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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Aug 04. 2024

14년 만에 만난 첫사랑-싱가포르(2)

둘째 날. 바쁘다 바빠. 꽉 찬 일정

 누구보다 더위에는 강한 나이지만 여행카페에서 몇 달째 보고 있는 날씨 후기는 무시무시했다.

'저도 더위 안 타는데 그냥 나가자마자 땀이 줄줄 흘러요'

'10분 이상 못 걷습니다.'

'그냥 더워요. 너무 더워요.'

  가장 덥다는 4-6월에 간 사람들이니 그럴 거야. 7월은 좀 낫겠지.. 하면서도 두려움이 밀려왔다.

게다가 엄마는 이제 고령자에 들어간다. 체력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비싼 호텔(다른 이들은 가성비 호텔이라 불렀지만 저에겐 비싼 호텔이었습니다.)을 예약했으니 숙소를 적극 활용하기로 한다.

 중간에 한 번씩 숙소에 들러서 휴식 시간 갖기.

 하지만 둘째 날은 일정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 아침에 나가자마자 마지막 일정 9시까지 풀로 바깥활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이 일정은 도착 후 바로 다음날로 짰다. 체력이 가장 괜찮은 첫 관광일정으로.

 엄마한테 미리 말을 한다.

 "오늘은 좀 빡셀수도 있어."


관광객 여기 다 잉네.

 싱가포르의 상징. 머라이언 공원의 머라이언 상을 만나러 간다. 아침에 흐리길래(거의 매일 아침은 흐렸다.) 별 부담(?) 없이 나갔는데 습한 더위가 꾸물꾸물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하철도, 길거리도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지하철에서 내려 공원까지 왔더니(또 한 번 헤맴)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이 많다. 머리 감는 사진을 찍고, 물 받는 사진도 찍고 이케이케, 요케요케 사진 조금 찍었을 뿐인데 갈증을 호소하는 엄마와 나. 흐릴 것 같아서 텀블러 하나에 얼음 절반 받아서(식당에서 24시간 얼음제공) 물을 조금 부어 왔는데 첫 계획대로 얼음 텀블러 1, 물통 텀블러 1을 했어야 했다며 엄마는 발동동이다. 물은 벌써 거의 동나버렸다. 조금만 찾아. 이제 실내로 갈 테니.

 지하철을 타고 그 유명한 마리나베이샌즈 쇼핑몰로 향한다.

 


 뭐든 비싼 MBS 몰. 최대의 가성비로 효율성 높이기.

14년 전에 왔을 땐 오지 않았던 곳이다. 갈 생각 자체를 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해결한다.

 우선 점심을 먹는다. 오기 전에 마리나베이샌즈 앱을 깔고 현장에서 해당되는 카드와 여권을 제시하고 등급을 업그레이드하면 여러 가지 혜택을 얻게 되는데 그중 삼판라이드라는 장난감 같은 보트를 탈 수 있는 티켓을 2매를 얻는 것도 포함이었다. 마카오에서 비슷한 곤돌라를 탄 적 있는데 그것보다 다운그레이드? 된 버전 같은 거다. 굳이 탈 생각 없었지만 무료로 탈 수 있고 엄마도 타고 싶다고 해서 벼르고 있었는데 몇 달 전 규정이 변경되었다. 1인 1매만 무료. 크윽. 그래도 나머지 1 매도 30% 할인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 타기로 한다. 바뀐 규정에 의거, 이젠 그냥 업그레이드가 안되고 매장 내에서 결제내역이 있어야 하는데.. 점심으로 먹기로 한 토스트 박스는 또 제외 매장이라고 했다. 아흑. 그래서 푸드코트에서 일단 뭐든 시키고 간단한 요기를 하고 적립을 시켜달라고 했다. 그리고 데스크로 가서 업그레이드를 한 후, 다시 앱에서 예약 및 결제까지! 바로 삼판라이드를 탑승한다.

별거 없어요. 그냥 한바퀴 돕니다. 마카오 곤돌라는 곤돌리에가 노래라도 불러주는디 ㅎ

 우리 뒤에는 한국인 커플이 탔는데 업그레이드 규정이 바뀐 것 같다며 계속 얘기하는데 참견하고 싶은 거 간신히 참았다. 이 정보 알아내려고 바뀌기 전/바뀐 후 2박 3일은 블로그와 카페를 아주아주 샅샅이 뒤졌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말이다.

 보트 타고 토스트박스라는 2차 점심?을 하러 간다. 14년 전에 왔을 때는 야쿤카야 토스트 밖에 없었는데(혹시 그때도 있었나요? 그땐 여행 하수라..) 이제 토스트 박스와 야쿤카야 토스트는 양대 토스트 집으로 불린다.  마리나베이샌즈 몰 내에 토스트 박스가 일반 매장보다 더 비싼데 일정상 여기서 말고는 먹을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주문줄에서 기다린다. '세트에 커피는 아이스로 바꾸고, 커피 종류는 뭐냐고 물으면 코피씨(연유커피)라고 해야 해. 그리고 단품을 추가시킨 다음에 레몬티도 아이스로 달라고 해야지' 한 번에 말해야 해서 속으로 몇 번을 되뇌며 긴장하고 있는데 뒤에 줄 서 있던 한국 사람이 일행에게 말한다. "어머, 여기 단품은 없나 봐." 예전 같았으면 부끄러워 못 들은 척했을 텐데 나는 참견하고 만다. "(메뉴 가리키며) 여기 단품 있어요"

 

적립받으려고 푸드코트에서 먹은 1차 점심과 2차 점심  토스트 박스

 그렇게 점심을 완전히 해결하고 이제 오늘 가장 걱정(?)했던 일정이다. 바로 마리나베이샌즈에서 가든스바이더 베이까지 도보로 찾아가기. 구글로는 찾을 수 없다 했다. 돌고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하지만 IT 강국, 단일민족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떠한가. 카페에 가면 이 길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상세히, 아주 상세히 나와있다. 사진도, 그림도, 지도도 다 있다. 하지만 공간지각능력이 제로인 나는 두렵다. 이 길을 찾아가는 게. 몇 번을 들여다봐도 모르겠어서 에라 모르겠다, 했었다. 길 찾기 달인인 엄마에게 "이 길 엄마가 찾아줘야 해."라는 말도 미리 했다. 다행히 듣던 대로 안내가 잘 되어 있었다. 가는 길에 사진 명당이라는 곳에서 여유 있게 사진도 찍었다. 

길 찾아 가며 만난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미리보기.

 후훗. 괜히 겁먹었네 했다. 그래, 자만했다. 자만의 대가를 곧 치르리라.


보는 거보다 먹는 거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슈퍼트리 쇼로만 유명하지만 사실 그 안에 여러 가지 관광테마가 있다. 있는데.... 보통 한국 사람들은 슈퍼트리쇼만 보거나 +플라워돔+클라우드 포레스트 정도만 본다. 첨엔 나도 슈퍼트리쇼만 보려 했지만 어차피 시간도 남을 거 같고 '관광'의 기준이 부모님들은 좀 다르다고 하여 플라워돔+클라우드 돔 두 개 패키지를 사전 예약했다. 그래서 둘 다 봤더니 플라워 돔은 진짜 플라워돔이고 클라우드 포레스트도 클라우드 포레스트였다. (응?) 우리나라 식물원이 훨씬 볼게 많다던 플라워 돔은 진짜 그냥 꽃들이 있었고(설명이 빈약한 건 크게 관심이 없었;) 그래도 볼만하다던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시원하고 관광지 같은? 느낌이 들긴 했다. 아... 일단 둘 다 실내였기 때문에 덥지 않은 것만으로도 점수는 줄만 하다.

테마 이벤트가 있을 땐 좀 더 볼거리가 있다고 하던데 내가 갔을 땐 그으냥 평일

   생각보다 일찍 관광이 끝나서(사실 이럴 거 같았음) 픽 해둔 저녁 식사 장소 두 곳 중에 조금 걷되 한가하다는 사테 바이더 베이라는 호커센터에 가기로 한다. 아직 덜 알려졌다고 했는데 이른 시간치고 사람이 제법 있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사테바이 더 베이니까 새우 사테를 먹기로 한다.(충동적인 것 같지만 아니다. 며칠 후 리얼 사테거리에 갈 예정이 있었으나 혹여나 우천 시 못 갈 것을 대비해 사테를 못 먹게 될까 봐 주문한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처음 먹어볼 싱가포르 음식 호키 앤 미. 사이즈가 여러 개가 있어서 아주 작은 거 말고 조금 작은 걸 주문했는데 어우 양이 많다.

이 양이 왜 小라는 거죠?

두리번거리다 첨으로 발견한 오렌지주스 자판기 IJOOZ

 싱가포르 생 오렌지주스 착즙 자판기인데 주문 즉시 4개 오렌지를 착즙 해서 만들어준다. 

지역에 따라 번화가는 3 SGD(약 3천 원), 그 외 지역은 2 SGD(약 2천 원)인데 싱가포르 물가에 비해 아주아주 저렴하고 맛있어서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마신다고 했다.

 그리고, 아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할인 혜택. 카카오페이를 이용하면 1 SGD 할인이 된다.(횟수는 정해져 있음) 처음 발견한 이 자판기는 3 SGD였고, 우리는 두 잔을 주문했고 2 SGD를 할인받았다.

 여기서만 3 SGD였고 이후에 발견한 자판기는 모두 2 SGD였는데 우리는 거의 매일 보일 때마다 마셨다.

쓰면서도 마시고 싶어 진다. 나 돈이 없지만 2 SGD 정도는 있는데...

우리는 이 아이에게 매일 출석 도장을 찍게 됩니다.

 왜 슈퍼트리인지는 알겠어요. 크긴  진짜 커요.

무료인 슈퍼트리 쇼는 매일 19:45분, 20:45분, 15분 동안 이어진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최소 30분 전에는 가야 하는데 우리는 1시간도 넘는 여유 시간이 생겼다. 습식 사우나 같은 공기를 헤치고 가 명당에 자리 잡는다. 누워서 봐야 하기 때문에 돗자리를 준비하라는 자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얇은 돗자리를 준비해 갔고 미리 쉬면서 쇼를 기다린다. 우리는 일찍 가서 대리석 같은 난간? 에 자리 잡을 수 있었지만 늦게 온 사람들은 정말 아스팔트 바닥에 누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자리를 못 잡으면 15분 동안 목이 꺾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아직 쇼 타임 전. 대기 중

 예전 싱가포르에 왔을 때는 나도 보지 않았던 코스라(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여행 하수였던 나는 몰랐던 것 같다.) 나름의 기대가 컸는데 기대가 너무 컸나 그냥 트리쇼네? 했다. 엄마도 생각보단 그냥 그렇다고 했다.

카페에서도 슈퍼트리쇼 vs 스펙트라 쇼 의견이 갈리는데 그럼 나는 스펙트라 쇼인가? 싶었다.

예쁘긴 합니다요.

 쇼타임이 끝나면 약 2분 정도 전 트리에 불이 들어오고 이때가 바로 포토 타임이다. 포토타임이긴 한데.. 야밤이라 사진이 잘 나오진 않는다. 외국인 부부 사진을 찍어주고 냅다 도망(잘 못 찍어서 미안함..) 쳐 다시 마리나베이 샌즈의 스펙트라쇼(분수쇼)를 보러 가기로 한다.

 여기서 아차차... 마리나베이에서 가든스바이더 베이까지 오는 길 찾기를 몹시 긴장했던 것에 비해 쉽게 찾아온 나는 마음을 놓았다. 왔던 길을 다시 찾아가면 되니까. 하지만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밤이고.. 가든스바이더 베이 매우 크다. 우리가 도착한 지점과 출발 지점은 달라져 버렸다. 몇 번을 헤매다 그냥 지하철 역 쪽으로 가기로 한다. 돌아가긴 해도 거기선 찾아갈 수 있을 테니.. 슈퍼트리 쇼는 8시에 끝났고 9시 스펙트라 쇼를 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는데 길을 잃으니 당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길 찾기 고수'인 엄마를 보유하고 있다. 엄마는 '이렇게 저렇게' '아까 저 건물' 같은 말을 몇 번 되뇌더니 마리나베이 샌즈를 찾아냈다. 고맙습니다. 나의 인간 구글


 즐겁게 봤으면 그걸로 됐죠 뭐.

 오늘의 마지막 일정. 마리나베이 샌즈에서 열리는 스펙트라 쇼=분수 쇼. 

 여기도 나름 명당이 있는데 2층 난간이라는 명당은 이미 자리가 차서 우리는 1층으로 갔다.(1층이 명당 같았는데요?) 이번에도 돗자리를 펴고 앉아 쇼가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다. 저녁마다 하는 이 쇼도 무료다. 그래. 싱가포르 물가는 너무 비싸지만 이런 게 무료인 건 꽤 이득이다.(하긴... 관람료를 받을 수 없는 장소이긴 하다.) 사실 슈퍼트리 쇼 보다 기대를 안 했는데 웬걸, 나는 스펙트라 쇼에 한 표였다. 엄마 말로는 트리 쇼는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지만 분수쇼는 노래, 영상, 그리고 물의 다양한 각도를 통해 훨씬 역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 좀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냐 했다.(똑똑한데?) 

 다문화 사회인 싱가포르가 오늘날과 같은 거대 도시로 변모하는 여정을  장면 1과 2의 영상에서는 그 복잡한 역사 및 문화적 배경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3막과 4막은 더 나은 싱가포르를 위해 노력하도록 영감을 주는 미래형 이미지를 포함한 진보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하는데 나는 자료에 적어 놓았지만 막상 볼 때는 기억이 안 났다. (왜 공부함?)

 인파 속에 밀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주 꽉 찬 일정이었다. 어제 사 온 납작 복숭아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은 꼭 얼음텀블러, 물 텀블러 하나씩 챙겨가자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든다.

 

어때요? 진짜 울 엄마 말대로 역동적인가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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