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라도 고마웠다.

사실 내겐 '말이 전부'다.

by yosepina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이 오랜만에 출근하던 날, 그날도 나는 바빴다. 내게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설명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업무적인 정보를 주고받다가 어쩔 수 없는 나의 휴가 일정에 대해서 털어놓아야만 했을 때, 급한 마음에 앞뒤 서사는 다 떼놓고 한 줄의 결론으로 내 소식을 전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짜요??? 정말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했다고요?? 선생님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가만히 있었어요? 와... 선생님.. 되게 착하다. 와... 샘! 빨리 다른 데로 옮겨요! 여기 있지 말아요!"

내가 멈칫 놀랄 정도로 그 직원은 흥분하며 화를 냈다. 그리고 빨리 이직하라고 했다.(내가 그만두면 본인에게 약간의 여파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음.... 근데 또 제 친구는 제 얘길 듣고 이렇게도 말하더라고요. 상사 입장에서는 이런이런 과거 일들이 있었으니 자기 딴엔 너한테 큰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직원은 내 말을 삼켜먹듯 반응했다.

"뭐야. 그 친구 T예요? 아니야... 싫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말하는 건 싫어요!"

본인이 굉장히 속상해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온전히 읽어주지 않는, 본 적도 없는 내 친구에게도 화를 냈다. 바빠서 나는 더 이상 대꾸 하지 못했지만 사실 굉장히 고마웠다. 매일 얼굴 보는 사이도 아니라 그 정도의 친밀한 관계도 아닌데 저렇게 본인 일처럼 속상해하고 화를 내준다는 것, 같은 소속인데도 거리낌 없이 얼른 이직을 준비하라고 말할 수 있는 거, 완전히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했을 때 가능한 일이니까.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너무 속상해하던 내게 다른 친구는 이렇게도 말했다.

"너.. 3개월 백수 생활 할 정도 자금 있어? 있으면 그냥 지금 나와도 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마.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다른 거야. 당장 월급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져. 너 스스로를 너무 코너에 몰아가지 마."

정말 충동적으로 '이번 달까지만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진 못했다. 물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이직 or 퇴직은 결심했고 시기를 견주고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도 구해 놓고 나와야지"라고 말해준 현실파 조언보다 "지금 힘들면 나와도 돼"라고 해준 말에 힘을 얻어 출근을 하고 있다.

언제든 내가 대책 없이 갑자기 뛰쳐나가도 "무조건 너의 선택을 지지해"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에 버틸 힘이 생겼다고 할까. 그런 든든한 뒷배가 있기에 '아직은, 조금만, 한 달만 더'라고 매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이상향이었을 정도로 나는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왜 말을 저렇게 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언어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은 이젠 모두 손절해서 주위에 없다.

"걔가 말만 그렇게 하지 마음은.."이란 말은 내가 아주 질색하게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무당도 귀신도 아닌데 표현되고 표출되는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무슨 수로 타인의 속 마음까지 헤아리란 말인가.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닐 거다.

해줄 수 있는 게, 도와줄 수 있는 게 겨우 이런 말 뿐이라고 할 때 그래서 나는 눈물이 난다.

진심이 담긴 말은 완벽하게 마음을 전달하니까.

그 말은 내게 전부라서.

주석 2025-12-13 220417.jf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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