에 남은 연민 또한 다 소모되었다는 심볼 같았다. 소식을 전해준 지인들에게 "천벌 받았나 봐요"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개인의 취향은 원래 늘 진화한다. 영화, 음악, 책, 취향에 관련해선 항상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고, 애정이 식었음을 깨닫고, 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다시 그것을 탐구하고의 끝없는 반복이었다. 나는 사실 홍상수의 연출, 김민희의 연기, 김기덕의 스토리텔링 아직도 다 너무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지지하는 무언가에 대한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많은 책임과 시선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을 밝히기 전에 몇 번이고 더 신중하게 생각한다. 남편의 외도를 경험한 여성은 내가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내가 미워 보일 수 있고, 성범죄를 경험한 여성에게는 김기덕의 영화를 좋아하는 모두가 동조자로 보일 것을 미리 알고 대처하며 행동하는 게 공감 능력이고 감수성이니까. 내 취향이 진화하는 속도에 맞춰 내 성숙함도 같이 농익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내 최선이다.


그렇게 나는 결국 김기덕 감독에게서 탈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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