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홍콩은 그냥 그랬어
드디어 숙제 같은 이 매거진의 첫 글을 시작한다. 좋아하고 그나마 잘하는(?) 게 여행밖에 없어서 다녀온 여행과 다녀왔던 여행을 복기하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글을 쓰겠다고 기획안을 내고 합격했으면서 지난 여행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나 이런 글을 보지 누가 볼까 망설여지기도 했고 그렇다고 너무 오래전 일을 쓰는 거라 정보 전달이 주목적도 아니고 재미있게 쓰는 건 더더욱 자신이 없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루고 있는 기분이라 (내가 싫어하고 또 못하는 것) 뭐가 됐든 시작을 해보려 한다.
여행에서 모르는 건 약이 아니오. 아는 것이 힘이오.
시작이 어려웠던 이유가 있다. 첫 해외여행의 기억이 강렬하거나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해외여행 시작이 친구들에 비해 다소 늦었다. 공항에서 어떻게 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타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친구들이 시키는 대로 돈을 내고, 그녀들만 졸졸졸 따라다녔다. 패키지 반+자유여행 반 인 일정으로 저렴한 상품이었는데 이유는 청주 공항 출도착인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미친 짓이었는데 셋다 너무 몰라 그랬노라며 웃어 넘기기엔 돌아올 때 피곤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청주 공항에서 다시 고속 터미널로 가서 서울 고속터미널에 도착해서 다시 각자 집으로 가는..)
자유일정이 절반이니까 그 절반의 일정은 우리가 짰어야 하는데 당연히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기억도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비행기 타는 방법도 모르는데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다행히 친구들도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뭘 믿고 맡겨..)
문제는 일정은 그녀들에게 맡긴다 치더라도 옷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가방은 어떤 걸 들고 신발은 어떤 걸 신어야 할지도 전혀 몰랐다는 거다. 사진 속의 나는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 가방을 들고 발이 아픈 신발을 신고 있다.
날씨는 또 어떻고. 8월의 홍콩은 태풍이 자주 오고 몹시 더운 데다가 습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몰랐다. 다행히 태풍은 오지 않았지만 일정의 절반은 주룩주룩 비가 내렸고 사진 절반은 우산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다 까먹고 남아 있는 것만 진짜 내 기억이야.
지금 생각하니 특별히 기억에 안 남는 이유도 절반은 패키지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일정표도 모르고 내리라면 내리고 가자면 가고 그랬는데(자랑이다) 지금 사진을 봐도 도대체 저기가 어딘지 홍콩에서 왜 저런 데를 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자유여행객들이라면 가지 않을, 패키지 손님들만 데리고 가는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그나마 이틀 정도 패키지 일정이 끝나고 자유일정이 시작되었을 때 기억에 남았던 장소라면 홍콩의 유명한 야경. 그중 심포니 오브 라이트라는 건물 레이저 쇼였다.
매일 밤 열리는 건물 레이저 쇼인데 그 건물 중에 우리나라 삼성과 엘지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또 자랑스러웠다.(해외 처음 나간 사람이니까.)
항상 말하지만 여행은 장소가 주는 자체의 의미보다 그때의 내 마음 상태, 함께 했던 사람과의 추억, 날씨가 미쳤던 영향, 현지인이 준 친절/불친절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그곳의 이미지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들은 이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난 짧은 시간 굉장히 먹먹했다.
그게 소위 말하는 첫 해외여행의 감흥인지, 삼성 엘지 로고를 보고 갑자기 발동된 애국심인지,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힘든 마음 상태라 아련 열매가 꽃을 피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와... 사람들이 이걸 보는 이유가 있구나. 이런 생각 했던 것 같다.
그밖에 홍콩 야시장도 가고 이태원이라 불리는 란콰이펑(이름 기억 안 나 검색해봄)이란 데도 가고 스타의 거리도 가고 피크트램도 타고 침사추이도 여기저기 다녔는데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너무 멋모르고 가서 그런 건가 싶어 그리하여 5년 뒤 여행의 고수가 되어 홍콩을 다시 자유로 찾는다.(그 이야기는 다음에.... 다음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
그때는 모르지만 지금은 아는 것
홍콩 여행이 특별하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안다.
여자들은 쇼핑을 하기 위해서 많이 찾는다.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버시티 같은 큰 쇼핑몰을 둘러보면서 쇼핑에 여념이 없었는데 지금 와 말인데 난 너무 피곤하고 추웠다.(쇼핑몰 에어컨은 정말 추위에 취약체인 나에겐 무서운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나는 나를 안다. 난 쇼핑을 안 좋아한다. 여행에서의 쇼핑은 야시장에서 신기한 것 구경하고 마트에서 과자 털어 오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애당초 내가 좋아할 만한 일정이 아니었다. 내가 관여하지 않은 일정이니 뭐라 할 수도 없었고 친구들 따라 매장에 들어가서 뒤에서 구경하거나 다리가 너무 아프면 앉아있다 나오곤 했다.(그 불편한 여름 슬리퍼를 질질 끌고서)
유명한 호텔에 가서 애프터눈 티도 즐겼는데 그것도 그저 그랬다. 돈 내라고 해서 돈 냈는데 꽤 비싸네? 이런 생각 정도만 했던 것 같다. 애들이 동선에 맞춰서 일정을 짜고 식당도 정해놓고 하는 게 그냥 신기하기만 했다.(지금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즐겁고 재밌다고 하면 이상한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몰랐고 으레 해외여행은 다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니 다른 세계 다른 나라가 짠 하고 나타나는 건 신기했지만 딱 거기까지 였던 것 같다. 다시 오기 싫거나 재미없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첫 해외여행에 심봉사 눈 떠지진 않았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말이 맞다. 그것도 한 번으로는 알 수 없다.
지금 보이는 것이 진짜는 아닐 수도
이런 해외여행의 기억이라 첫 시작의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뭐 특별한 게 있어야 쓰지. 이거 좋아요!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랍니다. 이런 게 있어야 하는데 너무 아무것도 없다뉘.
근데 뭐 여행이 늘 좋고 행복할 수는 없으니까. 성향에 따라 내가 좋은 게 남들에겐 안 좋을 수도 있고 남들에게 좋은 것이 반드시 나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진 않으니 별로였어요. 란 글을 쓰는 것도 여행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라고 억지로 우겨본다.)
어쨌든 시작이 중요하고 첫 해외여행이 그저 그랬다고 해도 그 시작을 출발로 나는 지금의 여행가(!)가 되었고 이 2008년 홍콩 여행 일지(?)를 써야만 이후 2018년까지의 여행기를 이어 연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남들보다 늦었던 해외여행이었지만 함께했던 그녀들 중 나는 현재까지 가장 많이 여행을 했고 가장 자주 쏘다니고(?) 있다. 지금 그녀들은 해외여행 갈 때 나에게 많은 의지를 한다.(같이 가는 게 아닌데 왜 나한테 묻니? 근데 대답하고 있는 나.)
인생은 알 수 없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와 같다고 누구도 단정도 확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갑자기 억지 주제 만들기? 의식의 흐름대로 지껄이기!)