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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Feb 26. 2024

널 만나려고 몇 년을 기다렸는지(치앙마이 5)

널 만나서 너무 행복했어. 마지막 날.

아이코. 벌써 마지막 날.

 일단은 와로롯 시장부터 가기로 한다. 그런데 계속 잘 눌러지지 않아 겨우 누르고 가던 청소버튼이 기어코 문제를 일으키며 아예 반응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리조트 채팅 앱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있잖아. 우리 방 청소 버튼이 고장났더.'

'너 며칠 동안 그 버튼 한 번도 안 썼어?'

'아니 아니. 처음부터 잘 안 눌러지더니 오늘 아예 안 눌러지는고야.'

'아.. 그렇구나. 알겠어. 우리 직원한테 얘기할게. 알려줘서 고마워.'

 체크아웃 날인데도 청소하지 말라고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숙소는 24시간 기준으로 체크인 시간에 체크아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체크아웃 날이지만 저녁 늦게 체크아웃을 할 예정이고, 숙소에 여러 번 들어올 거고, 나가기 전에 샤워도 하고 짐도 쌀 거니깐.

 그럼에도 혹시 직원 간에 전달이 안되었을까 봐 나갈 때 카운터에 앉아 있는 직원에게 채팅 메시지를 다시 보여줬다. 직원은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단점 하나 때문에 처음엔 리스트에서 제외한 숙소였지만 위치가 좋고, 체크인 기준 시간으로 체크아웃을 할  수 있고(가장 큰 장점), 매일 냉장고 음료를 2개씩 무료로 먹을 수 있고(생각보다 매일 못 마심), 몹시 친절하다는 점 때문에 결국 선택했던 숙소였다. 그리고 예약 전 메일로 짐을 옮겨주는 것 맞냐는 문의에 걱정하지 말라는 신속한 답변을 받은 터라 믿음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저녁 늦은 체크인인데도 대로변까지 마중 나와서 짐을 다 옮겨주고 로비를 지날 때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인사를 해주고, 요구 사항에 즉각 즉각 반응해 주었기에 여행 만족도는 숙소로 인해 평점이 굉장히 높아졌다. 사랑해요. 유 치앙마이. 제가 인기 블로거쯤 됐다면 여기저기 홍보도 하고 칭찬도 했을 텐데 아쉽네요. 근데 사실 나는 안 아쉬워요. 동양인도 별로 없고 한국 사람들 후기도 많이 없는 조용한 곳이라 나는 또 갈 예정인데 이대로 계속 덜 유명했으면 좋겠거든요.


결국 계획한 건 다 해내고 맙니다.

 그놈의 '모자 쓴 코끼리'와 '두 마리 코끼리' 망고젤리가 뭐라고(현재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치앙마이에서 사 와야 하는 필수? 쇼핑 품목입니다.) 손품 판 기록을 가지고 발품을 팔아 와로롯 시장에서 흥정하여 망고젤리를 비롯 김과자와 함께 뜬금없는 엄마의 천 2미터(요즘 한국에선 파는 데가 잘 없는 데다 몹시 비싸다고 합니다.)를 사 온 후(정보 없이 사는 쇼핑 품목이라 임기응변에 약한 J는 약간 당황) 다시 숙소로 복귀한다.

와로롯 시장. 다낭 한시장과 몹시 유사한 그림체. 동남아 실내 시장은 다 이렇게 설계하기로 약속했나요?

  그리고 이틀 전에 했어야? 했으나 치앙마이 대학 졸업식 파동?으로 하지 못했던 숙소 수영장에서 놀기 일정에 돌입한다. 치앙마이도 계절은 겨울이라 낮 시간이 아니면 수영장 이용은 추울 수 있다고 하여 일부러 이틀 전 한낮에 일정을 잡아 뒀던 것인데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에 안 담그고 가면 몸이 서운하니까? 아침 먹으러 가면서 슬쩍 수영장에 발을 담가 봤는데 그렇게 차갑지는 않았다. 그래서 해가 슬슬 쨍쨍해지기 시작하는 오전에 입수 도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아서 전세를 내고 혼자 놀았다. 1층 풀억세스 룸을 예약하면 전용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계속되는 혼자만의 자맥질. 1시간 정도 혼자 신나게 놀고 얼른 씻고 방은 여전히 난장판을 해 둔 채(왜 청소하지 말라고 했는지 알겠쥬?)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치앙마이 냄새 물씬 나는 숙소. 우리 층에서 내려다본 풀 억세스 수영장

 멋있고, 맛있으면 사랑할 수밖에

베르사유 카페 드 플뢰레

이름만 들어도 어떤 곳일지 짐작되는 곳. 잘 치장(?)된 분위기의 브런치 카페. 맛보다는 사진 찍는 곳으로 많이 이용한다는데 나는 과감히? 점심 장소로 선택했다.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우리가 거의 일빠? 여서 마음 놓고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음식도 생각보다 꽤 괜찮았고 무엇보다 시그니처 메뉴인 음료가 독특하고 이뻤는데 비싼 편이라는데 100바트였다.(3700원) 물가 만만세!

뭔가 고급진 브런치 느낌 남. 헤헷

 역시나 뻥 뚫린 곳에 오니까 엄마가 좋아한다. 대신 뻥 뚫려 있고 나무도 많아서 모기도 많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야무지게 모기퇴치제도 가져가서 뿌렸는데 또 내가 누구냐. 100명 있어도 나만 모기에게 물어 뜯기는 모기 인기녀. 그렇게 약을 뿌리고도 물리는 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일이다. 허허허. 대신 역시 엄마는 안 물리고 나만 물렸다. 패치를 붙이지 뭐.(만반의 준비 J) 

치앙마이와 이질적인 느낌의 공간. 다음에 갈 때도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 있을까?

 다른 무리들이 슬금슬금 들어와서 사진을 찍을  때쯤 우리는 자리를 벗어난다. 밥 먹고 바로 먹는 디저트로 먹기에는 무리가 있는 쿤깨쥬스 바로 간다. 거의 한 끼 식사 대용인 이 디저트 또한 필수? 리스트라 안 먹을 수 없는데 도저히 다른 일정에는 끼어 넣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밥 먹고 바로 이동.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짐을 싸며 먹기로 결정!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모닝글로리를 어쩌다 보니 한 번 밖에 못 먹은 사실도 생각나 숙소 바로 앞 식당에서 모닝글로리만 포장해 온다. 뭐지... 이건 1식 2끼인가... 근데 맛있는 걸 어떻게 참아. 배는 부르지만 넣을 테야. 식도 끝까지 채우더라도.


다 이렇게 완벽하면 별 수 없지. 다음에 또 올게.

 마지막 샤워를 끝내고, 완벽하게 짐을 싼 후에 채팅앱으로 짐을 옮겨달라고 부탁한다. 태국스럽지 않게? 또 1분 만에 나타난 듬직한 남자 직원. 체크아웃을 하면서 한가득인 우리 짐을 보면서 묻는다.

 "너 어디 갈 거야? 택시 불러줘?"

 "아니. 나 3분 거리에 있는 마사지 숍 갈 거야."

"그래? 그럼 내가 거기까지 짐 옮겨줄게."

@.@ 

 마지막 마사지숍은 픽업, 샌딩 서비스가 가능한 고급 마사지 숍을 예약했다.(샌딩 서비스를 이용해서 공항으로 편하게 가려고). 하지만 픽업을 요청하기엔 너무 짧은 거리라 따로 메모를 남기지 않았는데 막상 더운 날씨에 짐까지 이고 지고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려니 약간 버거운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나타난 구세주라니! 이 숙소를 마지막까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굽신거리며 고맙다고 팁을 두둑이 드리며 다음에 내가 치앙마이 와도 무조건 이 숙소 찜이야! 하고 다짐한다. 혼자 다짐한 거니까 아무도 몰라서 이렇게 여기에 고백해 본다. 

 게다가 마지막 받은 마사지는 왜 이렇게 또 좋은지. 극락을 여러 번 갔다 오면서 내가 이러니까 태국을 못 놓지!!.. 다음엔 언제 갈까? 머리를 굴린다. 태국 가본 사람들은 년 1회 1 태국은 다 기본 아닙니까?

 다 하고 나왔더니 이 고급 마사지 숍은 마지막에 제공하는 게 과자나 티가 아니고 무려 망고밥! 물론 이 정보까지 다 나의 계획에 속해 있었다. 저녁을 라운지에서 먹을 건데 수속 끝내면 조금 늦어질 예정이라 허기를 때울 만한 게 필요했는데 마침 이 마사지 숍에서 망고밥이 제공된다고 하기에 오! 공항까지의 샌딩과 간식이 한 번에 해결되는 완벽했던 스케줄

예쁘게 잘라진 망고와 색감도 이쁜? 밥

 라운지 식사 후, 바로 탑승하는데, 탑승 후에 바로 기내식이 나온다고 해서 부담 없이 먹으려고(절대 기내식을 패스하진 않는다.) 특별식으로 과일식까지 신청한 것까지 완벽했다!(나 칭찬하는 거임)

식사가 부담될 때는 과일식을 추천합니다. 출발 24시간 전까지 신청하셔야 합니다.(코드셰어는 48시간 전.) 나 왜 갑자기 블로거 모드?

 근데 갈 때는 연착 됐는데 올 때는 기장 슨생님 빨리 퇴근하고 싶으신가 출발 시간 전에 다 타니까 바로 출발하시더니 과속(?)까지 하셔서 새벽 4시 되기도 전에 인천 도착. 아이고. 엄마 버스 시간은 7시는 돼야 하는데. 입국장에서 몇 시간 노숙을 해봅니다. 연예인이 떼거지로 출국하는지 출발층에서 소녀 떼들이 꺅꺅!!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서 잠을 방해했던 것 말고는 괜찮았다. (엄마가 가서 봤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했다. 엄마가 모르면 나도 잘 모른다. 요즘 아이돌 아는 건 <=모르는 건> 서로 비슷한 수준. 나는 내 연예인 아니면 관심 없어요.)

 그렇게 식당가 열릴 때까지 좀 누워? 있다가 아침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코로나 전부터 그렇게 가고 싶어 벼르면서도 막상 여행을 앞두고 유독 긴장되고 걱정 많았던 첫 치앙마이 여행은 그렇게 큰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순간

여행앓이.

자주 걸리면서도 행복한 병. 그리고 그것이 극대화되는 지점은 항상 여행이 끝난 직후일 때가 많다. 때문에 돌아온 직후 한 달 동안 계속 다음 여행지를 열심히 물색하고 들썩거렸다. (사실 원래 나의 여행 원칙? 은 떠나기 전 다음 여행지를 예약해 두는 것이었거늘..)

 여행앓이가 심하다는 것은 여행 만족도가 높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싫어하고, 배우는 것도 무서워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 해내는 것도 늘 어려워하는 나는 그렇게 언제나 여행지에서 다른 나를 만나고 온다. 

 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며 걱정하지만 결국은 나쁘지 않게, 또 때로는 썩 잘 해내는 나를.

일상에선 늘 물음표를 달고 제자리걸음을 해도, 여행지에서는 할 수 있어! 의 느낌표로 바꿔내는 나를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설렌다.(여행 가면 내가 나한테 반한다는 나르시시즘적인 소리)

  그리고, 그러니까, 그러므로 2024년도 나에게 빠질 여행타임을 역시나, 당연히, 힘껏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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