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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un 09. 2024

일본 없는 일본 여행기

아무렇게나 남겨놓는 효녀(?)의 첫 일본 기록

 결국 이 여행기를 쓰기로 한다. 어차피 여행기의 주목적은 나중에 내가 보고자 남기는 기록이기에 이걸 건너뛰고 다음 여행을 쓰기엔 영 찝찝하니까 뭐라도 쓰고 넘어가려 한다.(순서 강박 있음)

 하지만 여행지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을 것이다.(공포하고 시작)

 인생의 목표가 세계일주인 사람처럼 여행을 다니지만 정작 가까운 일본, 중국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얘기하면 모두가 놀란다. 일본을 처음 간다고 말했더니 교수님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일본을 경기도 가듯 가시는 분...) "일부러 아껴 두신 건가요?"라고 물었었다.

'전혀요. 그저 딱히 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을 뿐인데요'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나의 여행 스타일을 잘 아는 주변의 친구와 지인들은 내가 일본에 다녀오자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일본을 갔다 오니 어때? 다시 가고 싶어 졌어?"

닳고 닳은? 여행가의 첫 일본여행에 대한 소감 궁금증 30%

이제 부디 일본여행에 대한 공감과 공유를 하고 싶다는 마음 30%

그리고 너도 일본에 빠져서 같이 여행 가자, 제발 여행 계획 다 짜죠...의 염원 40%쯤 되는 것 같았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잘 모르겠는데.... 뭘 봤는지 잘 모르겠어"라고 싱겁게 대답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여행의 목표는 처음부터 온전히 100% '효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숙제. 과제. 완수. 패스. 미션 클리어 해야 하는 것.

아, 그건 있었다.

"근데 너무 신기한 건 있었어.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도착한대. 이렇게 빨리 간다고??"


 효도여행의 목적지가 '일본'인 이유는 있다. 아니, 일본이어야만 했다. 이건 복잡한?? 가정사? 가 있어서 생략하겠다.(설명하기 귀찮아서도 맞고, 딱히 궁금해할 이도 없을 것 같아서) 아무튼 여행 싫어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와도 여행 가고 싶어 하는 엄마의 요구를 모두 맞추기 위해선 일본 말고는 최선의 선택지가 없었다. 셋다 일본은 처음이었고 나는 입문지라는 오사카, 교토 일정에 간간히 자유 시간이 있는 저렴하지 않은 패키지 상품을 골랐다. 패키지를 선택했다고 하면 성의 없어 보이겠지만 여행사의 수많은 상품의 장단점을 표로 만들어 비교해 가며 후기를 읽었고 주변인의 많은 조언을 듣고 심사숙고했던 결정이었다. 그리고 패키지로 여행을 갈 때도 나는 웬만한 자유여행자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간다. 그럴 거면 자유를 가지?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시 한번 말하는데 '효도'여행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 여행을 싫어하는 아빠, 관광을 좋아하는 엄마, 휴양을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 하는 일정이었다. 나는 내가 짜증을 낼까 봐 겁이 났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 타고 와서 화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도 알고 아빠도 알고 여행 생리에 대해 잘 아는 고수이고 보호자는 나 혼자다. 이 여행은 무조건 패키지여야만 했다. 나는 옳았다. 나는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았다. 대신 별것도 아닌 일로 계속 티격태격하는 엄마 아빠를 지켜보았다. 일부러 엄빠의 결혼기념일에 맞춘 일정이었는데 지금은 이유도 기억이 안 나는 하찮은 일로 결혼기념일 밤에도 투닥거리는 엄빠를 보며 한마디는 했다.

 "결혼기념일에 사이 좋~~네?"


호텔에서 90점 먹고 들어감

 도시가 기억난다기보다 잘 선택했던 숙소가 더 인상 깊었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 호텔에 아주 큰 점수를 줬다. (비싸면 비싼 이유가 있는 법)

 일단 3박 연박 숙소에 이동하지 않았고, 일본 호텔치고 평수가 큰 편이었고, 온천이 있었으며 매일 낮시간부터 밤까지 모든 음료, 아이스크림 무료에 밤 9시부터 10시까지는 매일 라멘을 공짜로 주며  모든 주류(맥주, 양주, 하이볼, 칵테일 등)도 무한 제공이었다. 게다가 외부 음식까지 반입이 자유롭게 허용되니 밤마다 식당에는 한국 사람들의 술판이 벌어졌다. 그렇다. 이 호텔은 대부분 패키지 손님으로 개별 호텔 예약은 쉽지 않다고 했다. 언니는 목소리 큰 아빠를 우려해 일본에서 큰 소리 내지 말라고 카톡으로 주의도 줬지만 아빠는 답장했다.

'여기 일본 사람 없는데?'

그래. 일본 사람은 직원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국 패키지 손님 80%, 중국인 패키지 손님 20% 정도?

대신 매일 아침 조식은 오픈런을 해도 줄을 서야 했고, 저녁 시간이 되면 식당에 자리 잡기는 눈치싸움이 될 정도로 사람이 넘쳐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류와 음료가 무제한 이용 가능한 점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우와, 주정뱅이들은 여기가 천국이겠네? 싶었다. 술을 안 좋아하는 나 역시 안 마시면 억울한 느낌이 들어 하루에 맥주 두 잔 정도는 꼬박꼬박 마셨으니까.(맥주는 그 이상은 마실수가 없는 사람...)

 그래. 그 천국을 느낀 사람 우리 아빠. 온천+주류 라니. 아빠는 낮에 관광할 때는 별 감흥 없는 희미한 눈동자를 굴리며 따라다니다가 숙소만 들어오면  반짝거리는 눈빛을 뿜어냈다. 빨리 온천하고 술 마시고 싶어 가지고.

 엄마와 내가 쇼핑을 다녀오는 동안에 혼자 온천 갔다가 식당 내려와서 맥주를 홀짝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독립적인 사람이었담?

첫날 저녁 먹었던 된장 라멘. 요일마다 라멘 종류도 바뀐다. 우린 셋다 라멘은 별로 안 좋아해서 첫날만 먹어보았다.

일본인데 왜 한국 사람이 더 많죠?

 한국 사람이 엄~~~ 청 많다고 주변에서 한결같이 얘기해 줬다. 충분히 알고 갔고, 일부러 벚꽃 시즌이 끝난 뒤로 잡았고, 주말도 피했다. 아마 그래서 조금 덜 했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많았다. 중국 사람도 가뿐히 누른 것 같았다. 간판이 일어가 아니었다면 외국이라는 자각을 못했을지도. 간판 하니까 생각나는데 왜 우리나라 간판은 죄다 영어일까. 옳은 방향은 아니라 생각한다. 흥선대원군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난 이건 늘 불만이다.

 몇 년 전 엄빠와 대만에 갔을 때처럼 한자로 된 간판을 엄빠는 잘도 읽는다. 너는 왜 한자를 못 읽냐고 안 배웠냐고 혼난다.

 "아닌데? 나 한문 잘했는데? 그거 그냥 암기과목이니까. 달달달 외워서 쳤지. 근데 그러고 바로 까먹고 안 쓰니까 모르지"라고 항변해 봤지만 소용없다. 한자 모른다고 무시당했는데 진짜 모르니까 할 말은 없다.

 외국 온 기분 느끼고 싶은데 동서남북 한국사람이 가득하고 어디 가나 일어보단 한국말이 더 많이 들린다.

사람에 치인다던 도톤보리는 그나마 4시에서 6시 사이에 머물러 인파지옥이 시작될 때 벗어났다. 대신 그래서 저녁도 4시 반에 다 먹어야 했다.

할 줄 모르지만 쓸 일도 없던 일본어

 일어는 전혀 모른다. 아예 기본도 근본도 없다. 단지 몇 년 전부터 일본 드라마를 꽤 보다 보니 자주 나오는 단어와 문장을 파편적으로 알 뿐이다.(로코 장르만 보기 때문에 대사 패턴도 꽤나 유사하다.) 그래도 물건 살 때와 음식 주문 정도는 더듬거리면서 해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그것도 별로 필요가 없었다. 엄빠 결혼기념일 저녁으로 가려했던 오코노모야끼 후보지 리스트 8개 중에 최종 선택해서 간 곳은 QR주문으로 한국어 메뉴가 다 나와서 직원과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고 면세점 직원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고 카드결제 가능하냐고 입을 떼려는 순간 키오스크를 가리켰다.

 입을 뗀 거라곤,

 편의점에서 치킨꼬치 두 개 주세요. 한 거.

 엄마 부채 사서 결제하려는데 하나 더 산다고 해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한 거

 나라에서 사슴 먹이 살 때 한 개 주세요. 한 거

 마트에서 청년이 살짝 부딪혔다고 미안하다고 해서 완존 괜찮아. 한 거(일본어 발음 귀여운 게 너무 많은데 그중에 하나 '젠젠' 써봤다고 뿌듯해함) 이게 전부다.

나라 사슴공원. 지인 초등학생딸이 무서워 도망쳤다는데 그 마음 이해됨. 먹이 들면 우르르 몰려옴. 먹이 주는 엄빠 동영상 찍고 있는데 엄마도 냅다 나한테 도망쳐옴

 아! 일본 도착하자마자 고베 쇼핑몰에서 백번쯤 본 일본드라마 OST가 나와서 혼자 반가워하긴 했으나 따라 부를 순 없었다.(멜로디만 가이드버전으로는 완창 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 고베 쇼핑몰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중년 부부가 엄마하고 나한테 뭐라 뭐라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고 '같이' 단어 하나 알아먹고 같이 사진 찍어준다는 말인가 보다 하고 카메라를 넘긴 적이 있다.(두 번째 뿌듯. 로코 드라마엔 많이 나오는... 같이, 함께, 옆에 있어줘... 지켜줄게... 가 귀에 못 박힌)

 생각해 보니까 가장 고급? 일어를 시도한 곳이 있었다. 마트에서 쇼핑하고 쇼핑 면세 적용을 받아야 하고, 오늘 쓸 품목은 면세에서 따로 빼야 하고, 엄마 물품과 내 물품 패킹은 따로 해야 하고.. 하나도 어그러지면 안 돼서 들어갈 때부터 바구니 두 개에 따로 담고, 오늘 쓸 물품은 빼야 하고.... 심호흡을 하고 계산대로 가서

 "이건 오늘 쓸 거예요" 일어를 하고,

 "두 바구니는 따로 포장해 주세요" 영어를 날렸다.(이건 일어로 못하니까)

쿠폰까지 내밀고 한참을 계산하던 남자 직원은 내게 '미'쯤 되는 낮고 덤덤한 억양으로, 면세 제외 품목 물건을 가리키며,

"이건 저쪽 가서 계산하세요"라고 했다. 그래. 내가 유일하게 하는 1개 국어인 모국어 한국어로 말이다.

한국어를 하는 일본인 직원이 아니고 한국인 직원이었다. 누가 봐도 한국 사람 같으면 계산대로 달려올 때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센스쯤 보여줄 수 없었뉘?

그렇게 끔찍한 혼종어를 듣고 속으로 웃어야만 속이 후련했뉘?

나는 얌전하게 "네"라고 대답하고 종종거리며 계산대로 갔다. 가장 어려운 일어를 한국인한테 날리다니.

그 직원은 나를 안주삼아 친구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래. 너라도 즐거우면 됐지 뭐.


 큰 문제없이 미션을 클리어했다. 성향이 다른 엄빠를 이 정도면 잘 아울렀다고 자평한다. 엄마는 여행 전날 넘어지며 액땜을 하기도, 아빠는 자유시간에 미아가 될 뻔한 적도 있지만 둘의 만족도는 평균은 찍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응. 내 생각) 올해 해야 할 일 중 큰 일을 해낸 것 같다.

 그동안 엄마와 자주 갔던 여행은 사실 내가 가고 싶어 같이 한 여행이라 '효녀'소리를 듣는 게 부끄럽고 민망했는데 이번 여행의 목적은 전적으로 효도가 목적이었기에 나는 이번에는 효녀가 맞았다.

 여행 비용은 엄빠는 각자 냈다. 나는 내 여행경비만 냈다. 보조금은 언니가 지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과 동행은 내가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효녀가 맞다.(켕겨서 자꾸 우기는 거 아님... 약간 맞음..) 아무튼 그래도 일본에서 나는  효녀였다.

이런 사진 내놔야... 일본 갔다온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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