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 좋아하고 여행기 남기는 걸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요즘은 다녀오면 기록 남기는 일에 점점 게을러집니다.
2. 이럴까 봐 지난 일본 여행기(라고 하기엔.. 휘뚜루마뚜루 핵심 요약정리로 넘어가버린) 댓글에 다녀오면 여행기를 쓰겠다고 공표를 해버렸지요.
3. 2의 약속을 행하기 위해 일단 하루씩 총, 5박 7일 일정을 써보려 합니다.
4. 무슨 내용이 들어갈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냥 나중에 제가 보려는 목적이 1번입니다. (몇 년 뒤에 보면 잼날때가 있긴 함 ㅋㅋㅋㅋ)
들뜨는 걸 어떻게 해요. 비즈니스인데.
2010년. 인생 첫 자유여행으로 떠났던 싱가포르. 과거 여행기에도 썼지만 그랬기에 내겐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언제고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2018년부터 실행을 시도했지만 결국 다시 찾은 건 2024년이 되어서다.
'처음'이 나와 싱가포르에게 인연이 있는지 2010년 여행이 '첫 자유여행'의 의미가 있었다면 2024년 여행은 새로운 '처음'과 결합되었다. 바로 '첫 비즈니스 탑승기'
부자님들은 매번 타고 다닌다던(비즈니스만 타고 다니는 사람이 워낙 많아 과연 그들이 부자인 건지 내가 찢어지게 가난한 건지 헷갈리지만) 비즈니스를 나도 처음으로 타 보았다. 당연히 내돈내산은 아니고 모으고 모은 마일리지 털기의 결과였다.
'내 인생에 비즈니스 한 번 타볼 수 있을까?' 막연히 꿈꿨는데 어쨌든 내 마일리지 내가 털었으니 당당하게? 꿈을 이뤘다.
맞다. 촌스럽게 다시 가는 싱가포르 여행지도 여행지지만 비즈니스에 들떴다. 촌티 좔좔 낼까 봐 미리 블로그 보고 공부도 했다. 기내식도 미리 주문하고 웰컴 음료도 자연스럽게 "샴페인이요" 했다. (평소에 술 안 마신다. 그냥 이코노미에서 안 나오는 걸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라운지에서 밥 먹고 탔는데 타자마자 코스요리가 나와서 배 불러 죽겠는데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내리기 전에 기어이 라면까지 주문했다. (사실 원래 저녁으로 먹으려던 건데 배가 안 고팠지만 나중에 배 고파질까 봐 먹었다.)
이렇게 코스로 계속 나오면 설레잖아요.
이코노미는 타면 빨리 내리고 싶어지고, 비즈니스는 안 내리고 싶어 진다던 말을 들었는데 참말이었다. 앉혀 놓고 계속 뭘 먹이는 바람에 6시간 넘는 비행시간 동안 영화는 겨우 한편 봤다. 더 타고 싶은데 내리라고 했다. 빠르게 내렸고 SG카드(전자입국 수속)를 해놔서 바로 통과했는데 캐리어도 바로 나왔다. 10분 컷?
평소엔 어지간해서 술은 안 먹지만 해외+기내에서만 맥주를 마셔대는 나는(이번 기내에선 배 불러서 못 먹음) 카페 회원들이 말한 팁, 입국 면세점에서 잊지 않고 맥주도 샀다.(싱가포르는 술이 엄청 비싸다. 그래서 안 사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엄마는 비즈니스 좌석 간격이 너무 커서 모니터가 잘 안 보인다는 배부른 소리를 했는데 음식사육 말고 느낀 첫 장점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였다. 다리가 붓지 않았다. 걸음이 가뿐했다. 이렇게 여행 출발 컨디션이 달라지는구나. 돈의 맛은 참 좋다. 하지만 난 돈이 없다.
좋은 것만 생각하기로 해.
대한항공을 탔고 대한항공은 4 터미널에 위치해 있다. 유명한 쥬얼창이 폭포는 터미널 1에 있어서 출/입국 동선상 관광하기가 참 애매하다.(1 터미널과 4 터미널은 셔틀을 이용해야 하고 캐리어 보관 비용은 꽤 비싸다.)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도착 후 이동해서 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안 보고 패스할까도 생각했지만 엄마는 보고 싶어 했다.) 매 정각 5분 동안 쇼타임이 있고 도착시간은 19:55. 1 터미널로 이동해서 21시 쇼를 보는 게 가장 효율적인 스케줄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모든 일정은 순조로웠다. 사람이 많아 북적거리긴 했으나 층별로 다른 폭포를 관광하고 지하 2층까지 내려와 폭포 모습을 보고 주워들은 정보로 지하 2층 마트로 냅다 뛰어가 납작 복숭아까지 구매 성공했다.
사진으로 담기엔 한계가. 특히 지하 2층의 폭포는
그래서 지하 2층에서 본 폭포는 짧은 동영상으로.
이제 호텔로 가면 된다. 해외용 타다에 받아놓은 6 SGD쿠폰을 쓰기 위해 그랩 말고 타다로 택시를 호출했다. 허허. 근데 나도 당했다. 싱가포르는 택시를 불러놓고 나중에 나오면 웨이팅 피가 있는데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어 앞에서 택시를 불렀건만 나중에 기사는 웨이팅 피 3 SGD를 부과했다. 쿠폰을 써서 덜 억울하긴 했으나 나는 별점테러를 남기며 이 기사는 나를 기다린 적이 없는데 웨이팅 피를 부과했다고 리뷰를 남겼다. 난 돈이 없어서 3 SGD에도 부르르 떤다. 하지만 이 이상의 항의는 기분을 망칠 것 같아 잊기로 한다.
블랙 컨슈머는 아니고요, 그저 성실한(?) 숙박객입니다.
내게 호텔의 첫인상은 도착해서 로비로 들어설 때가 아니다.
숙박 예약 후, 예약 확인 및 요청사항 메일을 보낼 때 얼마나 빠른 응답과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가에 따라 호텔의 첫 이미지가 달라진다. 그리고 경험상, 빠른 응답과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호텔일수록 실제로 호텔에서의 만족도도 비례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건 사람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나 : 나는 그날 좀 늦은 체크인을 할 거지만, 가급적 높은 층에 조용한 방을 주면 좋겠네
호텔 : 니가 예약한 방은 가장 저려미라서 2-5층에 배치되어 있어. 일단 니 말 뜻은 알겠어.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렴
나 : (궁금한 거 생겨서 또 물어봄) 나 두리안이 룸에 반입 안 되는 건 알고 있는데... 혹시 너네 호텔망고스틴도 반입 안되니?(시트에 묻을까 봐 호텔에 따라 반입 안 되는 곳이 있다고 주워들음) 나 망고스틴 좋아하는데 반입 안되면 좀 슬플 거 같아... 그리고니네 호텔 체크아웃 하고 샤워할 수 있잖아. 그거 미리 예약해야 해?
호텔 : 망고스틴은 반입해도 돼. 근데 그거 침대 시트에 묻으면 변상 책임 묻게 될 거야. 조심해. 체크아웃 후 샤워는 미리 예약 안 해도 된단다. 궁금한 거 있으면 또 물어봐.
나 : (가기 전날 다시 한번 확인 메일. 집요하기 이를 데 없다.) 나 내일 드디어 출발해! 너무 설레! 내가 했던 말 기억하고 있니? 요구사항이 다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말했었는지 모르겠는데 지난주가 울 엄마 생일이었어.(여권상)혹시 카드 같은 거 써줄 수 있어? 아아.. 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야. 혹시나 니네 호텔서비스에 그런 게 있나 해서 물어본 거야. 있으면 엄마가 기뻐할 거 같아서.
호텔 : 오브 콜스!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체크인을 하는데... 어라? 방이 10층이다. 분명히 내가 예약한 룸은 5층이 최고층 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나의 성실함?(진상은 아니겠지..)을 인정받은 건가.. 그리고 방에 들어갔더니 케익과 함께 직원들의 손 편지!
아악.. 감동ㅠㅠ
엄마 생일이라고 했는데 내 생일로 알고 내 생일을 축하한다고 써놨지만 이 얼마나 정성스러운 서비스인가.(졸지에 생일 두 번 됨)
고마워요. 사랑해요. 파라독스
어릴 때는 무조건 가성비 호텔만 선택하곤 했었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잠깐 머무는 곳이라도 숙소의 편안함과 편의성, 친절도는 여행의 전반적 만족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이래서 돈 주고 비싼 호텔을 예약하는구나. (내 기준에서 비싼 호텔이었지만 싱가폴 물가에 비하면 비싼 호텔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